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4 개요 : 경구(警句)와 비유(比喩)

마가복음 4장에는 ‘씨’와 관련된 세 가지 ‘비유’들이 연속으로 나옵니다. 3-9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26-29절의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 그리고 30-32절의 ‘겨자씨의 비유’가 그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상황 묘사’(1-2절),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우의적 해설’(10.13-20절), 경구를 포함한 몇 가지 토막 말씀들(11-12.21-25절)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대부분 경구(aphorism)와 비유(parable)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경구란 기억하기 쉬운 짧은 격언이나 잠언으로, 주로 “한 줄짜리 말씀”입니다. 반면에 비유는 “짧은 이야기”입니다. 이 두 형식은 독특한 방식으로 기능하는데,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경구와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경구와 비유의 일차적인 목적은 청중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경구는 도발적인 격언으로서 청중을 더 깊이 있는 통찰로 초대합니다. 그래서 그렇지 않았으면 보지 못했을 무언가를 보도록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비유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는 경구만큼이나 짧아서 차이점이라면 그것이 이야기체라는 것밖에 없는 것들이 있는데(예: 겨자씨의 비유), 이 짧은 비유는 경구와 거의 비슷하게 상상력을 일으키는 도발적인 이야기들로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도록 기능합니다. 이와는 달리 보다 긴 비유는 청중들을 이야기의 세계로 이끕니다(예: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즉, 어느 정도 긴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그 이야기를 경험하면서, 그 이야기의 빛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도록 초대합니다.

이렇듯 비유와 경구는 모두 초대하는 연설의 형식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상상력에게 말을 겁니다. “이렇게 하라”는 명령이기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보라”는 초청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이 지혜를 가르친 방법은 비권위주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적인 법의 수여자(law-giver)처럼 “주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이렇게 하라”고 연설하지 않았고, 영감에 사로잡힌 예언자처럼 “주의 말씀을 들어라”고 연설하지도 않았습니다. 비유와 경구는 신적인 권위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유와 경구의 권위는 오히려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그 자체의 능력에서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는 말은“이것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요구이다”라는 말과 전혀 다릅니다. 이 목소리는 ‘명령조’가 아니라 ‘권유조’입니다.

이렇듯 지혜의 스승이셨던 예수님은 경구와 비유를 사용하여 그의 청중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도록 초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됩니다. “눈은 몸의 등불”(마 6:22; 눅 11:33)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혜의 스승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르게 살도록 초청하신 분에 다름 아닙니다.

∎4:1-9 : 하나님 나라는 손해 보는 경험이다?

소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알려진 막 4:1-9의 말씀은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이 성서에 실려 있는 관계로(막 4:13-20) 오랜 동안 잘못 해석되어 왔습니다. 근래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신약성서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예수님이 본래 말씀하신 형태로 ‘재건’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씨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갔다. 뿌릴 새

어떤 것은 길가에 떨어졌고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다.

다른 것은 바위 위에 떨어졌다. 해가 돋았을 때 타버렸다.

다른 것은 가시 위에 떨어졌다. 가시들이 자라 질식시켰다.

다른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졌다. 열매를 내었고 맺었다.

삼십 배로 육십 배로 백 배로

이를 보면 이 비유의 제목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씨앗들에도 일종의 운명이 있다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 가지 땅에 떨어진 씨앗들과 같습니다. 그 중에 좋은 땅에 떨어진 것만 삼십 배, 육십 배, 또는 백 배로 결실을 맺습니다. 나머진 모두 실패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백 배의 결실’도 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 미세눔이란 곳에 주둔해 있던 로마군 함대의 사령관이었던 플리니(Pliny, 주후 23-79)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까지 자연에 관해 알려진 모든 것을 집약하려는 시도로 일종의 백과사전인 󰡔자연사󰡕(Natural History)라는 책을 썼는데, 그것이 무려 37권이나 됩니다. 그의 보고에 따르면, 당시 일반적으로 씨앗 한 알이 박토의 경우는 일백 배, 옥토의 경우는 이백 내지 사백 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강원도 옥수수의 경우 한 알을 심으면 칠백 알 정도 결실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은 정말 별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는 잘 해야 겨우 본전이고 그렇지 않으면 손해다”라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와 비슷한 비유가 도마복음에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는 음식이 가득 차 있는 항아리 하나를 머리에 이고 먼 길을 떠나는 한 아낙과 같다. 항아리의 손잡이가 깨어졌고 음식은 아낙이 모르는 채 노상에서 아낙 뒤로 새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낙이 집에 도착하였을 때, 그는 항아리를 내려놓았다. 그제야 항아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알아 차렸다. (도마 97)

