∎막 10:32-45 예수를 따르는 길

예수님은 고난과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8장부터 10장까지 세 번에 걸쳐 장차 자신이 받을 수난에 대해 예고하십니다. 그때마다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과 이 반응에 따른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를 따르는 길이 무엇인가를 일깨어 줍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수난에 대해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을 때(8:31),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8:32).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뛴 것입니다. 그러자 앞장서 가시던 예수님은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8:33) 하면서 꾸짖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8:34-35).

이 말씀에서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과 대비되는 것이 ‘제 목숨을 잃고자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이라는 것에 꼭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살 생각을 하면 죽고, 죽을 각오를 하면 산다”는 말이 아닙니다. “죽어야 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수난에 대해 두 번째로 예고하셨을 때(9:31), 제자들은 아직도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서 도상에서 자기들 중에 “누가 크냐” 즉 “누가 더 높으냐”는 문제로 서로 다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그는 모든 사람의 꼴찌가 되어서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한다”(9: 35)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가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수난에 대해 마지막으로 예고하십니다. 예수님은 앞장서 가시면서 불안해하며 뒤따라오는 제자들에게 장차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십니다(10:33-34). 이 때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가까이 와서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10:35.37)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 예수님은 방금 수난과 십자가 죽임을 예고했는데, 그들은 지금 고관대작 감투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10:43-45).

이렇듯 예수를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남의 종이 되고, 섬기는 사람이 되고, 꼴찌가 되는 길이며, 끝내는 자기 목숨마저도 부정하는 길입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말해 세상이 추구하는 가치와 전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자는 것 아닙니까? 다른 말로 하면 바보가 되라는 말 아닙니까? 이런 이유로 오래 전에 문익환 목사님은 <하나님의 바보들이여>란 제목의 시를 쓰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늙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까지라도 젊어야 합니다

싱싱하게 젊으면서도 깊어야 합니다

바다만큼 되기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마는

두세 키 정도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어찌 사람뿐이겠습니까?

마소의 타는 목까지 축여주는

시원한 물이 흥건히 솟아나는 우물은 되어야 합니다

높은 하늘이야 쳐다보면서

마음은 넓은 벌판이어야 합니다

탁 트인 지평선으로 가슴 열리는 벌판은 못돼도

널찍한 뜨락쯤은 되어야 합니다

오가는 길손들 지친 몸을 쉬어갈 나무 그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덥석 잡아주는 손과 손의 따뜻한 온기야 하나님의 뛰는 가슴이지요

물을 떠다 발을 씻어주는 마음이야 하나님의 눈물이지요

냉수 한 그릇에 오가는 인정이야 살맛 없는 세상 맛내는 양념이지요

이러나 저러나 좀 바보스러워야 합니다

받는 것보다는 주는 일이 즐거우려면 좀 바보스러워져야 않겠습니까

바보스런 하나님의 바보들이여

문익환 목사님은 예수님이 걸으셨던 십자가의 길, 우리가 살아가야할 신앙인의 길을 “받는 것보다는 주는 일이 더 즐거운” 좀 바보스러운 길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실제로 제시하신 길은 ‘조금’ 바보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바보스러운 길이고, 그래서 누구나 걷기를 꺼려하는 길입니다. 그 이유는 내 것을 남에게 조금 내어주는 길이 아니라, 내 것을 남에게 모두 내어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라면 누가 예수를 믿고 따르려고 하겠습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기적과 표징을 좇아 예수를 따릅니다. 예수를 믿어 덕 좀 볼까 하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내 이익을 위해서 예수를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공생애 전반부에 예수님이 기적과 표징을 행할 때 많은 무리들이 예수를 따라다녔던 것입니다. 그런데 후반부에 가면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왜? 그 이유는 당신의 길이 십자가의 길을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따르는 길은 이익을 보는 길이 아니라 손해를 보는 길이고, 이기적인 길이 아니라 이타적인 길임을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자의 도덕경 제7장은 이렇게 읊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영원한데

하늘과 땅이 영원한 까닭은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참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도 마찬가지.

자기를 앞세우지 않기에 앞서게 되고,

자기를 버리기에 자기를 보존합니다.

나를 비우는 것이

진정으로 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막 10:46-52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막 10:46-52은 눈먼 바디매오가 ‘믿음’으로 눈을 뜨게 되고, 나아가 ‘구원’을 받게 된 이야기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바디매오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52절)고 말씀하십니다. 도대체 소경 바디매오는 어떤 믿음을 가졌었기에 그는 믿음으로 눈도 뜨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도 받았을까요?

