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30 :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막 3:20-30은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논쟁 이야기’입니다. 논쟁의 쟁점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데 그 힘, 그 권위의 출처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그 출처가 ‘악령(惡靈)’이냐 아니면 ‘성령(聖靈)’이냐?”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증언처럼,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인간으로 육화(肉化)했다, 성육신(成肉身)했다, incarnation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은 사탄(귀신)의 화육(化肉)”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힘의 출처가 무엇이냐? 악령이냐 아니면 성령이냐?”에 대한 정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이런 것이 쟁점이 되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 당시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 논쟁을 제기한 자들이 다름 아닌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율법학자들은 당대 최고의 석학(碩學)이었고, 전문가였으며, 엘리트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말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쉽게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예수님과 논쟁하는 이들은 그냥 율법학자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였습니다. 최고 중에서도 최고였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대중들은 그들의 주장을 그럴듯하게 여기고 마음을 빼앗겼을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가 마가복음을 공부한 바에 따르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곧바로 ‘치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1장 21절 이하에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친 이후에 오늘의 말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고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또 그 일들로 인해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로 대표되는 당시 체제의 기득권자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어떤 회당에서 손이 오르라든 사람을 고친 직후에는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3:6)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없애기에 앞서 적대자들은 예수님에게로 돌아선 민심(民心)을 돌이킬 필요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미 사람들이 보고 들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해서는 인정하되, 그 사역의 근거에 대해서 흑색선전을 함으로써 민심을 돌려보려고 했습니다. 그 흑색선전이 바로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렸다”, “그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3:22)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는 하나님의 성육신이 아니다. 그는 사탄의 화육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으로 살아가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이 흑색선전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예수님에게서 돌아서게 하지는 못할 지라도,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선뜻 다가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흑색선전은 원래 그런 것이 목적입니다.

이와 같은 율법학자들의 흑색선전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예수님은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23절)고 물으시면서 세 가지 짧은 비유를 들어 저들 논리의 허구성을 폭로합니다. 본문 24절로 26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 나라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는 버틸 수 없다.

한 가정이 갈라져서 싸우면, 그 가정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사탄이 스스로에게 반란을 일으켜서 갈라지면, 버틸 수 없고, 끝장이 난다.

“만약 ~이라면”이라는 형태로 구성된 이 비유들은 나라나, 가정이나, 사탄이나 서로 갈라져서 싸우면 버틸 수 없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집단이건 분열하여 싸우면 스스로 망하고 만다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적인 진리를 제기해서 율법학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한 세 가지 짧은 비유의 병행은 “분열해서 싸우면 망한다”는 뜻 이상의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라’는 다윗 왕국의 중앙집권화 된 정치를 뜻합니다. 또 ‘가정’ 곧 ‘집’은 그 나라의 상징적 중심인 하나님의 집 곧 ‘성전’을 가리킵니다.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나라’와 ‘집’은 ‘사탄’과 나란히 놓임으로써 서로 동일시됩니다. 즉 ‘나라’와 ‘집’, 다윗 왕국의 정치와 그 헤게모니를 쥔 성전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바알세불’의 말뜻은 본래 ‘거주의 영’입니다. 그렇다면 그 거주의 영은 지금 어디에 거주하고 있습니까? 어디든지 거주할 수 있는 그 악령은 지금 국가와 종교라는 구조와 제도에 거주합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사로잡고 지배하는 바알세불이란 바로 우리들이 그 안에 몸담고 있는 각종 조직들과 기구들 그리고 제도들과 형식들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영, 악령이란 바로 우리가 그 안에서 숨 쉬며 살아가고 있는 문화이며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막 1:21-28의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친 이야기’를 공부하면서 악한 귀신, 악령, 사탄이 무엇인지에 대한 미국의 저명한 신약성서학자 월터 윙크(Walter Wink)의 견해를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는 귀신이나 사탄을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 특히 정치·경제·문화적인 지배체제(dominant system)라는 구조 악(systemic evil)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실재”라고 해석합니다. 즉 하나님 외에 실제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엄청난 힘이 있는데, 그 힘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탄”이나 “악마” 혹은 “권세”이고, 이런 악의 힘이 통합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지배체제’이며, 그 지배체제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악한 영(정신)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 공부했던 것과 오늘의 말씀에 나오는 ‘바알세불’은 완전히 같은 개념입니다. 거주의 영인 ‘바알세불’은 권력의 구조와 제도에 ‘거주’하며, 구체적으로는 군사정권이나 제국주의 등 억압과 착취의 모든 모습으로 화육(化肉)합니다. 약한 자를 압제하는 모든 권력도, 힘없는 이를 착취하는 모든 기득권도 모두가 예외 없이 사탄의 화육에 다름 아닙니다.

