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28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하루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다가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라고 하며 따졌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사무엘상 21장의 사건을 얘기하셨습니다. 다윗도 배가 고팠을 때 제사장 외에는 먹을 수 없었던 거룩한 떡을 먹었다고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는 저 유명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라는 말씀으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구약성서에는 여러 개의 법전이 있습니다. 반면 신약성서에는 법전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구약성서의 법전을 자기들에게도 유효한 하나님의 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운 법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법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융통성이 부족합니다. 법이 엿가락처럼 마음대로 늘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법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다 전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로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판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오래 전에 깨닫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율법을 적용한 판례들을 기록해서 후대에 전했습니다. 신약성서에서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들입니다. 또한 법이 점점 더 다양해졌고 복잡해졌기 때문에 결국 전문가도 필요해졌습니다. 율법학자 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법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법 자체에 치중하다보면 잊어버리기 쉬운 것이 하니 있습니다. 그것은 법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은 공동체가 지키고 유지하고 실현하고 싶어 하는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고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아닙니다. 물론 수단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수단이 목적에 앞설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목적은 실현되어야 하고, 수단은 잘 활용되어야 합니다. 잘 활용될 때에만 가치 있는 수단이 됩니다.

이렇듯 율법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에 그 목적을 잘 실현하기 위해서는 때로 그것을 초월해야 할 때도 있고 깨뜨리고 넘어서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수단이 굳어져서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을 가로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하나님의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의 실현을 가로막을 때는 과감하게 그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막 2:23-28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용과 형식, 목적과 수단은 그 본말(本末)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형식이나 수단도 내용을 담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1-6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어떤 안식일에 예수님이 한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제물 바치는 일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했지만, 토라를 배우고 가르치고 예배하는 일은 회당에서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엔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스파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무슨 짓을 하는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더러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라”고 말하시고는 회당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묘한 질문입니다. 안식일이 어떤 날입니까? 안식일은 일하지 않고 쉬는 날입니다. 그래서 편안할 ‘안’(安)자에 숨쉴 ‘식’(息)자를 써서 안식(安息)일이 아닙니까? 편안하게 숨 쉬는 날이니 일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지요. 일을 하면서 편안하게 숨을 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하지 않고 쉬는 날인 안식일에 어떤 일을 해야 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이 질문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바리새인들과 달리 이해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에게 안식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쉬는 게 안식일의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겐 안식일도 일하는 날이었습니다. 나아가 선한 일을 하느냐, 악한 일이냐? 이게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질문은 무엇이 선한 일이고 무엇이 악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친절하게 “사람을 살리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이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말문이 막혔던 까닭입니다. 왜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 했을까요? 예수님의 질문이 그토록 답하기 어려웠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굳어져서 대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안식일이 형식이라면 그 내용은 쉼입니다. 그런데 생명 앞에서 쉬어야 하는가 일해야 하는가를 물으니, 쉼은 형식이 되고 일이 내용이 됩니다. 안식일에는 쉬어야만 한다는 것을 고집하는 것은 안식일의 형식을 지키려는 것이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안식일에도 일할 수 있다는 태도는 안식일의 내용을 지키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어떤 하나님을 믿었는지 잘 보여줍니다. 그 하나님은 누가 안식일을 어기는지를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다가 이를 어기는 자가 발견되면 당장 엄히 벌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쉬어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쉬라고 한 이유는 안 그러면 사람이 죽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루도 쉬지 않고 열흘, 스무날, 한 달, 두 달을 일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살 수 없겠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믿었습니다. 곧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잘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믿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예수님이 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봤습니다. 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그렇게 태어난 선천적 장애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사회에서 장애인은 단순히 장애인이 아니었습니다. 장애는 누군가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본인이 아니면 그의 부모가 죄를 졌고, 그래서 하나님의 벌을 받아 그렇게 태어났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게 옳을까요, 아니면 죽이는 게 옳을까요?