누군가 믿음을 설명하기를 “은혜를 담는 그릇”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햇빛처럼 또는 소낙비처럼 은혜를 쏟아 부어주십니다. 하지만 만약 내게 그것을 담을 그릇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무한한 은혜가 내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구원을 받을 수 가 없습니다. 믿음이란 이처럼 중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믿음의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릇이 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를 넉넉히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한 믿음의 그릇을 갖고 계십니까? 간장종지 만합니까? 아니면 함지박 만합니까? 바디매오는 아마도 함지박만한 믿음의 그릇을 가졌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디매오는 소경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소경이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51절을 보면, 그는 주님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이 말로 미루어 보아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은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사고를 당했는지, 아니면 병을 앓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성경은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에는 소경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소경이 되었습니다.

태생소경, 그러니까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과 처음에는 소경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병이나 사고로 소경이 된 사람 중에 누가 더 답답하고 비참할까요? 아마도 후자일 것입니다. 태생소경은 원래부터 보지 못합니다. 따라서 소경으로 사는 것에 익숙해 있을 것입니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까 남들도 자기와 비슷하게 살겠거니 하면서 소경으로서의 생활에 적응했을 것입니다.

이에 반해 병이나 사고로 중간에 시력을 잃게 된 사람은 매일이 지옥일 것입니다. 모르는 게 약이고, 아는 것이 병이라고 그는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경 아닌 삶에 익숙하고 거기에 적응되어 있어서 갑자기 보지 못하게 되면 처음에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시력을 잃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은 사람. 그의 가족은 처음에는 그를 불쌍히 여겼겠지만 나중에는 아마도 불편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가족의 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죄인이라 여겨 될 수 있으면 상종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예루살렘의 길목인 여리고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여행객들에게 구걸하는 것 밖에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없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또는 잃어버린 것에만 집착합니다. 나에겐 이것도 없습니다. 저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관합니다. 그 결과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이나 가치도 모르고, 그것들의 능력 또한 부인하고 활용하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바디매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비록 볼 수 없었지만 들을 수는 있었습니다. 또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움직일 수 있는 손과 발도 있었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시력에만 집착하여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잃어버린 것, 지금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합니다.

그는 두 귀로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분, 나병환자들을 깨끗하게 하신 분, 세상 사람들이 버러지 보듯 하는 세리를 당신의 제자로 삼으신 분, 창녀를 회개시키신 분, 가난한 이들과 친구처럼 어울리시는 분,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 분. “그렇다. 이분이야말로 참으로 약속된 그 메시아임이 틀림없다. 나도 그분을 만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면 눈을 뜰 수 있으련만. 누가 나를 그분께 데려다 줄 것인가?” 이렇듯 그는 들어서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그에게 소망을 품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소망을 품고 기다리던 중, 어느 날 예수님이 그가 있는 마을을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는 볼 수 없었지만 그 사실을 두 귀로 듣고 알았습니다. 보이면 당장 예수님께로 달려갔을 텐데 그렇지를 못하니까 이번에는 입을 이용합니다. 사방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소리를 지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의 외침을 예수님이 듣고 그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두 발로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갑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게 없는 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 밖에 없어”가 아니라 “나는 이것은 있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 밖에 못해”가 아니라 “나는 이것은 잘 할 수 있어”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디매오가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할 때 꼭 방해꾼들이 있습니다. 바디매오도 그랬습니다. 그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주변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습니다. 바디매오의 주변사람들처럼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려고 할 때 꼭 훼방을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도 하고, 때로는 내 가족이기도 합니다. 또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이기도하고, 믿음생활을 하지 않는 친지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훼방은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만약 우리가 그 훼방에 굴복하면 결코 주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디매오를 보십시오. 본문 48절을 보면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그는 방해가 있을수록 더욱 기를 쓰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는 결코 온갖 방해해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방해하면 할수록 더욱 더 열심을 냈습니다. 방해가 있으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힘을 쓰고 더 열심을 내는 믿음, 이것이 바디매오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결국 그를 눈뜨게 했고 구원받게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시련에 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련이 오면 그것을 오히려 자기 단련의 기회로 삼아 더 힘써 정진하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믿음을 가진 우리에게 온갖 방해와 시련이 찾아옵니다. 그 때가 우리 주님이 더 가까이 계실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바디매오를 본받아 더욱 열심을 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주님과 대면하여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 시련을 통해 더욱 커진 믿음의 그릇에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넉넉히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1: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