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갈릴리 북부 여정 추정도

∎막 7:24-30 패배를 통해 함께 이기기
  막 7:24-30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굉장히 낯설고, 그래서 우리를 많이 당황시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당신께 무엇인가를 청하는 사람들의 부탁을 대부분 거절하지 않고 들어주십니다. 특별히 그 청이 ‘병 고침’이라면 그것을 외면하신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24절은 “예수께서 거기에서 일어나셔서, 두로 지역으로 가셨다”고 전합니다. 24절이 가리키는 ‘거기’란 갈릴리호수 서쪽지역 ‘게네사렛 땅’입니다(6:53 참조). 거기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 및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하셨습니다(막 7:1-23). 그리고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두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북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옛 페니키아의 항구도시입니다. 그곳은 당시 자연 방파제가 있는 유명한 요새이기도 했습니다. 한때 여호수아가 지배했을 때는 이스라엘의 영토였으나 예수님 당시에는 시리아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국경을 넘어 이방인의 땅, 즉 외국으로 나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리로 가셨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격한 논쟁 후 휴식과 기도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예수님은 맘 편히 쉬거나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한 이방 여인이 와서 자기 딸에게서 악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님에게 간청했기 때문입니다(26절). 그런데 예수님은 모질고 가혹하게 그녀를 멸시하십니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27절). 도저히 예수님의 말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은 ‘자녀’이고, 이방인은 ‘개’라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이 이방 여인을 개 취급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예수님을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습니다. 강자인 예수님이 약자인 이방 여인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이렇듯 막 7:24-30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너무도 낯섭니다. 냉정하고 모멸차고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국수주의자요, 인종차별자의자로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구제불능 ‘수구꼴통’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청산대상인 적폐세력’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큰 반전이 있습니다. 이방 여인이 수구꼴통 예수님께 KO 펀치를 날리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들은 이방 여인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큰 모욕감을 느껴 치유고 뭐고 예수님에게 대들었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너만 잘났냐 하고 한바탕 시비를 붙든지, 아니면 그래 너 잘났다 하고 그냥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28절).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 상처를 받았겠지만 기꺼이 자신을 비천한 개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주인의 상 아래에서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개’에 비유했습니다. 딸의 치유가 절박했다면 무조건 “도와주십시오” 하고 매달리기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데 이 여인은 예수님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동시에 감동받을 말을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논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졌습니다. 완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29절)고 말씀하십니다. 마가는 바로 그 순간에 딸의 치유가 이루어졌다고 전합니다. [마가복음 내에서 하혈증 여인의 치유가 예수님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한 유일한 기적이었다면, 이 치유는 치유자와 치유 받는 자 사이에 거리가 유지된 유일한 원격치유입니다.]
  막 7:24-30에서 무엇이 완고한 예수님을 바꿨습니까? 무엇이 수구꼴통 예수님의 낯을 부끄러움에 붉게 물들였습니까? 무엇이 예수님을 무장 해제시키고 항복하게 만들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 여인의 비움과 낮춤 때문이었습니다. 온유함과 겸손함 때문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모욕적인 말을 들은 이방 여인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강대 강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겸손과 인내로 대응했습니다. 예수님의 잔인한 말씀에 그녀는 결코 신경질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침착했습니다. 자기를 개로 비하시킨 예수님 앞에서 흥분하지 않고 더욱 겸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놀라운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예수님의 모멸적인 말씀에 화를 내기는커녕 “예, 그렇습니다. 저는 개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차분하게 시인했습니다. 깜짝 놀랄 일입니다.
  이렇게 나올 때 상대방이 어찌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상대방이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겠습니까? 앞에서 얼마 전까지 예수님은 ‘게네사렛 땅’에서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파 사람들 및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했다고 했습니다. 그 논쟁의 내용은 전통과 관습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유대의 전통과 관습을 지켜야 한다고 했고, 예수님은 그 정신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만 지키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전통과 관습의 굴레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남자요, 유대인이요, 강자인 예수님은 당시의 전통과 관습에 따라 아무 의식 없이 여자요, 이방인이요, 약자인 귀신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을 차별했고 갑질을 해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운동으로부터 배워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다”(갈 3:28)고 했는데, 정작 예수님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이 여인의 대답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말 폭탄에 대한 가장 어리석고 효과 없는 대응은 공격적인 언어에 대해서 더 공격적인 표현으로 맞대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증오의 회오리바람이 거칠게 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패배하게 됩니다. 이 이방 여인은 이와 같은 증오의 상승법칙을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맞대결이 아니라 자기비하를 통해 예수님과의 대화를 계속 이끌어 갔습니다. 스스로 개요, 부스러기를 얻어먹어 마땅한 존재임을 차분히 시인하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높여 부릅니다. 이렇듯 자신을 끝까지 비우고 낮춘 그녀의 온유하고 겸손한 믿음 앞에서 예수님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마가복음 안에서 예수님을 ‘주님’이라는 타이틀로 부른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사람입니다. 열두 제자도 다른 유대인도 누구도 예수님을 그렇게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온유함과 겸손함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이 이방 여인의 ‘단호함’입니다. 그녀는 유대인 다음으로 무한정 순서를 기다려야만 자기 딸이 치유 받을 수 있다는 예수님의 논리를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유대인과 남성이 다 먹기까지 기다릴 순 없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도 유대인과 함께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고, 여성도 남성들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여인은 이렇듯 의지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여인의 지혜와 논리에, 믿음과 간청에 자신의 입장을 거두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의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29절 “네가 그렇게 말하니, 돌아가거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는 말은 “옳은 말이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귀신은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는 말과 같습니다. 즉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녀의 논쟁적 주장(말과 논리) 때문에 그녀의 요청을 들어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눈을 예수님에게로 돌려보겠습니다. 잘 알다시피 예수님은 대단한 논객이었습니다. 논쟁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습니다.