하나님의 나라는 항아리와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은 속이 음식으로 꽉 찬 사렙다 과부의 항아리(왕상 17:8-16)와 같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차라리 ‘비움’이고 ‘손실’입니다. 개개인의 손해 없이 어찌 하나님의 온전한 나라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나라는 음식이나 먹음의 축제와 같아, 아낙의 발걸음 따라 길바닥에 흘린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스스로 땅에 떨어지고 바닥에 널려진 음식물입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널려 있지 않을 바엔, 자격 없는 사람에까지 그것이 어찌 하나님의 나라일 수 있겠습니까!(이에 대해서는 뒤에 ‘겨자씨의 비유’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손해 보는 경험입니다. 누구나 이기려 하고 이익을 보려 하는 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 남들을 등쳐먹으면서 살기 보다는 손해를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 나라에 가깝습니다.

∎4:14-20 :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

마가복음을 비롯한 공관복음에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4:3-9)에 이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해설’(4:14-20)이 곧바로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해설을 토대로 비유를 해석합니다. 하지만 신약성서 학자들은 이 해설의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이 둘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 있는 차이점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① 우리말 번역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비유는 실패한 씨를 단

수로, 성공한 씨를 복수로 예민하게 구분합니다. 그러나 해설의 말씀에서는 실패한 경우든 성공한 경우든 모두 복수 형태로만 쓰이고 있습니다.

② ‘수의 변화’가 ‘초점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비유는 분명 ‘씨’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어 말하고 있으나, 해설은 반대로 ‘밭’(땅)에 초점을 맞춥니다. 해석의 말씀에서 네 종류의 밭은 네 종류의 사람입니다. 인간의 범주화는 한 사람이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③ 수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비유는 실패한 세 경우와 성공한 세 경우 사이에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그러나 해설의 말씀은 이를 무시한 채, 네 종류의 밭(사람)을 열거하면서 ‘차원 높은’ 설명을 제시할 뿐입니다.

④ 차이점은 형식의 문제를 넘어 세계관의 문제에도 발생합니다. 해설의 말씀은 분명 4절의 새를 사탄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15절). 새와 함께 해와 가시도 말씀의 성장을 가로막는 사탄적 역할을 합니다. 즉 자연계를 사탄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비유 자체만으로 보면 어떻습니까? 새나 해나 가시 가운데 어느 것도 사탄이라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이는 겨자씨의 비유에서 다 자란 나무 그늘에 깃들인 새가 결코 사탄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입니다(막 4:32).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새는 백합화나 들풀과 함께 오히려 모든 인생들이 본받아 살아야 할 ‘스승’으로 등장합니다(마 6:25-34. 특히 26절).

이는 해설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해설’은 예수님 자신의 해설이 아니고 초대교회의 우의적 해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초대교회는 전도를 해봐도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고, 신도들의 생활을 살펴봐도 부실한 면이 많은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 교회는 그 체험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소재 하나하나와 연결시키면서 우의적 해설을 내린 것입니다. 즉 전도에 어려움을 겪는 전도자들을 격려하고, 신앙생활이 미흡한 신도들을 훈계하려고 이런 해설을 시도했던 것입니다.

∎4:26-29 : 하나님 나라는 이와 같다!

※ 2018년 6월 17일 질그릇 참조.

∎4:30-32: 바꿔! 너희 생각을. 초라한 나라의 낮으신 하나님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겨자씨의 비유’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유는 막 4:30-32과 마 13:31-32, 그리고 눅 13:18-19에 등장합니다. 우리 기억에는 인간의 육안(肉限)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씨앗이 가장 큰 나무가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교회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같이 확장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어볼까요?

