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8:1-21 이방인 사이클(Gentile Cycle)

마가에 의하면, 예수가 패배한 사건인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는 마가복음 6:30부터 8:21까지의 큰 틀 안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는 일련의 연속적 사건들 틈바구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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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거대한 사이클은 각각 헤아릴 수 없이 큰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사이클 1은 유대인을 위한 먹이심(Jewish feeding)으로 시작하고, 사이클 2는 이방인을 위한 먹이심(Gentile feeding)으로 시작합니다. 사이클 1의 사건들은 모두 갈릴리 바다 동편, 즉 유대인의 땅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사이클’(Jewish Cycle)입니다. 반면에 사이클 2의 사건들은 모두 바다 서편, 곧 이방인의 땅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사이클’ (Gentile Cycle)입니다. 유대인을 위한 먹임에서는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 가득 채웠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식사에서는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 가득 채웠습니다. ‘열둘’이란 수는 유대적 상징입니다. ‘일곱’은 이방인이 교회의 식탁교제 안에 들어와야 완성될 그 어떤 숫자입니다. ‘바구니’는 버드나무 가지로 엮어 만든 것으로서, 손잡이가 달려 한 손으로 들 정도로 작은 그릇입니다. 그것은 유대인이 사용하던 그릇입니다(6:43, 8:19). ‘광주리’는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충분히 큰 그릇으로(8:8.20), 나중에 바울은 이것을 타고 밤중에 몸을 숨깁니다(행 9:25). 이방인의 그릇인 것입니다.

그런데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나타난 ‘예수의 패배’는 ‘복음’이었습니다. 지는 자 옆에는 뜨는 자가 있듯이, 예수의 패배가 필경은 이긴 자, 곧 여인을 영웅으로 입적시키기 때문입니다. 첫째, 복음의 세계화라는 구원사적 지평에서 여인은 가장 위대한 영웅적 인물로 입적합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과의 사건이 시작될 때는 예수께서 일차적으로 유대인을 위한 사역을 마친 상태였습니다. 아직은 이방인을 위한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지 않은 어정쩡한 상태였습니다. 당신의 사역으로부터 빠져 나와 잠시 은둔하며 안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이 접근한 것은 이때였습니다. 여인의 지혜와 인내 그리고 신뢰와 간청은 과연 예수의 계획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예수의 선교궤도를 수정하였습니다. 여인과의 논쟁적 대화가 있었기로 ‘이방인의 사이클’이 존재합니다. 여인에게 예수가 졌기로 이방인을 위한 예수의 사역이 비로소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의 신학적 지평을 열어 주었고 그의 선교적 지평을 열어 주었습니다. 복음은 드디어 이방세계로, 온 누리로 뻗어 나갑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이 여인의 지혜 앞에 인종, 문화,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性)의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이야기(31-37절)에서 귀먹은 반벙어리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린 것은, 복음의 채널이 열리고 이방인의 땅에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둘째, 복음사가 마가는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마가의 이야기 세계에서 예수의 패배는 열두 명의 남성제자들을 뒤로하고 여인을 복음의 새로운 주체세력으로 내세웁니다. 일찍이 예수께서는 열두 살짜리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후 “그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마가복음 안에서 ‘빵’이 곧 예수의 ‘몸’이라면(14:22), 예수의 몸을 여성에게 넘기리라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와 예수 담론의 이니셔티브가 여성에게로 넘겨질 것을 예견하는 것입니다.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이 사건(7:24-30)을 ‘자녀의 빵’이 어떻게 결국 ‘개들에게로’ 넘겨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나중에 열두 명의 남성제자들은 “우리에겐 빵이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입술로 자신의 모습을 자조(自嘲)합니다(8:17). 과연 ‘생명의 빵’은 남성들로부터 철저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여성에게로 돌려집니다. 마가의 예수 이야기가 빵의 이야기이고 그리스도교(예수운동) 사역의 본질이 빵과 먹임이라면, 그렇다면 마가는 남성제자들을 제쳐놓고 여인을 이 사역의 새로운 주역으로 설정하는 것이 됩니다.