공생애 시작 전 광야에서, 예수님은 마귀들과 논쟁하여 훌륭하게 이겨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 당원들이 세금문제로 논쟁을 걸어 왔을 때, 예수님은 통쾌하게 이기셨습니다. 영생에 대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했던 율법학자를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로 크게 깨닫게 하였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 하는 일로 논쟁이 벌어졌을 때에도, 장엄한 인권선언으로 물리치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에 대한 논쟁에서도 예수님은 뛰어난 지혜로 논쟁을 걸어 온 사람들을 물리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아무도 당해낼 수 없는 일당 백, 일당 천의 논객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가나안 여인, 이방 여인과의 논쟁에서는 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대응에 주목해야 합니다. 여인의 겸손하고도 당찬 대응에 예수님은 자신을 활짝 여셨습니다. 여인의 대답에 예수님은 자신을 열었을 뿐 아니라 철저히 비우셨습니다. 그 여인의 주장이 전적으로 옳음을 시인하셨습니다. 마치 그러한 응수를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예수님은 ‘당신이 옳소’라고 인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지셨음을 시인했습니다. 그는 패배하셨습니다. 놀랍고 놀라운 일은 그렇게 지심으로써 예수님은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어린 딸의 아픔을 제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 그것도 원격치유의 기적은 바로 그의 패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멋진 패배가 엄청난 치유의 효과를 가져 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과 그 여인과 어린 딸은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패배는 바로 복음(福音), 기쁜 소식, good news였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임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합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교회는 아직도 옛 노래만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과 관습만 되뇌는 수구꼴통이요, 청산대상입니다. 과연 우리는 변할 수 있을까요? 그 해답은 막 7:24-30에 있습니다. 
이방 여인의 온유하고 겸손한 믿음 앞에서, 당당한 지적 앞에서 “내가 틀리고 당신이 옳소”라고 예수님이 정직하게 시인하고 자기 입장을 바꾸었듯이, 한국교회가 세상의 여러 충고와 지적에 마음을 활짝 열고 귀 기울이고 잘못된 전통과 관습을 과감히 버릴 수 있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변화되고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도 언제든 변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바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옛 노래만 부르는데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목숨처럼 생각하는 가치까지도 버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잘못된 전통이고 관습이라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한 이방 여인을 통해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내셨습니다. 승리가 아니라 패배를 통해서 함께 이겼고 다 같이 살았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신앙인이 되십시다. 하지만 부당과 불의에는 당당하십시다. 그리고 기꺼이 나를 비우고 진리를 채우십시다. 지는 것이 이기는 길이란 것을 체득하십시다. 그래서 나도 살고 너도 살고, 모두 함께 사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십시다.

∎막 7장 복습
(1) 증언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2018.9.2.) 중에서
  레위기의 하나님은 “나는 거룩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문제는 “나는 거룩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사람들더러 “그러니 너희도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명령한데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더러 “나처럼 되라!”고 명령하신 것 아닙니까? 이 명령을 (인간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영역으로, 속(俗)에서 성(聖)으로 넘어오라는 뜻 이외에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 명령은 “너희도 나처럼 되라! 나처럼 거룩하게 되라!”는 명령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누가는 “하나님이 자비하니 너희도 자비하라”고 표현만 달리한 것뿐입니다. 표현만 다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사람더러 하나님의 특성(character)을 즉 하나님의 품성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처럼 될 수 있을까요? 이 불가능을 어떻게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2) 증언 “에바다, 열리라!”(2018.9.9.) 중에서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하기 위해, 불통이 아니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적인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영적인 귀머거리와 벙어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대화할 수 없고, 하나님과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오늘 예수님은 육체적인 소통 장애, 사회적인 소통 장애, 영적인 소통 장애를 가진 우리에게 “에바다!”라고 명령하십니다. 닫힌 귀를 열고, 굳어진 마음 문을 열라고 하십니다. 닫힌 사람이 아니라 열린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보수적인 신앙인이 아니라 진보적인 신앙인이 되라 하십니다. 특별히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우리는 내가 상대방에게 닫힌 사람이 아닌가를 늘 성찰해야 합니다. 오늘 당신 스스로를 개방하시며 우리에게 개방하라고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에바다”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빕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8: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