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31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18.2.4. 증언 참조)

1장 29-34절은 바로 앞 사건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앞 이야기(막 1:21-28)는 예수님의 첫 사역에 대한 증언인데, 그 내용은 예수님이 가버나움이라는 동네에 들어가서 안식일에 그곳 회당에서 가르치고, 거기 있던 악령(귀신) 들린 사람 하나를 고쳐준 것입니다. 이 일로 해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이라는 동네는 물론이고 갈릴리 지방 전체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28절은 “그리하여 예수의 소문이 곧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는 말로 증언합니다.

이어지는 29절은 “그들은 회당에서 나와서, ‘곧바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안식일 회당 예배가 끝나자마자 일행과 함께 황급히 회당을 빠져나와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갔음을 뜻합니다. 지금 가버나움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놀라운 축귀(逐鬼)사건에 감격해서 환호와 탄성을 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환호성을 뒤로한 채 총총걸음으로 회당을 빠져나와, 베드로의 집으로 숨듯이 몸을 피했습니다. 스타가 된 예수님은 무슨 영문인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과시하며 그 인기를 즐기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가버나움 회당에서 일어난 놀라운 축귀사건의 진짜 주인공은 당신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도,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도 사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 능력을 펼치는 도구로 예수님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를 감추고 아버지를 드러내는 일, 그것이 예수님 사역의 처음이요 끝이었습니다. 이는 이어지는 34절에서 귀신들이 (하나님이 아닌) 당신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예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달’이라면 예수님은 그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예수님이 가리키는 달은 보지 않고 예수님의 손가락만 바라보며 환호와 탄성을 지릅니다. 그러니 민망할 수밖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피하듯이 숨었던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은 하나님을 드러내고 자신을 감추고자 서둘러 가버나움 회당을 빠져나와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정을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님께 알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간청을 듣자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31절). 성경은 이 치유사건을 이렇듯 단 한 줄로 간단히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깊은 의미를 놓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 줄로 묘사된 이 치유사건은 엄청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 시간상으로 볼 때 이 치유사건은 안식일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안식일 치유는 안식일법 위반이고,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자신이 중죄인이 되는 것을 무릅쓰고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한 것입니다.

