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11:27-12:20 말씀 순례

(1)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창 12:4a)

창세기 11장 27절로 12장 4절의 말씀을 잘 읽어보면 ‘왜 아버지 데라가 아니라 아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11장 27절로 32절에 있는 ‘데라의 족보’에 의하면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입니다(11:27). 그리고 그의 고향은 ‘바빌로니아(갈대아) 우르’입니다(11:28). 그런데 데라는 아들 아브람 내외와 손자 롯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 고향 바빌로니아 우르를 떠났습니다(11:31). 즉, 가나안을 향한 이주는 아브라함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 데라가 처음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중에 ‘하란’에서 멈추었고, 거기서 자리를 잡고 살다가 205세에 죽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11:31-32).

다음으로 창세기 12장 1절로 4절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거라”(12:1)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미지의 땅 가나안을 향해 무조건 떠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어디서 떠났습니까? 12장 4절은 그곳이 ‘하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란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곳 ‘하란’은 임시정착지였지 결코 고향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바빌로니아(갈대아) 우르’입니다. 그래서 15장 7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 너를 바빌로니아(갈대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었다”라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2장 1절의 명령은 원래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것이 아니고, 그의 아버지 데라에게 주어졌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데라는 고향 바빌로니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그는 하란에서 멈추고 말았습니다. 왜 멈추었을까요? 데라는 70세에 아브라함을 낳았고(11:26) 205세에 죽었습니다(11:32). 그리고 아브라함이 75세에 하란을 떠났으니까(12:4), 그 때 데라의 나이는 145세였을 것입니다. 145세, 나이가 너무 많아서 데라는 중간에 포기한 것일까요? 그런데 데라는 아브라함이 떠난 후 하란에서 홀로 60년을 더 살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그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 때문에 데라는 하란에서 멈추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데라는 고향 바빌로니아 우르를 떠났다가 하란에 “자리를 잡고 살았고”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떠났다”는 사실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은 정착했고, 다른 한 사람은 떠났습니다. 바로 이 차이 때문에 데라가 아닌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먼저 부르심을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누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랐느냐가 중요합니다. 데라와 아브라함의 경우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데라는 먼저 부르심을 받고 출발했지만 중간에 마음을 바꿔 포기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나중에 부르심을 받았지만 끝까지 하나님 말씀을 따랐기에 후세에까지 영원토록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데라와 아브라함은 두 가지 인간상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데라가 상징하는 인간상은 ‘머묾’입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이 상징하는 인간상은 ‘떠남’입니다. 우리 인간은 ‘머묾’과 ‘떠남’, 이 둘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은 ‘머묾’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낙원에 머물며 그곳을 맡아서 돌보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2:8.15 참조). 즉, 안주(安住)가 그의 삶의 소명이었던 것입니다. 그곳 에덴동산에는 아담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사람, 곧 그의 짝 하와까지도 마련해 주셨습니다. 실로 그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담이 자기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분수 밖의 것을 욕심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가 필요할 때 그 하나로서 만족해야지 둘을 욕심내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되는데, 아담의 경우가 꼭 그랬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살되 욕망에 따라서 살면 안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할 때 안주(安住)라는 것이 가능합니다. [안주(安住)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한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삶’이란 뜻과 함께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함’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한데 아담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자기 필요를 넘어 헛된 욕망을 좇았고, 결국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까지 따먹었습니다. 이것이 안주하는 인간이 자초한 재앙입니다. 결국 정착(定着)은 집착(執着)으로 이어졌고, 집착은 죄와 죽음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담으로 대표되는 머묾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소유함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소유가 자기 삶을 보장한다고 생각합니다.

풍부한 소유가 풍성한 삶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라도 더 많이 가지려고 끊임없이 아등바등 댑니다. 과연 인간은 얼마만큼을 소유해야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또 반대로 얼마 이상을 소유하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답해야 할 어려운 숙제입니다. 아마도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를 것인데, 그 표준은 내가 물질을 소유해야지 물질이 나를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필요에 의해서 이것저것 하나하나 장만하여 소유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어 그 소유물이 나를 얽매일 때, 즉 그 소유물에 중독되어서 내가 그것 없이는 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것은 한계와 기준을 넘어선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짐을 당하게 된 단계입니다. 즉, 물질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되면 안 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소유욕은 그 한계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되는 인간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으로 대표되는 떠남의 인간상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 주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4절은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다섯이었다”고 전합니다. 언뜻 보면 이 말씀은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으로 상징되는 ‘공간’과, 그리고 “75세의 나이”로 상징되는 ‘시간’을 떠난 것으로 보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닙니다.

