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계승한 교회

마가는 1장 15절에서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리로 가서 선포한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이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음을 증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이스라엘의 역사는 늘 ‘제국’(empire)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탄생은 이집트 제국으로부터의 탈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후 예수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은 여러 제국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침략당하고, 착취당하고, 지배당해 왔습니다.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그리스), 로마가 바로 그 제국들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세계는 하나님에게 속해있고 하나님은 정의롭다는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했던 세상은 결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정의가 아니라 불의가, 공평이 아니라 차별이,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 선이 아니라 악이 만연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가진 신앙과 자신들이 경험한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저들이 찾은 답은 이것입니다. “God will overcome, someday!”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승리하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교 전통이 말하는 ‘종말론’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듯이 ‘세상의 종말’, ‘the end of the world’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악의 종말, 불의의 종말, 억압의 종말, 전쟁의 종말, 폭력의 종말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종말은 ‘파괴’와 관련이 없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손수 창조하신 그 좋은 세상을 파괴하겠습니까? 다만 하나님은 죄와 악으로 더럽혀진 세상을 깨끗하게 하실 뿐입니다. 따라서 종말론은 파괴에 관한 것이 아니고, 난장판이 된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고 이상적인 세상을 회복하는 것에 관한 일입니다. 이를 성서학자들은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the Great Divine Clean-up of Earth)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종말’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이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세례운동에 동참했습니다. 그에게서 세례를 받고(9절)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각만 배운 게 아니라, 그가 벌였던 세례운동의 결과로부터도 배웠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실패로부터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이 잡힌 뒤에, 갈릴리에 가서” 요한이 했던 ‘세례 운동’을 되풀이 하지 않았고, 새롭게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렇다면 요한의 ‘세례 운동’과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요? 그 결정적 차이점은 ① ‘미래 대 현재’, ② ‘개입 대 협력’, ③ ‘독점 대 총판’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의 차이입니다. 유대교 전통의 종말론은 “언젠가 그 때가 되면”을 주장합니다. “그날이 오면”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아주 먼 미래는 아닙니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장래입니다. 영어로 하면 ‘any day now’입니다. 그 날이 오면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이 땅에 초월적으로 개입하셔서 세상을 바꿀 것입니다. 이것을 ‘묵시적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첫 번째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두 번째 하나님의 ‘초월적인 개입’(intervention)과 직결됩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나님이 이 불의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곧 개입하시리라 믿고 준비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소망했습니다. 세례 운동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제국이 물러나지도 않았고, 세상이 바뀌지도 않았습니다. 사실이 이러하기에 묵시적 종말론이라는 저들의 해답, 즉 신앙과 현실을 조화시키기 위해 저들이 찾은 “하나님이 언젠가는 승리하실 것이다”라는 답은 틀렸음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해답을 찾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실패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협동성’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나라를 준비했는데, 하나님은 오지 않았습니다.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찾은 답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오셨는데 우리는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그토록 애타게 당신을 기다렸는데 왜 오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더 인내하고, 더 거룩해지고, 더 준비해야만 합니까?” 예수님이 들은 대답은 이랬습니다. “바로 그래서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거야. 너희가 하나님을 기다리듯이, 하나님도 너희를 기다리셔. 하나님은 이미 와 계셔. 하나님 나라는 임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에 와 있어. 개봉박두(coming soon)가 아니라 이미 시작됐어. 그러니 너희는 지금 여기에 있는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잡기만 하면 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데이트를 합니다. 그런데 같은 시간에 각각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기다립니다. 남자는 명동에서, 여자는 강남에서. 그러니 계속 어긋나고 못 만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없이 아무 것도 안 하신다. 당신은 하나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God without you won’t, you with- out God can’t.)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의 협조와 협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는 하나님이 혼자서 진공청소기를 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빗자루, 걸레, 먼지 털이 등을 들고 하나님을 거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용어로 ‘참여적 종말론’, ‘협력적 종말론’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완성에는 하나님과 우리의 collaboration과 cooperation이 꼭 필요합니다.

