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2 “많은 사람이 그에게로 몰려왔다”

사정상 막 2:23-3:6의 일화는 다음 시간에 다루고 오늘은 순서를 바꾸어 막 3:7-19의 일화를 먼저 다루고자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에 계실 때 동서남북 사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예수님에게로 몰려왔을까요? 아주 오래 전인 2000년도에 󰡔공관복음서 탐구󰡕라는 제목으로 성경공부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한데 당시에 MBC TV에서는 ｢허준｣이라는 드라마가 세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영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도 그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는데, 그 드라마를 보면서 마가복음이 제게 던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허준이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가는 길에 어떤 주막에 들릅니다. 그 주막엔 과거보러 한양으로 가는 여러 의원들이 묵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어떤 부부가 찾아와서 자기 어머니를 살려달라며 급하게 의원을 찾습니다. 다들 시간이 부족하다며 온 길을 되돌아갈 수는 없다고 거절하는데, 허준이 따라나섭니다. 그리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 병자를 치료한 후 아침에 떠나려고 하는데, 그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온 동네 병자들이 자기들 병도 고쳐달라며 그 집 마당에 모여든 것입니다. 돈 안 받는 용한 의원이 왔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고 그 덕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든 것입니다. 병자들의 애절한 소망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허준은 한나절만 더 머무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한나절이 다 가도 마당의 사람들은 줄기는커녕 아침에 비해 더 늘어나 있습니다. 아들의 지게를 타고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노파, 달구지에 실려 들어오는 병자, 다른 이의 부축을 받고 오는 사람들…. 마당은 쇄도하는 환자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 만원입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이 아파도 참고 살다가 허준이 공짜로 치료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옆 마을에서까지 물밀듯이 몰려든 것입니다.

이 장면은 왜 예수님 주위에 사람들이 그렇게 들끓었나를 잘 설명해 줍니다. 당시의 사회체제가 그들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니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저히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아무도 저들에게 사람대접을 해주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저들을 사람대접 해주고, 나아가 벗이 되어 주었으니, 저들이 예수님께 몰려든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께 찾아와 예수님을 압사시킬 만큼 밀어닥친 저들은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이요, 그 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잘못된 가치관으로 인한 사회적 고통으로 더 크게 아파해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육체적·정신적 약함과 모든 개인적 재난을 ‘더러운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라고 판정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건강치 못하며 소위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많은 사회! 우리는 여기에서 자율(自律)과 자정(自靜)의 기능이 끝나버린 한 사회를 보게 됩니다.

한 사회를 이끌어 가는 모든 정치권력과 종교제도는 무엇을 위함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 사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낙오되지 않고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때로는 공권력과 강제력을 활용해서라도 개개인들에게 최소한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심지어 만의 하나 거기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들에게 신의 은총을 경험케 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나 지배 계층에 의한 권력의 사용은 대중을 위함이 아니요 자신을 위함이고, 종교의 기능은 그 낙오된 자들이 아닌 지배 계층을 섬기는 것으로 전락할 때, 바로 그 때에 그렇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제도권 밖에서’ 구원의 여망을 찾는 법입니다. 제자들 가운데 특별히 열두 사람이 세움 받은 현장은, 이런 파산한 사회 거덜 난 종교의 한복판에서였습니다. 저들은 제도권에 있는 정치인들이나 사제들에게 가지 않고, 오히려 제도권 밖의 예수님을 선택합니다. 저들은 나음을 원합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향하여 손을 내어 뻗습니다. 만지고자 합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예수님에 의해 만져지고 싶은, 예수님을 향한 강요입니다. 저들의 바람과 희망은 너무나 다급하고 간절하여, 그것은 예수님에게 압력이 되었고 압박이 됩니다.

마가는 이런 일이 일어난 무대가 바닷가라고 보도합니다. 마가복음에서 바다란 이미지는 창조 이전의 혼돈의 상태, 즉 카오스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코스모스라면 카오스란 악마의 질서, 사탄적 혼돈을 상징합니다.