30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32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성경의 종말 비전에 나타난 ‘나무’의 이미

지와 너무나도 흡사합니다. 예언자 에스겔과, 그리고 훨씬 후대의 다니엘은 세계수(世界樹)의 이상을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백향목 끝에 돋은 가지를 꺾어다가 심겠다. 내가 그 나무의 맨 꼭대기에 돋은 어린 가지들 가운데서 연한 가지를 하나 꺾어다가, 내가 직접 높이 우뚝 솟은 산 위에 심겠다.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내가 그 가지를 심어 놓으면, 거기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열매를 맺으며, 아름다운 백향목이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온갖 새들이 그 나무에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들이 그 가지 끝에서 보금자리를 만들 것이다.” (겔 17:22-23)

내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에, 나의 머리 속에 나타난 환상은 이러하다. 내가 보니, 땅의 한가운데 아주 높고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그 나무가 점점 자라서 튼튼하게 되고, 그 높이가 하늘에 닿으니, 땅 끝에서도 그 나무를 볼 수 있었다. 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아름답고, 열매는 온 세상이 먹고도 남을 만큼 풍성하였다. 들짐승이 그 그늘 아래에서 쉬고, 그 큰 나무의 가지에는 하늘의 새들이 깃들며, 모든 생물이 그 나무에서 먹이를 얻었다.(단 4,10-12)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와 구약의 종말 비전에 나타난 ‘나무’ 예언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⑴ 씨(혹은 가지)가 땅에 심긴다.

⑵ 그것은 큰 나무(또는 이에 준하는 것)가 되도록 성장한다.

⑶ 그 가지가 무성해지고 새들이 와서 깃들이다.

이 같은 공통점은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가 구약의 종말 비전에서 그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자 한다면 구약의 종말 비전에 나타난 나무의 이미지에 대해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스겔과 다니엘이 전한 나무의 종말 비전은 ‘중심’과 ‘높이’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환상 가운데 본 ‘이스라엘의 높은 산’은

시온 성전이 있는 야훼의 높은 산, 곧 성전(聖殿)산을 뜻합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산에 심겨진 그 나무는 높아질 것입니다. 에스겔의 영향을 받은 다니엘의 환상에서, 세계수는 그 뿌리는 땅에 박혀 있지만 높이는 얼마나 높은지 그 키가 하늘까지 닿았다고 합니다. 더욱이 다니엘은 그 나무가 아예 ‘땅의 한가운데’ 즉, ‘우주의 중앙’에 있어 땅 끝에서도 볼 수 있으리라고 합니다.

“온갖 새들이 거기에 깃들인다”는 것은 보호를 바라는 모든 생명체에게 그 나무가 생명의 도피처가 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는 ‘위대한 나라’에 대한 전통적인 이미지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의 환상에서 ‘나무’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나타내는 일종의 ‘상징’입니다. 에스겔과 다니엘의 종말 비전은 이스라엘의 미래, 곧 그들의 메시아 왕국이 레바논의 백향목과 같으리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이 나무야말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사용된 가장 귀한 고급 목재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향하여 올곧게 뻗은 레바논의 수려한 나무 백향목 꼭대기로부터 ‘높은’ 가지 하나를 취하여 땅에 심을 것입니다. 거기서 난 연한 가지는 다시 이스라엘의 ‘높고 우뚝한 산’, 아니 우주의 ‘중심’(복판)에 심길 것입니다. 이 세계수의 뿌리는 땅에 닿았으나 그 키는 하늘(하나님)에 닿도록 그렇게 자랄 것입니다! 이 나무는 잎사귀가 싱싱하고 열매가 많아 세상 사람이 다 먹고 살 만큼이고, 들짐승들은 그 그늘에 안식하며, 하늘을 나는 새들은 그 가지에 깃들일 것입니다.

이 나무 비전이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투사(projection)라면, 이 세계수는 메시아 왕국의 염원에 다름 아닙니다. 우리네 한민족처럼 언제나 주변 열강에게 압제와 착취만을 당해 왔던 한 많은 유대민족! 그들이 꿈꿔온 메시아 왕국이란 그 나무처럼 세계 만민이 흠모할 만큼 ‘중심’에 자리하며,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이’ 서 있는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 배타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세계의 중심에 서서 세계를 지배하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일종의 ‘세계제국’이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대망(大望)하던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세계제국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겨자씨 비유를 듣던 당시의 청중이 기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기들 이스라엘이 이제는 더 이상 제국들의 지배와 압제를 받지 않고, 오히려 제국들보다 더 큰 제국이 되어 모든 제국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기대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이런 빛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다시 들어보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습니까? 그것을 무엇에다가 비길까요? 그것은 겨자씨의 다음 경우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겨자씨를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습니다”(눅 13:18-19).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겨자씨의 비유는 누가의 것이 마가의 것보다 예수님의 원래 말씀에 더 가깝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부터는 누가복음의 것을 인용했습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백향목’이 아니라 ‘겨자’라니요? 많고 많은 식물들 가운데 왜 하필이면 겨자라는 말입니까? 앞서 소개한 플리니의 󰡔자연사󰡕란 책을 보면 ‘겨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겨자는 이식되어 개량되기는 하였지만 거의 야생에서 자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단 심겨지면 그 자리에서 겨자를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 씨는 일단 떨어지면 즉시 싹이 튼다.

