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7:1-23 “다 깨끗하다.”

마가는 7장 1-23절에 유대인들의 인습을 비판하는 전승들을 모아놓았습니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정법 (1-8절)

유대인들은 식사 직전에 한 움큼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3절).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씻거나 사 온 물건들을 씻었습니다. 잔과 단지와 놋그릇 따위 생활용품도 씻었습니다(4절). 아래의 출애굽기 30장 17-21절을 보면 원래 제관들이 제사를 바치기 전에 손발을 씻는 세정법이 있었습니다.

17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18“너는 물두멍과 그 받침을 놋쇠로 만들어서, 씻는 데 쓰게 하여라. 너는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거기에 물을 담아라. 19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물로 그들의 손과 발을 씻을 것이다. 20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물로 씻어야 죽지 않는다. 그들이 나 주에게 제물을 살라 바치려고 제단으로 가까이 갈 때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21이와 같이 그들은 그들의 손과 발을 씻어야 죽지 않는다. 이것은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이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이 이 세정법을 세분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적용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시대에는 위와 같은 세정법들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었기 때문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에게서 비난을 듣습니다. 이 비난에 대한 답변이 6-7절에 있는데 이는 이사야 29장 1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13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예수님은 식전에 손을 씻는 것이 위생상의 문제일지언정 결코 윤리문제는 아니라고 답변하셨을 법합니다(막 2:27 참조).

(2) 고르반법(9-13절)

고르반은 히브리어로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물건을 두고 고르반이라고 하면 그 물건은 일반인이 사용할 수 없고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 바쳐야 했습니다. 신심이 돈독해서 고르반 서약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때로는 부모 봉양을 기피하려고 고르반 서약을 남발하는 불효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들은 고르반 서약을 한 물품을 성전에 바치지 않았습니다. 종교를 빙자해서 인륜을 저버렸을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비행을 호되게 꾸짖으셨습니다.

(3) 금기식품법(14-23절)

구약성서는 이미 정결한 식품과 불결한 식품을 구분해 놓았습니다(레 11장; 신 14:3-21). 그런데 예수님 시대 유대교에서는 금기식품법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금지된 식품은 돼지, 쥐, 뱀, 토끼, 낙타, 개, 목을 졸라서 죽인 짐승고기, 피, 낙지, 오징어, 문어 따위입니다. 금기식품법을 폐기하시는 예수님의 폭탄선언이 15절에 나옵니다. 사람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사람에게서 나오는 악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명언입니다. 예수님의 명언에 동조하는 교회의 두 가지 견해가 18b-l9a, 20-23절에 전해 옵니다.

예수님이 살던 1세기 유대 사회는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레 19:2; 14:44; 20:26)는 레위기의 말씀에 따라 거룩하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사회였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회의 최대 규범이었습니다. 거룩함은 불결하고, 부정하고, 죄 된 것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과 구별되는 순결(純潔)이나 정결(淨潔), 그리고 성결(聖潔)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정결제도”(purity system)인데, 당시 유대 사회는 이런 정결제도에 의해 지배받던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순결하냐 부정하냐, 의인이냐 죄인이냐를 구별하는 일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나면 그의 나이가 몇인지, 본관이 어디인지, 양놈인지 상놈인지 등을 제일 먼저 알아보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만나면 제일 먼저 그 사람이 거룩하냐 부정하냐, 정결하냐 불결하냐 하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럼 누가 정결한 사람이었을까요? 정결법을 포함한 여러 율법들을 잘 지키면 깨끗하고 의롭지만, 율법을 잘 지키지 않으면 (또는 잘 지키지 못하면) 부정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장애인도 정결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번영하는 게 당연한 일이므로, 가난은 의롭지 못하다는 반증이었습니다. 기타 성별이나 인종에 의해서도 정결한 사람과 불결한 사람이 갈리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정결제도는 이렇게 모든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제도여서, 정결하지 못한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당시 유대 사회는 명확한 경계(boundary)를 가진 사회로서 의인과 죄인, 건강함과 병듦, 온전한 자들과 불구자들, 남성과 여성, 부자와 가난한 자,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정결한 편에 선 사람들이 부정한 편에 선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배척하고 정죄하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마가복음 7장 1-23절의 말씀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말과 행동(=예수님의 복음)은 여러 면에서 정결(=율법)과 반대되는데, 가장 주목할 것은 포용성입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정결에 대한 관심은 본질적으로 경계선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복음적 삶은 본질적으로 경계선을 넘어섭니다. 아니 기존의 모든 경계선들을 부숴 버립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바로 이런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배척”이 아닌 “포용”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서가 말하는 예수의 길이고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길입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차별’이나 ‘혐오’는 예수의 뒤를 따르는 교회의 길이 결코 될 수 없고,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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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7:24-30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믿음

막 7:24-30에 대해서는 오는 9월 9일 증언을 통해 자세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막 7:31-37 “에바다! 열려라!”