∎3:13-19 “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마가는 예수님의 일행이 산으로 올라갔다고 합니다. 막 3:13-19은 예수님이 12제자를 택한 이야기입니다. 13절에서 마가는 그 장소가 ‘산’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마치 먼 옛날에 애굽을 탈출한 히브리들이 모세를 따라 시내산에 올랐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의 일행은 산에 오릅니다. 시내산은 히브리 사람들이 야훼 하나님과의 계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탄생했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산에 오르신 것은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잉태코자 함이 아닐까요? 예수님은 그 산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중 열두 명을 세우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열두 족장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새 이스라엘’을 결성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새 공동체를 세우고자 ‘열두 제자’를 세우시는 세움에는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특별한 기대가 있습니다. 14-15절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14예수께서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또한 사도라고 이름하셨다.] 이것은, 예수께서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그들을 내보내어서 말씀을 전파하게 하시며, 15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즉, 열둘을 세우신 목적은 (1)‘함께 있음’과 (2)‘보냄 받음’(=파견)입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형성은 ‘함께 있음’과 ‘보냄 받음’의 제자직을 통하여 실현됩니다. 이제 열둘로 선택받은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그에게서 보냄 받은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함께 있음’은 주어가 사람입니다. 그러나 ‘파견하다’의 주어는 예수님입니다. 즉, 함께 있음은 제자들의 자발적 동의와 결단을 전제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나 스스로 알아서 할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예수님에 의해 파견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파견하는 자요, 제자는 파견 받은 자입니다. 사도라는 뜻의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는 ‘파견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그리스도인의 본질은 파견 받음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파견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전도, 즉 복음 선포’와 ‘귀신 축출’입니다. 지금부터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2강에서 마가복음 1장 1절을 공부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었습니다.

앞에서 사도 바울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복음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복음서는 원래 부활 없는 수난 이야기로 끝이 났다니, 이것이 어떻게 ‘복음’일 수 있을까요? 승리가 아닌 패배의 이야기가 어떻게 기쁜 소식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마가는 자신의 책에 분명 ‘복음’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째서 부활 없이 수난으로 끝난 예수 이야기가 마가에게는 복음이요 기쁜 소식일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는 내내 결코 놓아서는 안 될 화두(話頭)같은 것입니다. 이 질문을 놓치면 마가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가장 크고 심오한 진리를 놓치고 맙니다.

저는 오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다시 드라마 ｢허준｣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허준은 밀려드는 병자들을 돌보느라 결국 과거에 늦었고, 그래서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낙방하고 맙니다. 하지만 같이 과거를 보러간 스승 유인태의 아들 유도지는, 도움을 청하는 병자들을 외면했고, 결국 과거에 합격합니다. 고향 마을에서는 과거에 합격하고 금의환향한 유도지의 승리를 축하하는 잔치가 열립니다. 그리고 과거에 낙방한 허준을 패배자 취급합니다. 그런데 허준이 패배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승리자였습니다. 개인의 출세와 영달을 뒤로하고, 병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그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이 후에 고향 마을에 알려지게 되고, 마을 사람들과 스승 유인태는 과거에 합격한 유도지가 아니라 비록 과거에 낙방했지만 병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졌던 허준을 진정한 승리자로 칭송하게 됩니다.

예수님 이야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숭고한 사랑과 자기희생은 세상의 잣대로 보면 실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진정한 승리입니다. 모두가 더 가지려고 하고 더 높아지려고 할 때, 그것이 인생의 승리라고 주장할 때, 예수님은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예수님을 인생 실패자요 낙오자라고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를 보십시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의 부활을 말하지 않고도 그의 승리를 독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선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예수님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 구원, 불신 지옥”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복음 선포가 아닙니다. 적어도 마가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도는 숭고한 사랑에 기초해서 자기를 희생하며 사신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에 있습니다. 복음 선포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삶으로, 생활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의 메시지입니다.