기원전 2000년경이었을 당시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난다”는 것, 그래서 ‘종족에게서 이탈하여 이방 땅에 간다’는 것은 생명을 건 모험의 길에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자기를 보안하고 있고, 그래서 안전할 수 있고, 정주(定住)할 수 있는 울타리가 되는 그 자리, 종족이 서로 어울려서 힘이 되고 있는 그 자리, 마침내는 아비의 집까지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되는 일체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떠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모든 것이 갖추어진 풍요로운 조건을 포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자기를 무장해서 이것을 미래에도 연장해 보려는 삶의 자세를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여 준 ‘첫 믿음’은 아무 것도 보장돼 있지 않은 미래를 향해 조건 없이 내어 딛는 발걸음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런 저런 계산을 해보고 확실하다는 보장을 얻은 다음에 걸어간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되는 일체의 것을 과감히 버리고 떠나는 행위였습니다. 이렇듯 새로운 인간 아브라함의 특징은 ‘떠남’으로 규정됩니다. 그 떠남의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해후(邂逅)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가진 것에서 자기를 느끼고 그것으로 보장을 삼으려는 사람은 새로운 가능성에서 차단되어 있습니다. 신앙, 그것은 새로운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차단된 세계에서 과감히 자기를 탈출시키며, 이 탈출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떠난다는 것은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한 적극적인 추구입니다. 소유가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떠남의 인간상’의 특징입니다.

인간에게는 크게 두 가지 욕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착하려는 욕구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하려는, 즉 버리고 떠나려는 욕구입니다. 이 두 방향은 상호긴장 내지 모순의 관계를 빚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정착의 욕구는 안전하려는 욕구입니다. 안전하려는 이 욕구에는 벌써 무엇인가 자기의 삶을 보장할만한 것을 소유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따라서 안전의 욕구는 보수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는 이미 가진 것에 대한 집착입니다. 따라서 보수적인 삶은 폐쇄적입니다. 자칫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침해받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외부로부터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자신의 영역을 외부와 차단합니다. 그러므로 안정의 욕구에는 새 것에 대한 공포가 자리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개척적이거나 진취적인 것을 거부합니다.

이에 대하여 자유의 욕구는 어떤 속박에서나 해방되려는 욕구가 모든 것에 앞섭니다. 자유에의 희구는 모든 것에서의 해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기존적인 것, 가령 그것이 가치든 질서이든 재산이든 간에 자신을 속박하는 것을 모두 내던져버립니다. 또 자유는 갇힌 것에서의 해방을 희구하기 때문에 언제나 개방적이며 새 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자유의 길에는 언제나 개혁 또는 변혁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은 소유가 아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 떠날 때 갖고 가지도 못할 것들을 하나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면서 오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물질의 주인이 되지 노예가 되지는 마십시오. 필요에 따라서 살되 욕망에 따라서 살지는 마십시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지십시오. 무엇보다도 소유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소유의 집착을 버리고 떠날 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십시오. 크게 버릴 때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십시오. 지상의 임시 거처가 아니라 하늘 고향의 영원한 처소를 바라보며 사십시오. 이것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에게 보인 모범이요, 신앙의 유산입니다.

(2) 주님께서 … 무서운 재앙을 내리셨으므로(창 12:17)

창세기 12장 10절 이하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어머니인 사라가 위험에 던져지는 상황이 이야기됩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10절은 기근이라는 말을 두 번씩이나 씀으로써 아브라함과 그의 가솔이 흉년으로 위협받은 상황을 알려 줍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이집트로 피해 간 아브라함은 또 다른 죽음의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내의 아름다움 때문에 죽게 될 것을 예견한 아브라함은 이집트 국경에 왔을 때 사라에게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를 것을 제안합니다(11-13절). 이처럼 인간은 죽음의 위협에 직면할 때 그가 결코 넘겨주어서는 안 될 것까지 넘겨주면서 목숨을 건지려 합니다. 양식을 구걸하는 자로서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어떻게 처신해야 했을까요?

아브라함은 혼인의 성실성을 파괴시킬 윤리적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로 향한 최선의 선택을 했었어야 했습니다. 언제나 해결책을 가지시고, 다른 탈출구를 아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포에 사로잡힌 그는 살아남기 위해 그의 아내를 넘겨주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보다는 임기응변식의 계략을 꾸미는 아브라함은 신앙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성경 저자가 이런 아브라함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존하여 기록한 것은 도덕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주체는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의 처신 때문에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위험에 빠졌으나, 하나님은 이에 적극 개입하셔서 하고자 하신 일을 이루십니다. 결국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와 사랑을 알려 주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선택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훌륭함이나 공적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선택된 사람의 잘못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성실한 분이십니다.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