막 7:31-37은 예수님이 ‘귀 먹고 말 더듬는’ 한 불쌍한 사람을 치유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면 내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도 없고, 반대로 상대방의 뜻을 전달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부재는 이해의 부재를 결과합니다. 이는 소통을 뜻하는 영어 단어가 ‘mutual understanding’(상호이해)인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귀머거리요 벙어리를 이렇게 이해할 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이 누구를 가리키는가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단지 귀 먹고 말 더듬는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문제가 있는 사회적 장애를 가진 사람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와 여러분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자주 만납니다. 여기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두 사람이 다른 나라 말을 사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같은 모국어로 말해도 종종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 간에, 부모 자식 간에, 교우 간에, 친구 간에 우리는 종종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해합니다. 왜 말이 통하지 않을까요?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벙어리가 왜 벙어리인줄 아십니까? 벙어리의 90%는 귀머거리라고 합니다. 즉 듣지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들으면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 상호간에 말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말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대화(對話)는 dialogue입니다. monologue, 즉 혼자만의 독백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들어야 하고, 말하고 들은 후에는 이제 역할을 바꿔 이제까지 들었던 사람이 말하고 말했던 사람은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주거니 받거니’가 안 됩니다. 듣지는 않고 말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대화가 가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먼저 ‘잘’ 듣는 것입니다. 아이가 말을 배울 때 먼저 귀가 트여야 하고, 말문이 트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도 먼저 귀가 뚫려야 말문이 트이지 않습니까! 앞서 말한 벙어리는 원래부터 벙어리가 아니라 귀머거리이기 때문에 벙어리가 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따라서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듣되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잘 듣는 것’, 즉 ‘경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두 귀 쫑긋 세우고 남이 무슨 말을 하나, 왜 그런 말을 하나 잘 생각하면서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 없이 진정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TV나 라디오를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채널이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채널이나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들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남과 이야기할 때 상대방에게 주파수를 맞추어야 합니다. 내 채널에 주파수를 맞추고 남의 말을 듣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듣는 것은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 듣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좋고 옳은 이야기를 해도 나는 그것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내 귀는 상대방이 아닌 내 주파수에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무슨 소리를 들어도 자기 식대로 해석합니다. 그러니 대화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잘못 들으니 잘못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자기 주파수에만 채널을 고정할까요? 여기에도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만 총체적으로 말하면 우리 마음의 문이 닫혀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니까 대화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닫힌 마음을 성경은 완고한 마음, 굳은 마음 등의 은유로 묘사합니다. 이런 딱딱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필터를 통해서 해석해서 듣기 때문입니다. 즉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같은 말을 들어도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면 충고로 들리지만 싫어하는 사람이 하면 비난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은 자주 마음의 할례를 주장합니다. 시편 51편 10절에서 “아, 하나님,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내 속을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합니다. 이해가 가능합니다. 사랑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들어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에바다”, “열려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를 진단하는 바로미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변화 여부입니다. 의사소통은 앞서 말했듯이 양방향 소통인데, 이 말에는 소통 당사자 ‘모두’가 ‘변할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화는 단지 내 의사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의사를 전달받는 것에도 그 목적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 뜻을 가진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그 사람의 뜻을 이해하게 되면 수용할 수 있고 수용하면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사회적 귀머거리와 벙어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것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개인 간의 소통 부재가 사회의 소통의 부재로 이어지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물론 소통이 부재한 사회는 문제가 많은 병든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는 극복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독백이 아니라 대화를 하기 위해서, 불통이 아니라 소통을 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회적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영적인 귀머거리와 벙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과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과도 대화할 수 없고, 하나님과 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대화하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들어야 합니다. 내 말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따라서 수용하지도 못합니다. 앞서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은 양자 모두 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양자 모두’입니다.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관계에서는 변화도 일방적이 아니라 양방향으로 일어납니다. 곧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변하신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변할 것을 요구하신다면 사람도 하나님께 변할 것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변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나님은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는 요구는 변화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기도는 하나님이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거기에 따라서 하나님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이 그토록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사람과 양방향으로 소통하시는 분이고 스스로를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분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개인의 차원에서나 공동체의 차원에서나 미래는 완전히 열려 있다고 말합니다.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더불어 하나님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합니다. 나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신앙 훈련이고 하나님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은 기도입니다. 신앙 훈련과 기도는 따라서 모든 신앙인이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들입니다. 두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 양방향으로 더욱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풍요로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