겨자는 우리네 ‘쑥’과 같이 쓸모는 많은 식물이지만 ‘잡초’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은 겨자씨를 ‘자기 정원’에다가 심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그는 말썽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식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19b절을 보십시오. “(너는) 밭에다가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씨앗을 함께 뿌려서는 안 된다.” 또한 이종교배에 대한 미쉬나의 다음 가르침도 보십시오. “정원에 어떤 종류의 씨앗이든 다 심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몇 가지 정해진 푸성귀를 심어야 한다. 겨자와 팥은 씨앗의 일종으로 간주되며 강낭콩은 푸성귀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결국 레위기나 미쉬나나 정원에 겨자씨를 뿌리는 행위는 분명히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플리니가 언급한 것처럼 “일단 심겨지면 그 자리에서 겨자를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3미터까지 성장하는 겨자는 너무도 강인하고 억센 생명력으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면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겨자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도 쉽게 자리를 잡고 마침내는 그곳을 점령하는, 그러니까 통제하기 어렵고 뽑아내기도 어려운 그런 식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겨자풀이 번지면 그 일대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현장에서 이 비유를 듣던 청중의 입장이 되어보십시오. 앞서 밝혔듯이 청중들은 이 비유를 들으면서 아마도 레바논의 백향목을 연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대한 백향목이 아닌 우리네 쑥과 같은 겨자를 하나님 나라의 표상(表象)으로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렇게 작고 초라한 잡초와 같다니, 이 무슨 황당한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왜 그 위대한 ‘메시아 왕국’의 민족적 염원을 배반하고서, 하필이면 이렇게 초라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일까요?

역사의 질곡을 살았던 유대인들이 억눌림과 빼앗긴 ‘한’을 풀고자 제국들보다도 더 강한 ‘메시아 왕국’을 꿈꾸었다면, 그 나라 역시 제

국주의의 다른 모습 아니겠습니까? 힘의 경쟁에서 패한 자들이 꿈꿔 온 희망이 힘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면, 그것도 또 다른 힘의 논리 아니겠습니까? 만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가 이러한 메시아 왕국과 같다면, 그 안에서도 역시 힘이 지배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정의가 힘이 되지 못하고, 힘이 정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강자가 약자를 먹는 우리들 문제 많은 사회와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꿈꾸고 실현했던 하나님 나라는 그런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혀끝을 찌르고 이 세상에 들불처럼 번지는 ‘겨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탐욕과 배척과 이권으로 가득 찬 이 세상 속으로 사정없이 밀고 들어가, 나눔과 섬김과 치유와 사랑의 새 질서로 이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그런 나라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세 있는 백향목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미래’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무지렁이 잡초와 같은 인생들에게 주어진 ‘현재’의 나라였습니다. 그 나라는 아무 볼품없는 자도 그 안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고, 아무리 형편없는 자들도 그 안에서 몸 붙여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예수님의 이 비유는 우리에게 희망입니다.

예수님의 음성으로부터 우리는 그 나라로 초대를 받습니다. 그 나라는 우리에게 꼭 맞는 나라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우리에게 눈높이를 맞추려 낮아지신 하나님을 뵙니다. 하나님도 낮아지셨는데 내가 겸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의 나라가 초라해졌는데 뽐내며 잘난 척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문턱을 낮추었는데 그리로 아니 들어갈 사람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언제나 ‘중심’에 서고자 하고 ‘높아지려고만’ 애쓰는 우리네 군상들에게,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도 도무지 변하지 않는 우리네 속물(俗物)들에게, 아니 입으로는 예수님을 말하면서도 머리와 가슴으로는 상류사회만을 꿈꾸는 우리네 교회들에게 예수님의 비유는 이렇게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곰곰이 생각하기

(1) 위의 세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그 나라로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마지못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응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거절하시겠습니까? 과연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축소판입니까?

(2) 위 본문에서 예수님은 비유 외에 중간 중간에 경구를 포함한 몇 가지 토막 말씀들(11-12.21-25절)을 하셨습니다. 아래의 알쏭달쏭한 말씀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3:11-12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아와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3:24-25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만큼 너희에게 되질하여 주실 것이요, 덤으로 더 주실 것이다.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4:35-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