끝으로 세례 운동과 하나님 나라 운동의 중요한 차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독점’(monopoly) 대 ‘총판’(franchise)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운동은 요한이 독점한 운동이었고, 그 장소도 요단강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처형당하자 세례 운동도 끝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한 장소에 한정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혼자서 한 운동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셨고, 그들로 하여금 ‘가서 행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총판 역할을 했고, 제자들에게 곳곳에 파송되어 지점과 분점을 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했어도 하나님 나라 운동은 결코 멈추지 않았고 계속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벌였던 하나님 나라 운동의 계승자이며 지점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수많은 교회가 흥망성쇠를 거듭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망했어도 하나님 나라 운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가 심각하게 병들었고, 그 병이 전염병처럼 퍼져서 수많은 교회들이 죽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도 병들지 않고 건강을 유지했던 소수의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소수의 교회는 촛불이 되어 어둔 세상을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그 빛이 너무 작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이르자 촛불이 횃불로 커졌고, 그 횃불은 들불로 번져 죄와 악으로 뒤덮인 세상을 깡그리 태웠습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병들지 않은 건강한 소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을 올곧게 계승한 병들지 않은 건강한 교회 몇 개만 있으면 하나님 나라 운동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고, 언젠가 하나님 나라도 도래하고 말 것입니다. 과연 우리 교회는 그 소수의 교회일까요?

1:16-20 수단을 버림으로써 목적을 찾다 (2018.1.14. 증언 참조)

마가는 1장 16-20절에서 예수님이 첫 제자들을 부른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 내용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바닷가를 지나가다가 몇몇 어부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저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내용의 전부입니다.

이 말씀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아무런 인사도 없이, 자기를 이해시키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어디선가 느닷없이 나타나서 “나를 따라오라”고 명령합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일상생활 중에 생업에 종사하던 어부들이 그 명령을 받고 아무런 의심이나 망설임, 그리고 어떤 심리적인 갈등도 없이 ‘즉시’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랬을까요? 실상이 어땠는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마가는 이 본문을 통해서 ‘부르심에 대한 즉각적이고 절대적인 순종’을 말하고 싶어 했다는 것입니다. 즉, 군더더기는 다 빼고 오직 ‘부르심’과 ‘순종’만을 간결하게 명시해서, 이상적인 추종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복음에 나오는 네 어부들은 왜 모든 것을 버리고 즉각 예수님의 부르심에 따라나섰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금까지의 인생을 접고, 즉각적으로 예수님을 따른 동기는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4장과 5장을 보면 예수님은 첫 제자들을 부르기 전에 이미 귀신들린 사람과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포함한 많은 병자들을 고쳤습니다. 또한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올라 군중을 가르치고, 고기잡이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첫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마가도 누가와 마찬가지일까요? 성경을 펼쳐서 1장 14절 이전에 무슨 말씀이 쓰여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1장 1-8절은 ‘세례자 요한의 선포와 세례운동’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그리고 9-11절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야기’를, 또 12-13절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보고합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아직까지 단 한번도 ‘하나님의 (특별한) 아들’로서, 또 ‘그리스도’로서 기적의 능력을 과시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첫 번째 제자들은 ‘예수님을 능력 많은 하나님의 아들이나 그리스도로 믿었기 때문에’ 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의 따름은 ‘기독론적 동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그 이유는 ‘선포’ 때문이었습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5절). 마가에 따르면 그들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지 이 세 마디의 선포 때문에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것 말고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예수님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기서 “때가 찼다”라는 말의 “때”는 원어로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가 시계로 잴 수 있는 인간의 시간을 가리킨다면, “카이로스”는 인간의 척도로는 계산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때가 찼다”는 예수님의 선포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시간이 도래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하늘나라, 즉 천국(天國)”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 즉 “천지가 개벽한 새로운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유대교 전통에서는 “종말론” 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첫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선 이유는 ‘종말론적 동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제자들의 따름이 기독론적인 동기 때문이 아니라 종말론적인 동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제자됨의 성격을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개인적인 동기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때가 차서 하나님의 세상 대청소가 시작됐는데, 하나님이 이 역사 속에서 이루시려는 일에 나도 무언가 한 역할을 담당해야겠다는 자세 때문에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물도 버리고, 배도 버리고, 토지도 버리고 즉 모든 생계수단을 버렸고, 심지어는 가족까지도 버렸습니다. 내가 가진 것에 무엇을 좀 더 보태기 위해서, 또는 내가 가진 것을 현상유지하기 위해서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은 처음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에 비해 우리는 매우 안일하게 버린 것도 별로 없이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려니 짐이 너무 무거워 따르는 것을 포기하고 편안히 앉아서 ‘믿기’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자신들이 버리지 못하고 끌고 다니는 짐들이 무거워 지쳐 쓰러질 때마다 감히 ‘십자가를 졌다’고 말합니다. 이런 우리이기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첫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의 첫 말씀은 “나를 따라오너라”였습니다. 나를 ‘믿어라’가 아니라 ‘따르라’입니다. 믿어서 따르는 게 아니라, 따름으로써 믿게 되는 것입니다. 제자직은 버림으로써 비롯됩니다. 삶의 수단을 버림으로써 삶의 목적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1:21-28 너를 장악하고 있는 온갖 것에서 해방되라! (2018.1.28. 증언 참조)