이 사람을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이 봤습니다. 그분은 스파이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몸조심하는게 맞습니다. 기왕이면 권력자들 눈 밖에 나지 않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지켜보든 말든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들이 쳐놓은 올가미에 걸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과감하고 위험한 행동을 하게 했을까요? 저는 하나님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다고 확신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무관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그것을 원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기에 이렇게 행동하게 했을까요? 그렇게 행동하려면 중요한 유대인의 관습을 무시하거나 뛰어넘었어야 했습니다. 안식일 계명과 관련해서 바리새인들이 만들어놓은 복잡한 전통을 무시해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다 무시하셨습니다. 하긴 그들의 관습이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구약성서에 명시되어 있는 율법조항까지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만든 전통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직접 주신 계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그 계명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민수기 15장을 보면 안식일에 땔감을 해왔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사람 얘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땔감을 해왔다고 해서 모세 앞에 끌려왔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처리를 미루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모세더러 그를 처형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님에게 와서 민수기의 일화를 말하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하셨을까요? 그 하나님과 자신이 믿는 하나님은 크게 다르다고 답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은 안식일에 땔감을 해왔다고 해서 죽이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예수님에게 그런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믿는 하나님은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라고 하는 하나님이고 생명을 살리라고 하는 하나님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믿고 보여준 하나님은 안식일에 땔감을 했다고 해서 처형하라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안식일 법을 어길까봐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기만 바라는 분이 아닙니다. 안식일엔 몇 보 이상 걸으면 여행하는 것이 되어 그걸 금지하는 하나님, 안식일에는 불을 피워 밥을 해서도 안 된다는 하나님, 구덩이에 사람이 빠졌는데 안식일이라고 해서 구해주면 안 된다는 하나님, 예수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배가 고프면 밀 이삭을 비벼 먹어도 괜찮은 하나님입니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안식일에 그를 고쳐주라는 하나님입니다. 그 병 때문에 고통당해온 세월을 생각하면 일분일초도 지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본래 안식일은 그런 일을 하는 날이므로 금지는커녕 잘 했다고 칭찬하실 하나님이 예수님이 믿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주셨습니다. 거기 있던 사람들이 기적에 놀라거나 그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예수님의 선언을 듣고 놀라서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굳은 마음을 보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얘기를 듣습니다. 그 일을 본 바리새인들은 나가서 즉시 헤롯 당원들과 만나 예수님을 없애버릴 방도를 모의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본문만 보면 그 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쳐줬다고 해서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에게 무슨 피해가 되겠습니까? 병이 들게 한 것이 아니라 병을 고쳐주었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가 말입니다. 병을 고쳐주었으면 칭찬해야지 그것이 어떻게 고친 사람을 죽일 이유가 되겠습니까? 그럼 뭘까요? 그 날이 안식일이라서 그랬을까요?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날이 안식일이 아니라면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그것이 목숨을 걸만한 일이었을까요? 그랬다면 어떤 점에서 그랬을까요? 안식일 법은 하나님에 대한 법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에게’ 거룩한 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아닌 자들이 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줬다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가 말입니다. 그들에겐 거기에 생명을 걸만한 이해관계가 걸려 있었을까요?

맞습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교 권력자들에게는 예수님이 그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말과 행동이 매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생명을 걸만한 일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해석할 권한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5장에 나오는 얘기를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안식일에 땔감을 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를 붙들어 모세와 아론에게 데리고 갔는데 모세와 아론도 이런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를 그냥 가둬두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서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모세와 아론도 이 경우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나서야 문제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지시한 내용은 더 큰 문제를 만들었습니다만,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모세와 아론도 안식일 계명을 구체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할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집행할 권한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해도 괜찮은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에 대해서 수많은 세부 규정들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유대인들에게 강요한 자들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안식일에 그 회당에서 예수님이 한 말과 행동은 그들이 갖고 있던 하나님 말씀의 해석에 대한 독점적 권한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결정해온 것을 웬 나사렛 촌놈이 결정하겠다고 나서니 이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 말씀을 해석할 권한을 독점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권한이 배타적으로 자기에게 귀속된다고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권한을 ‘모든 사람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안식일이 왜 존재하는지만 알면, 안식일이 선한 일을 하고 사람을 살리는 날이란 것만 알면 그 다음은 각자가 알아서 해석하고 고백하고 실천하라는 것이 예수님의 주장이었습니다. 그것이 안식일 법이 됐든 뭐가 됐든 기본정신에만 부합된다면 그 다음에는 누구나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사람 중간에 서서 둘 사이를 중재한다면서 온갖 권한을 행사하던 사람들의 자리가 없어지겠지요. 제사장이나 율법학자들이 갖고 있던 권한 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 있던 종교 브로커, 또는 영적 거간꾼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공모해서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요?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3:20-35

- 성령을 모독한 죄란 무엇일까요?

- 누가 나의 가족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