예수는 사람들을 먹인다(6:42). 이것은 실제로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은 마지막 만찬과의 관련성이다. 41절에 있는 “가지다/축사하다/떼다/주다”의 연속적인 동작은, 두 번째 먹이심의 기적과(8:6) 예수 최후의 만찬(14:22)에서도 반복된다. 물론 이 연속적 동작은, 고린도교회의 경우에서 보듯 성만찬 동작이다(고전 11:23-24),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이 마지막 만찬에서 빵을 들어 축사하신 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말함으로써 빵과 몸을 동일시한다. 지금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빵 다섯 개로 먹이시는 기적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먹이는 빵은 당신의 ‘몸’이다. 당신의 ‘몸’이며 먹힘으로써 당신의 다가오는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당신의 죽음으로서 무리를 먹이는 것이다. 예수의 ‘몸’을 함께 먹는 무리는 그들의 함께 먹음(식탁 교제)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형성한다(고전 12:27, 엡 1:23). 즉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을 형성시키는 동기가 된다. 예수의 죽음, 그리고 그의 ‘영’(정신)과 ‘몸’의 먹임이 새로운 탈출 공동체 형성의 기초가 된다. 마가 공동체는 이렇게 말씀과 빵의 공동체 곧 그리스도인들의 성찬 공동체이다. 그러나 열두 명 남성 제자들의 거듭하는 실패는 바로 이 “빵”때문이었다(6:32-52; 8:1-10). 그들에게 언제나 빵은 덫이고 식탁은 함정이었다(8:13-21). 그들은 “빵”(먹을 것)이 곧 예수의 “몸”이고 교회임을(14:22)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명령에 늘 실패하던 남성 제자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여(6:37; 8,2) 우리는 여인과 빵의 이야기를 듣는다. 예수는 진작부터 “그녀에게”(야이로의 ‘딸’)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셨고(5:43), 이제 드디어 “빵”은 이방 ‘여인’에게로 옮겨졌다(7:24-30). ‘생명의 빵’이 과연 여인에게로 돌려졌다! 여인의 태(胎)가 소생하듯(5:21-43) 이제 여인은 복음과 생명의 담지자가 된다! 이야기가 진행하면, 장차 한 이름 없는 ‘여인’은 생명의 “빵”이신(14:22) 예수의 “몸”에 향유를 부어 예수의 장례식을 준비할 것이다(14:8). 오직 이렇게 준비된 생명의 “빵”만이 예수에 의해 당신의 “몸”과 동일시된 채 당신에 의해 남성 제자들에게로 주어질 것이다(14:22). 오직 이 빵만이 그 아둔한 남성 제자들의 눈에서 오해의 비늘을 벗기고 생명을 줄 것이다(참조 8:31-21). 남성 제자들의 깨우침과 참 생명이 여성에게 있다!

∎막 8:27-9:1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막 8:27-9:1은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이 오해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이 본문을 이해함에 있어, 마가는 우리에게 이와 관련된 어떤 상식적 전이해 일망정 “부인”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마태복음에서의 이야기 등을 모두 배제하길 원합니다.

AD 1세기의 그리스어를 아는 신중한 독자들은 어김없이 33절에서 흠칫 멈추게 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꾸짖은 일에서 “꾸짖다”라는 말의 원어는 ｢에피티마오｣(ἐηπίτίμάω)인데, 마가가 이 말을 쓸 때는 언제나 예수님이 사탄을 향하여 최고의 강경한 공격행위를 퍼부을 경우에 한정됩니다. 즉 이는 아비가 자녀를 향하여 엄히 훈계하는 종류의 꾸짖음과는 그 종류가 다릅니다. 본문에서 “수제자” 베드로는 여지없이 사탄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탄이라 부르셨습니다(33절,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둘째, 예수께서는 그를 ｢에피티마오｣ 하셨습니다.