마가는 1장 21-28절에서 가버나움이란 동네에서 일어난 한 ‘사건’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첫 제자들을 부르신 후,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처음으로 방문한 곳이 바로 가버나움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그 동네 회당에 들어가 가르쳤고, 어떤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서 예수님은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 두 가지 질문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어떻게 안식일 회당 예배에 악한 귀신들린 사람이 참석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율법에 따르면 거룩한 날, 거룩한 말씀이 선포되고 거룩한 의식이 거행되는 안식일 회당 예배에 결코 악한 귀신들린 사람은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안식일 회당 예배에 악한 귀신들린 사람이 참석해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겉보기에는 멀쩡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른 질문 하나는 “악한 귀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사람이 ‘제 정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정신’에 의해 장악되어 온전하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사람을 지배한 ‘다른 정신’은 무엇이었을까요?

미국의 저명한 신약성서학자 가운데 월터 윙크(Walter Wink)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2012년에 77세로 소천 했는데, 성서학자요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변혁운동가였습니다. 주요 경력은 미국의 뉴욕시에 있는 Auburn Theological Seminary에서 가르친 것인데, 이 신학교는 신학생뿐 아니라 사회변혁운동가를 길러내는 곳입니다. 이 분은 두 가지 탁월한 업적을 남겼는데, 하나는 ‘비폭력 저항’을 주장하고 실천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30년이 넘도록 성서에 나타난 ‘사탄의 세력들’(the Powers)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해 시리즈로 책을 펴낸 것입니다. 1984년 Naming the Powers, 1986년 Unmasking the Powers, 1992년 Engaging the Powers, 1998년 When the Powers Fall, 그리고 1999년 The Powers that Be가 그것들입니다.