다음으로 마가는 파견 받은 제자들의 사명으로 귀신 축출을 듭니다. 그가 말하는 귀신들을 추방하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회에서 귀신들렸다고 판정 받아 사람취급 못 받는 사람들을 사람대접 해주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마가복음은 수많은 치유기적 이야기를 전합니다. 미친 사람, 나병 환자, 중풍 병자, 장애인, 하혈하는 부인, 죽은 자, 벙어리 등등 수많은 환자가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당시의 사회·종교 체제 하에서 죄인취급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회에서 버림받고 교회가 내친 이들입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드라마 ｢허준｣에서 나병(대풍창)에 걸린 환자들의 모습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나병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혹독한 질시와 모멸을 받는 사람들, 마을에서 쫓겨나고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도둑질을 하다 맞아죽거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 예수님 당시의 환자들 역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버림받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그들에게 귀신 들렸다고 하는 진짜 귀신 들린 사회를 완전히 무시하셨습니다. 모든 것 위에 인간을 두고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가치, 규범, 체제를 부정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개방성이 저들에게 치유를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문제에 봉착합니다. 예수님 시대와 달리 우리 시대는 병자를 치유하는 역할을 의사가 담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병원에서 못 고친 질병을 간혹 교회나 기도원에서 고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유의 은사를 받은 일부 사람들의 특별한 경우이고,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신유의 은사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귀신 축출의 사명을 일부 특별한 사람들에게 떠넘기고 나 몰라라 해도 될까요?

치유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하나는 질병의 치료요, 다른 하나는 고통의 치유입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curing a disease(or pain)와 healing an illness(or suffering)입니다. 질병의 치료와 고통의 치유가 무엇인지는 톰 헹크스가 주연한 <필라델피아>란 영화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는 소위 잘 나가는 촉망받는 변호사인데, 사실은 동성연애자요 에이즈 환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법률회사는 그를 부당한 방법으로 해고합니다. 영화 <필라델피아>는 이 부당 해고에 항거하는 법정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에서 톰 헹크스의 고통은 그의 육체의 면역체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인 거절과 직업의 상실, 그리고 변호사를 찾으려는 투쟁 속에서 그가 경험했던 것을 포함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영화에서 재판에는 이기지만 결국 에이즈로 죽고 맙니다. 하지만 그는 비록 육체의 질병은 치유하지 못했지만, 마음의 고통은 치유했습니다. 더구나 에이즈를 앓고 사회에서 따돌림 당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차별 받고 있는 흑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가지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거부할 때 그를 변호해 준 사람은 인권 변호사인 흑인 댄젤 워싱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육체는 죽었지만 그는 거듭났습니다. 자기의 출세만을 위해 살던 이기적인 삶에서 다른 이들의 인권과 권익을 돌아볼 줄 아는 인간으로 말입니다.

비록 우리가 신유의 은사를 받지 못해 병자의 질병은 치유할 수 없을지 몰라도, 고통은 치유할 수 있습니다. 병자의 처지를 내 처지처럼 여기고, 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기며, 그의 고통을 관심과 사랑으로 감싸 안음으로써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boundary maker 또는 keeper로 기능하며 병자들을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로 정죄하고 저들을 교회에서 추방했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boundary breaker로 저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포용하고 긍휼히 여겼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 compassion, 이것이 예수의 제자들인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compassion은 우리말로 자비, 사랑, 긍휼, 동정, 불쌍히 여김 등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passion이라는 말 앞에 com이라는 접두사를 붙인 단어입니다. 접두사 com은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passion은 “열정”이란 뜻도 있지만 “고난” 또는 “수난”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compassion은 “남의 수난에 함께 동참한다”는 심오한 뜻의 단어입니다.)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십시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그와 함께 있기로 결심한 나는,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된 나는, 12제자와 마찬가지로 파견을 명받았는데, 복음 선포와 귀신 추방에 얼마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까? 나는 소외된 이웃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갑니까? 우리 교회 문턱의 높이는 얼마일까요? 혹시 사회가 버린 자들을 우리 교회도 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적극적으로 내치지는 않더라도 그들을 수용하기에 문턱이 너무 높지는 않나요?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이러한 도전을 해 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말이 아닌 몸으로, 삶으로 해야만 합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2:23-3:6 (6강 질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