더욱더 놀랍고 당혹스런 대목은 바로 32절입니다.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바싹 잡아당기고, 그에게 항의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동사 “항의하다” 역시 ｢에피티마오｣입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사탄에게 하듯 베드로가 바로 예수님을 향해 온갖 공격과 저주를 퍼붓지 않습니까! 무엇이 베드로(와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향하여 이렇게 ‘비상식적인’ 행동, 사탄에게나 함직한 폭력적이고도 과격한 행동을 서슴지 않도록 했을까요? 그 대답을 위해서는 아마도 이 본문과 마가 전체를 읽어야 하지만, 마가는 우선적으로 그 이유를 “예수께서 드러내 놓고(명백히) 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말씀”이란 30절의 그 유명한 첫 번째 수난예고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이 자신들의 지도자를 향해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최고의 존경스런 칭호를 헌상하였지만(29절), 예수는 기껏 죽임 당하는 길을 택하겠다고 거취를 표명하는 것이 아닙니까?(31절) 순간 베드로와 제자들은 이 예수와 만난 처음 순간부터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처음 그를 만났고 그가 우리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제안했을 때, 우리는 배도, 그물도, 머슴들도, 가족도, 그야말로 삶의 모든 울타리와 생명의 터전을 남김없이 버리고 따라나섰다. 아무런 질문도 없이, 아무런 조건도 없이, 그리고 아무런 보장도 없이…(2:16-20).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10:28). 다른 사람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따를 수 없던 그 길을(10:17-22), 바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값을 지불하며 나서지 않았던가. 또한 그는 우리를 향하여 죽을 때까지 아니 영원토록 생사를 같이 하자고, 고락을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3:14-15). 이제 와서이 모두를 헌신짝처럼 잊고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이렇게 지지리도 못난 ‘영웅’,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한 ‘위인’, 이렇게 아랫사람들을 생각지 않는 무책임한 ‘지도자’, 이렇게 의리 없는 ‘인간’….

  가장 현기증 나는 장면은 역시 29-31절입니다. 당신에 관한 일반 여론을 보고 받은 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어쩌면 우연한 질문이기보다는 예수님 편에서 제자들에게 무언가 확실히 해놓아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를 향하여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그리스도 고백입니다.

그리스도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을 열자마자 우리가 만나는 이 책의 제목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입니다. 정확한 우리 말 번역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복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마가는 예수의 정체를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그리스도 고백은 곧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 고백을 받으신 후 흡족하셨고 또 그저 침묵 가운데 묵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커다란 오산입니다. 이 ‘위대한 신앙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독자의 의표를 찌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엄중히 경고하시기를,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30절). 이것은 한마디로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예수의 비(非)그리스도 선언입니다. 엄중한 음성과 경직된 표정 속에 예수의 이 엄숙한 자기 선언이 담겨 있습니다. 적어도 1세기의 사려 깊은 독자들이라면 누구든 그렇게 읽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가 읽기가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비그리스도 선언을 이끌어내고 또 그렇게 확신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향하여 “자기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엄중히 경고하셨다”고 합니다(30절). 둘째, 이 행위를 마가는 또다시 ｢에피티마오｣라고 서술하였습니다. 여기 30절의 “엄중히 경고하셨다”라는 번역은 32절과 33절에서처럼 ｢에피티마오｣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성서는 동일한 단어를 ‘경고하다-항의하다-꾸짖다’로 세 번 모두 다르게 번역하였다.) 그들의 그리스도 고백은 예수님의 신경을 가장 예민하게 자극시켰던 것입니다. 셋째, 이것은 마가에서 예외 없이 일관된 패턴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가 폭로될 때마다 극단적으로 예민합니다. 당신의 정체는 끝까지 비밀 속에 감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이를 어기면 예수는 ｢에피티마오｣하십니다. 넷째, 본문 안에서 제자들의 그리스도 고백 곧 “하나님의 아들” 고백(29절)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 곧 “사람의 아들”(인자) 선언과 대립되고 있습니다(31절).