둘째, 병자의 몸에 손을 대는 행위는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질병을 ‘부정’(不淨)한 것, 즉 깨끗하지 못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다시 말해 ‘죄’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죄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하면, 접촉한 자에게 그 ‘죄가 전염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예수님은 지금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한 것입니다. 그것도 ‘손을 잡아 일으키는 신체 접촉’을 통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조금 약은 분이었다면, 논란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을 것입니다. 또 손을 잡아 일으키는 대신에 방금 전 회당에서 악령 들린 사람을 치유했듯이 말씀 한 마디로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안식일법도, 정결법도 예수님께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 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법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막 2:27 참조).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치료자’가 아니었고, 진정한 ‘치유자’였습니다. 자기중심이 아니라 환자중심으로 각종 병을 고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장모가 앓았던 열병(熱病)이 의학적으로 무슨 병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서 육체의 질병은 물론 마음의 아픔까지도 치유 받았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숨기는 사람, 자신이 받을 불이익보다는 환자가 받고 있는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어찌 우리 마음이 치유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1절은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다가가셔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그 여자는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고 증언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헬라어 표현은 미완료형 동사로, 이는 베드로 장모의 섬김과 봉사가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의 장모는 참 생명을 회복하고 섬김과 봉사의 도(道)를 다하는 참 제자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1:32-39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그렇게 날이 저물고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이 사실을 32절은 “해가 져서 날이 저물 때에”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아침이 아니라 저녁에 시작됩니다. 당시는 시계가 없던 시절이었으므로, 해가 지고 저녁이 되어 하늘에 별이 3개정도 나타나면 새 날이 시작된다고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새 날이 시작되자마자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몰려왔습니다. 32절의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사람”, 또 33절의 “온 동네 사람들”, 그리고 34절의 “온갖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보면, 지금 베드로의 집 문 앞에는 가버나움의 모든 병자들이 다 집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숫자가 얼마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엄청난 숫자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하나하나 정성껏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예수님은 조용히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35절). 즉, 어둠 속에서 홀로 고독한 싸움, 영혼의 씨름, 영적 투쟁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과 싸우셨을까요?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당신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왜 당신 자신과 싸웠을까요? 그것은 가버나움에서의 당신 사역이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성공도 그냥 성공이 아니라 대성공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인지라 당신의 첫 사역이 크게 성공하고, 그 성공을 통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명성과 인기도 얻자 흔들리셨을 것입니다. 인기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인가? 예수님은 갈등하며 묻고 또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 누가 뭐래도 내 가르침과 내 치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지. 그러니 하나님의 도구요 하나님 권능의 통로에 불과한 내가, 하나님의 ‘청지기’인 내가 마치 이 모든 것의 ‘주인’인양 내 자신을 내세운다면 크게 잘못된 것이지. 그러니 겸손해야지, 나를 숨기고 하나님을 드러내야지, 그게 마땅한 도리야.” 하지만 예수님 마음 한 쪽에서 마귀가 속삭입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너를 선택하셨어. 만약 네가 없었다면 하나님도 당신의 크신 권능을 세상에 드러내지 못했을 거야. 너도 기여한 바가 커. 그러니 너도 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이렇듯 첫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예수님도 악마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지금의 성공에 안주하라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그것을 맘껏 누리라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홀로 기도하시며 자기 자신과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악마와 싸운 것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을 감추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합니까? 그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하더라도 자기 자신과 싸우지 않고 하나님과만 싸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왜 저 사람에겐 주시고 내겐 안 주십니까? 하나님 저에게도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시오.” 매일 이런 식의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변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기도는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더러 내 뜻에 따라달라는 요구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은 하나님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변화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내게 복종시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사탄의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을 통해서, 그리고 자기 안에 있는 악마와의 투쟁을 통해서 또 한 번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찾아와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37절) 하면서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으로 돌아가 어제 이룬 성공을 바탕으로 안주하며 살자고 했을 때,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는 말씀으로 거절한 것입니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는 말은 공을 이룬 가버나움에 머물지 않겠다는 예수님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노자(老子)가 말한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공을 이루었으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공을 쌓았으나 그 공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몸소 실천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성공’에 집착할 때, 우리는 그 공의 주인공인 하나님은 숨기게 되고 나를 내세우게 됩니다. 나를 내세우면 결국은 세상과 타협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면 끝내 (내 나라는 가능해도) 하나님 나라는 불가능해 집니다. 예수님은 숭고한 내적 자기투쟁을 통해서 악마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주신 소명에 충실합니까? 우리는 나를 숨기고 하나님 드러내는 일에 열심입니까? 아니면 반대로 내 욕심 채우기와 내 권리 주장에 더 빠릅니까? 오늘 복음말씀은 우리에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것을 요구합니다.

1:40-45 나를 깨끗하게 해 주소서!

1장 40-45절은 예수님이 한 나병환자를 치유한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병(癩病)은 자신의 손마디가 떨어져나가고, 살갗이 문드러지고,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서운 병이었습니다. 더구나 전염성이 강했기에 치료약이 없던 시절에는 ‘격리’만이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 13장 45-46절은 나병환자는 건강한 사람과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가족과 친지들을 떠나 마을 밖에서 따로 살아야 했으며, 혹시라도 건강한 사람이 자기에게 접근해 오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병을 경고해 주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부모와 가족은 물론 세상의 모든 것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어 외롭고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 바로 나병환자의 운명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성경에 나타난 나병은 모든 ‘관계의 단절’과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병환자는 자의든 타의든 자기 삶의 터전으로부터 격리되어야만 했는데, 이는 모든 인간적인 유대와 사랑으로부터의 근본적인 차단을 의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모든 질병을 죄에 대한 형벌로 생각했는데, 가장 몹쓸 병에 걸린 나병환자는 가장 큰 죄를 지어 하나님께 극단의 심판과 저주를 받은 자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병은 사람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마저도 차단시켜 버렸습니다. 나병환자는 어떤 예배에도 참석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언약으로부터 끊어짐을 뜻했고, 살아있어도 죽은 자로 취급됨을 의미했습니다. 이렇듯 나병환자는 병 자체도 큰 고통이었지만, 사람과 하나님에게 버림받음으로 인해 겪는 사회적 고통과 종교적 고통도 매우 컸습니다.