이제 ‘분쟁’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투쟁’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27절에서 예수님은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세간을 털어 갈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어 갈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힘센 사람, 강한 자는 누구입니까? 물론 사탄입니다. 그렇다면 강한 자, 사탄을 묶어 놓는 더 강한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물론 예수님 자신입니다. 일찍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1:7)라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27절의 ‘세간’이란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값진 그릇을 가리킵니다. 이 단어는 마가복음 11장의 성전정화 때 한 차례 더 등장하는데, 거기서는 성전 기물을 뜻합니다(16절). 그것은 집에서 필요하든 들(밭)에서 필요하든, 전쟁 때 사용되든 평화 때 사용되든, 세속적인 목적에서든 혹은 종교적 목적에서든, ‘모든 좋은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강한 자 사탄을 결박하고 빼앗는 좋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탄이 사로잡고 있던 사람의 정신(과 영혼)이요, 사람 그 자체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구조와 각종 제도들 그리고 제국주의적 억압의 사탄적 힘이 스며있는 ‘세계’를 뚫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간’을 구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사탄은 아무런 친밀한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집을 뚫고 들어가 그를 결박하고 인간과 영혼을 해방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역사하는 힘은 사탄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사탄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결박하고 그 세간을 빼앗는 분입니다. 그것은 사탄에게 결박된 인간을 놓아주기 위함이며, 모든 사탄적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인간 해방의 말씀을 뒤로 하고 28절부터는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성령을 모독(훼방)함으로써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말씀입니다.

28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29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사람의 모든 죄와 신성모독은 사하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해석의 단초는 30절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악한 귀신이 들렸다’ 하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 활동하시며 사탄을 쫓아내는 그 해방의 영은 거주의 영 사탄과 대립된 것이었고, 따라서 하나님의 성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그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더러운 귀신이 들린 채 능력을 행사한다고 보았습니다. 성령을 훼방(모독)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란, 예수님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을 이렇듯 악령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선을 악이라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사탄의 파괴적 행위라고 왜곡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한 바알세불이 거주하는 그 억압적/파괴적/사탄적 굴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일을 악마의 행위라고 거짓 증언하는 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성령의 그 위대한 해방 사역과 그 취지를 왜곡시키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오해하는 자들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을 이용해서 진정한 인간해방의 거룩한 사역을 추악한 그 어떤 것으로 왜곡해 말하는 자들은 결단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루살렘 신학자들의 죄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과거 예루살렘의 율법학자와 같은 자들은 누구일까요? 누가 감히 하나님의 해방 역사를 사탄의 사역이라고 왜곡합니까? 어떻게 저들의 허구와 실체를 폭로하고 또 심판해야 할까요?

∎3:31-35 :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막 3:33에서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둘러보며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34-35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기존의 혈연적 가족 공동체를 허무시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족, 대안가족을 세우고 계십니다. 이 대안가족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동역하는 신앙인들의 모임이었고, 지금으로 말하면 바로 ‘교회’입니다. 사실 처음부터 교회는 대안가족의 역할로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교회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쓴 사도 바울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기독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호칭해 왔습니다. 하나님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기에 ‘아버지’라는 호칭은 부적절한 성차별적 용어임에 분명합니다. 차라리 ‘어버이’라는 호칭이 훨씬 나아보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남성우월주의 때문에? 만약 그렇다면 남자만을 가리키는 수많은 호칭들 가운데 왜 다른 것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황제”나 “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왜 하필 ‘아버지’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이 용어를 통해 집안의 가장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당시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은 대개 남자이기에, 그는 ‘아버지’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믿기에, 이 세상의 가장은 하나님이며,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권속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공동체 구성원들을 부를 때 흔히 “형제자매들”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 단어는 그의 진정한 편지들 속에 50회 이상 나옵니다. 사람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른 것은 단지 사회적 관습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 말에는 애정이 담겼지만, 단순히 애정만을 표현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 말은 “새로운 가족”을 표현하는 말로, 사회역사가들이 생물학적 가족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교회 공동체를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가족으로 보고, 교인들을 형제자매, 즉 동기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가 새로운 대안가족이라고 했을 때는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의무를 갖고 있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즉 어떤 형제나 자매가 아프거나 굶고 있다면 그를 돌봐주고 먹여줄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가족 구성원의 마땅한 도리이니까요. 바울이 활동했던 로마제국의 도시 세계에서는, 생물학적인 대가족들이 흩어지고 해체되고 때로는 완전히 서로를 잃어버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도시들로 이주한 사람들이 매우 많았으며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 공동체들은 “새로운 가족들”로서 생물학적인 가족들처럼 서로를 돌볼 책임이 있었습니다. 즉 크리스천 공동체들은 돌봄과 나눔의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와 비슷하게 우리사회의 가족 역시 ‘초핵가족화’와 ‘1인 가정의 증가’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 때 교회가 할 일 중 하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서로의 할아버지/할머니가 되어 주고, 아버지/어머니가 되어 주고, 형제/자매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힘겨운 세상 속에서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으며 함께 사는 것입니다. 특히 작은 교회는 이 역할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안가족은 가족구성원만 혈연관계에서 신앙관계로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성원의 교체뿐만 아니라 역할이나 가치의 교체 또한 있어야 합니다. 일반 가족의 문제점인 남성권위주의, 가족이기주의, 여성의 일방적인 희생 등은 대안가족 내에서는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교회가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니지만,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먼저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내야 하고, 이를 바깥 사회로 확장시켜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랬듯이 우리가 더 낮아지고, 희생하고, 양보하고,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준 말씀처럼 말입니다.

2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9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갈 6:2.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