마가의 가장 큰 신학적 문제는 예수님의 정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니면 “사람의 아들”인가? 마가는 자신의 복음을 열면서 곧바로 그를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단정 짓습니다(1:1). 또한 십자가 처형의 마지막 순간에 한 백부장의 입을 통해 또다시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함으로 자신의 복음서를 완성합니다(15:39). 이 복음서 전체를 통해 예수님을 경험하는 사람들은 감탄하며(“놀라며”) 어김없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합니다. 오히려 하늘도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라고 우주적으로 선포합니다(1:11; 9:7). 베드로와 제자들의 그리스도 고백은 이러한 큰 흐름 속에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속의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언제나 여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엄히 명령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언제나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 칭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인가 혹은 사람의 아들인가? 마가복음에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 기독론과 사람의 아들 기독론이 서로 대립하며 달리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 성서에서 ｢후이오스 떼우｣(the Son of God)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면서 ｢후이오스 투 안뜨로푸｣(the Son of Man)를 “사람의 아들”이라 하여 일관성을 지키지 않고 “인자”(人子)라 한 것은 번역상 최대의 실수입니다.

그렇다면 32절과 33절에서 예수와 제자들 사이 ｢에피티마오｣의 맞교환과 그 날카로운 대립은 이미 29-31절에서부터 그 뿌리가 자라나고 있던 셈입니다. 예수의 정체에 관한 두 개의 타협할 수 없는 견해인 셈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아니다. 나를 결코 그렇게 부르지 마라.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 나는 그 사람의 아들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의지는 결연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하나님의 아들 고백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아들로서 길을 걸으며 그의 치욕스런 운명을 맞겠다고 “명백히” 자신의 거취를 표명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31절). 예수님의 이 계획은 베드로와 제자들의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끌어당기며 그분을 ｢에피티마오｣하고 있습니다. 그를 사탄시(視)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자신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철없이 과격한 행동만 하는 제자들의 행위가 예수의 뇌관을 건드렸습니다.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를 ｢에피티마오｣하시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33절)하십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삶은 사람의 일에 속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은 하나님의 일에 속합니다. 어떻게 수난이 없이 구원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 거기서 자신의 장렬한 운명을 온몸으로 맞이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10:45).

그렇다면 예수님의 그 비그리스도 선언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요? 34절은 이렇게 읽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이 사건 전체는 길 위에서(“노상에서”)벌어진 일입니다. 마가복음은 전체가 길의 이야기로 시작하는(1:2-3) 길의 이야기며 길의 복음임을 볼 때, 그리고 제자도(弟子道)의 요건이 언제나 “좇음”(따름)임을 볼 때, 예수님이 제시하려는 조건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은”은 이 복음서에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을 형성합니다.