이렇듯 고통과 외로움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던 한 나병환자가 어느 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40절). 앞에서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는 혹시라도 건강한 사람이 자기에게 접근해 오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쳐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병을 경고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나병환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살아있어도 이미 죽은 목숨과도 같으니 이판사판이라는 식으로 모든 법을 무시하고 예수님께 다가와 간청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율법을 어겼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으십니다. 성서는 도리어 예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겼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는 뜻의 헬라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애간장이 타다”입니다. 즉, 예수님은 나병환자가 겪는 고통을 보고 자기 애간장이 타 들어가는 고통을 함께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애끊는 마음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나병환자를 향하여 손을 뻗게 했습니다. 그를 만진 것입니다. 41절은 “예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증언합니다. 그랬더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42절)고 합니다.

이 치유기적 역시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칠 때 그랬듯이 보듬고 싸매는 ‘몸의 접촉’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가 비록 하나님께 가장 크게 저주받은 나병환자일망정 애끊는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니 다함이 없는 사랑이 발동했고, 거기서 비롯된 신체의 접촉은 그의 몸을 온전케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병을 고칠 수 있는 분이지만 그냥 ‘깨끗하게 되어라’하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손을 내밀어 그를 어루만져주며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이 얼마나 큰사랑입니까! 지금껏 어떤 누구도 자기 몸을 만진 일이 없었는데, 부정한 사람이라고 옆에 오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도 싫어서 멀리 내쫓아냈는데….

예수님은 단순히 이 나병환자의 육체의 질병만 치료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관계의 단절로 인해 생긴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치유는 망가진 육체를 회복시켰을 뿐만 아니라 단절된 관계 또한 회복시킵니다. 44절의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령한 것을 바쳐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도록 하라”고 하신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해진 몸을 보이고, 제사를 드려, 사람들에게 나병이 나았다는 증거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스라엘 사회가 그를 정결하고 또 정상적인 사람으로 다시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치유는 육체적 치료를 넘어 사회적·종교적 치유를 포괄하는 참된 회복의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치유를 청하고자 예수님께 다가온 나병환자의 용기와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철저히 차단된 나병환자가 예수님과 그 일행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나병환자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예수님께 나아갔고, 또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구하여 이르되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나병환자는 자신이 결정하고 예수님께 이루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달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간절한 믿음으로 예수님께 의탁하는 일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세입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는 나병환자의 이 믿음이 결국 버림받은 인생을 살리는 위대한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어 청하는 나병환자의 모습은 예수님의 마음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예수님은 주검과도 같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고 치유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님만이 아닙니다. 치유 받은 나병환자도 이 이야기의 주인공입니다. 애초 이 사건의 주도권은 그 사람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가 간청함으로써 이 사건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 치유사건은 예수님이 주인공일지 몰라도, 그 일은 예수님과 나병환자 둘이서 함께 일으킨 사건입니다. 나병환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님에게 자기 병을 갖고 나감으로써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치유는 병자에게 일어납니다. 하지만 모든 병자에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병자인 줄 아는 병자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매달리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2:1-3:6

마가복음 2:1-3:6은 다섯 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그 주제는 모두 ‘유대법과 관련된 논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1-12 죄 사함 논쟁

∙2:13-17 식탁 논쟁

∙2:18-22 금식 논쟁

∙2:23-28 안식일 논쟁 (안식일과 일)

∙3:1-6 안식일 논쟁 (안식일과 치유)

이 논쟁들을 꼼꼼히 읽으며 ‘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하면서 ‘준법’을 강조했다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막 2:27)고 하면서 법보다 ‘사람’을 앞세우고 강조합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법에 대해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