이 분은 위 책들에서 귀신이나 악마를 “이 세상의 악한 세력들, 특히 정치·경제·문화적인 지배체제(dominant system)라는 구조 악(systemic evil)의 내면에 있는 영적인 실재”라고 해석합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 외에 실제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엄청난 힘이 있는데, 그 힘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탄”이나 “악마” 혹은 “권세”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악의 힘이 통합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바로 ‘지배체제’이고, 그 지배체제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악한 영(정신)이 바로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히틀러가 통치하던 나치 독일이라는 국가는 지배체제입니다. 그리고 그 나치 독일을 지배하던 악한 영(정신)인 파시즘은 사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구조의 문제나 체제의 문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배체제를 지배하는 악한 영은 그 지배체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각 개인의 내면 또한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資本主義)는 문자 그대로 자(資)를 본(本)으로 삼는 사회체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자(資)는 재물, 즉 돈을 뜻하니까, 자본주의란 결국 돈이 근본이 되는 사회를 뜻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체제 속에서는 국가도 사람도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월터 윙크의 말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라는 사회체제가 구조악이라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정신은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악의 힘인 사탄은 제도나 체제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세계도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악한 세력의 실체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악한 세력을 극복하고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까지도, 그 체제 속에서 살고 있는 한 악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악을 점점 닮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전에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제목의 책이 출판되어 지식인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이 말한 바는 파시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남이 가진 파시즘”은 보면서 “자기 안의 파시즘”은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은 보면서,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독재자가 물러나고 그 독재자에 반대하던 사람이 정권을 잡아도 비슷한 일이 반복됩니다. 왜? 칼 융이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가장 싫어해서 대항해 싸우는 바로 그것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즉 무엇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는 파시즘과 싸우다가 “욕하면서 배운다”는 속담처럼 어느새 내가 반대하는 그 파시즘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유학하면서 배운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진보와 보수에 대한 생각의 변화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진보와 보수를 그 사람이 가진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에 관한 ‘입장’에 따라 구분했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진보인가 보수인가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유학을 가서 진보와 보수는 ‘입장’이 아니라 ‘태도’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inclusive한가 아니면 exclusive한가, 즉 포용적인가 배타적인가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열려있는 사람은 진보요, 닫혀있는 사람은 보수입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수요, 남도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보입니다. 그래서 보수는 “이것 아니면 저것,” 즉 “either-or”이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진보는 “이것도 저것도,” 즉 “both-and”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둘 다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처럼 보이는 이 태도는 입장을 갖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도 끄덕, 저것도 끄덕하는 사람은 결코 진보가 아닙니다. 진보라면 확실한 자기 입장은 있어야지지요. 하지만 그 입장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속에서 자기 입장을 이끌어내는 것이 진짜 진보입니다.

핵심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파시즘과 싸우면서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파시즘을 닮아 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보자는 것입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데로 만사가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파시스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사람은 벽을 허무는 사람이 아니라 쌓는 사람이고, 예수를 ‘믿는’ 사람일지는 몰라도 예수를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마가 1:21-28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악령 추방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가르침과 악령 추방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본문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에 대한 악령의 반응은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24절에서 악령은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라고 말합니다. 자기들은 그냥 그대로 살고 싶은데, 현재의 상태와 지금까지 살던 방식이 좋은데, 익숙하고 편한데,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고 가르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악령이 “나사렛 사람 예수님, 왜 우리를 간섭하려 하십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하고 반응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진보건 보수건 우리는 익숙한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하지만 그 편하고 좋은 익숙함에는 우리가 그토록 혐오하는 악한 체제와 그 체제를 지배하는 악한 정신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던 방식으로 살아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실재하고 있는 악령을 내 보내야만, 우리 안의 파시즘과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제국주의적인 생각과 태도를 버려야만 비로소 악한 세력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산(Crossan)이 󰡔하나님과 제국󰡕이란 책에서 “인류 문명이 정상이라고 우기는 것, 힘(폭력)을 운명이라고 여기는 것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하나님 나라’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버려야 얻습니다. 악령을 내보내야 성령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껏 살아온 잘못된 방식을 버려야 새 삶의 방식을 체득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을 내보내야 비로소 우리 밖의 파시즘과 싸워 이길 수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룰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옛날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을 만나 자기를 장악하고 있던 온갖 익숙한 것으로부터 해방되었던 그 사람처럼, 오늘 우리도 나를 사로잡고 있는 온갖 악한 영들로부터 벗어나 새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꼼꼼히 읽고 곰곰이 생각하기 : 막 1:29-2:12

병의 치료와 고통의 치유는 다릅니다. 혹시 치유 받은 경험이나 치유를 한 경험이 있습니까? 치유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