그 조건이란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예수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자신의 길로 살아야 합니다. 사십여 년 전 예수님이 하신 이 말씀은 곧 사십여 년 이후 지금 교회 공동체가 살아가야 할 삶이자 “길”이어야 합니다(예수께서 돌아가신 것은 주후 30년경이며, 마가복음이 기록된 것은 70년경이다). 이것은 따라서 마가 공동체의 전기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8장 27-34절에서 이 길을 이 삶의 행태를 예수님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마가 기독론의 천재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심오함의 경지를 지나 신비에 도달합니다. 이것은 사십여 년 전 제자들과 무리에게 하신 말씀이기 이전에 이미 예수님이 가신 길이며 그의 삶의 행태입니다. 그는 자신을 부인하셨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의 아들로서 나의 길을 가겠다. 예루살렘으로 가 거기서 나의 십자가를 지고 나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교회에 주어진 명령이기에 앞서 예수의 자서전적 고백이며 또한 결연한 다짐인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님의 비그리스도 선언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이길 부인하는 그리스도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겠노라는 하나님의 아들을 보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본문을 ‘제자들의 그리스도 고백’이 아닌 ‘예수의 비그리스도 선언’으로 읽어야 하는 다섯 번째의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제자들 스스로를 부인하라 명령하기에 앞서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이기를 부인하는 그리스도! 그는 이렇게 언행이 일치하고 앎과 삶이 합일하는 진실 된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 길의 선언은 자서전적 고백으로 머물지 않고 교회에 하나의 명령으로 던져집니다. 예수님의 삶은 모범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규범입니다. 누구든 예수님의 제자이길 원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누구든 이 숭고한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누구든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으려 하는 사람은 그의 삶을 살고 그의 운명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그렇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어찌하며 마가 공동체는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끊임없이 이 자기 부인과 십자가 짐을 “복음”이라 들으며 자신을 의식화하고 있을까요? 마가복음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선택받은 모든 의로운 백성이 살육의 자리에로 넘김을 당하는 ｢파라디도미｣(παραδιδωμι)의 이야기입니다. 마가의 예수 드라마에서 세례 요한과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가 ｢파라디도미｣당하고 있으며, 마가가 굳이 이 비극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마가복음 교회공동체가 마찬가지로 ｢파라디도미｣당하는 처참한 현실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사는 것은 인생의 기적입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처럼 살고, 권력자가 무력자로 살며, 씨를 뿌리는 자가 거두지 않을 것으로 살고, 교회를 건축하는 자가 건축을 다 마친 후 새 교회를 개척할 계획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권세와 능력은 언제나 사람들을 탄복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기를 거부하고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십자가에서 처절한 인생의 종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다면 그것은 인생의 기적입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발견하고 길을 바꾼다면 그것은 인생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체험하고 그의 삶과 운명을 나의 것으로 삼아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면 그것은 복음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문제는 교회 안에 ‘잘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끝없는 분규와 분열을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 한국사회의 구조적 병폐는 소위 잘난 사람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를 변경하고, 또 공작합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모든 행동과 이 행동에로 이끄는 인간의 모든 소유욕을 사탄의 것이라고 ｢에피티마오｣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삶을 버리고 “나를 따르며” 새 길을 걸으라고 명령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인생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와 제자들 각자가 져야 할 십자가는 서로 달랐을는지도 모릅니다. 또 우리들 각자가 져야 할 십자가도 각기 다를 것입니다. 나는 왜 나면서부터 소아마비였을까. 나는 왜 남들처럼 부유한 환경 가운데 자라질 못했을까. 내 남편을 왜 …. 내 아내는 왜 …. 내 아이는 왜 …. 내 제자는 왜 …. 내가 택한 것이 아니고 내게 주어진 것은 무엇이든 내 이웃의 것들과 비교해 볼 때 모두가 불공평합니다. 더욱이 의로운 자들이 고난 받는 현실이야 …. 더 이상 우리들 인생의 질고를 따져봐야 무얼 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조건은 바로 자기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말고 온 몸으로 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철없는 아이들의 연극에만 나오는 낭만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거룩하고 숭고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현실이었고 길이었고 삶이었고 처절한 운명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들 삶의 어둡고 부정적인 측면입니다. (묵시문학에서) 역사는 자신의 십자가를 이웃에게 남몰래 기술적으로 전가시키는 자들을 미화하고 부추기는, 소위 “성공한”자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한 자들이 자신의 옛 생활을 버리고 반대로 자기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도리어 이웃의 십자가를 걸머지며 타인의 질고를 지고 간다면, 이것은 복음의 위대한 승리입니다. 그리스도가 자신을 부인하듯 우리가 스스로를 부인하지 않고는 그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영광스런 하나님의 아들이 그 수욕된 십자가를 지듯 우리가 이웃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인생의 질고를 온 몸으로 맞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9: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