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복음(福音), 기쁜 소식의 시작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새번역]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 [공동번역 개정판]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 [NAB]

(1) 예수의 복음

마가복음 1장 1절의 그리스어 원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시작”입니다. 또한 영어로 직역하면 “The beginning of the Gospel of Jesus, Christ, the Son of God”입니다. 이 직역이 가리키는 바는 ‘예수’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은 동격(同格)인데,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를 부연 설명하는 서술명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마가는 ‘예수의 복음’을 증언하고자 하는데, 그 예수는 그리스도이며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의 복음’입니다. 우리말 어순과 같이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마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누구의 복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의 복음’이라고 분명하게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마가복음의 주인공은 ‘예수’입니다.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이것을 오해하면 처음부터 복음의 핵심을 놓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나 그리스도나 같은 실재(實在) 아닌가요?”라고 묻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교리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마가복음이 쓰일 당시에는 꼭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는 표현에서, ‘예수’는 고유명사로서 사람의 ‘이름’입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는 ‘직함’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아무개는 사장이다”와 같은 일반적인 서술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는 서술문을 넘어,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선언문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마가는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다”라고 증언했습니다. 이는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어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번역한 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는 여럿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그리스도다”라는 선언은 당시의 “유대 왕이나 로마제국 황제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선언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이 말을 드러내 놓고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었습니다. 어쩌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만큼 엄청난 반역행위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마가복음은 그 시작부터 범상치가 않습니다.

이제부터 마가는 독자들에게 ‘예수의 복음’—‘예수가 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복음은 ‘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에 관한 복음’이기도 합니다.

(2) 하나님의 아들

마가는 예수가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the Son of God)이라고도 합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성경 각주에 “어떤 사본에는(개역개정) 또는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새번역) ‘하나님의 아들’이 없음”이라고 쓰여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은 최초의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 없다가 후대에 삽입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니 베드로가 마가복음 8장 29절에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했던 것과 유사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베드로의 이 대답이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십니다”라고 바뀝니다. 이는 지난 1강에서 말한 ‘발전하는 전승’의 실제 본보기입니다. 즉 처음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는데, 후에는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고백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 그리스도가 황제를 뜻했다면, 하나님의 아들 역시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기 한참 전인 주전 20년경에 이미 성육신한 하나님의 아들로 불린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였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진 주장이었습니다. 즉 “너희는 로마제국의 황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시골 농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본다”는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당시에 로마황제가 그랬던 것처럼 예수도 “신적 존재”라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아들”은 로마 제국신학의 선전물에서만이 아니라 구약성서와 유대교 전통에도 등장합니다.

①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킬 수 있었습니다. 출애굽 이야기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로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명합니다.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내가 너에게 나의 아들을 놓아 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하였건만, 너는 그를 놓아 보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너의 맏아들을 죽게 하겠다”(출 4:22-23). 또한 호세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이 어린 아이일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여 내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냈다”(호 11:1)고 말합니다.

②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왕을 가리킬 수도 있었습니다. 예언자 나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에게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삼하 7:14)라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고대 이스라엘의 대관식 예배에서 사용되었을 시편에는 하나님이 왕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시 2:7)라고 말합니다.

③ 욥기에서는 천사들 혹은 천상회의(divine council)의 회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렸습니다.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욥 1:6).

④ 예수 시대에 이르러서는 유대교의 카리스마적 인물들도 때로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이스라엘, 왕, 천사들, 그리고 유대교의 카리스마적 인물들 사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들 모두는 하나님과 특별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은 관계적인 은유(relational metaphor)로서, 사랑 받는 아들과 그 부모의 관계처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했고,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했던가를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을 ‘아바(Abba)’라고 불렀습니다(막 14:36). 또한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에 대한 영적 체험의 친밀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스스로 아버지와 아들의 은유를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일차적 의미는 예수님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속에 있었다는 확신의 표현이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이런 은유를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부활절 이후의 예수님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었습니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4절에서 “성령으로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정되신 분이십니다. 그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절 이후에 전승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관계를 나타내는(relational) 이 은유가 그의 출생 이야기 속에서 거의 전적으로 생물학적인(biological)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이유가 예수님이 잉태된 것이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어머니의 결합에 의한 것이기 때문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매우 직설적 의미에서 예수님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 가서, “하나님의 아들”은 형이상학적인 혹은 존재론적인 주장(metaphysical or ontological claim)이 되었습니다. 즉, 삼위일체교리 등에 나타난 예수님은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독생자)로서 하나님과 동일한 본질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은 경험은 상징(은유)을 낳고 상징은 사상(교리)을 낳는다는 사실, 즉 경험으로부터 은유를 거쳐 교리로 발전한 과정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예 가운데 하나입니다.

(3) 복음이란?

마가복음은 ‘the beginning,’ 즉 ‘시작’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무엇의 시작인가 하면 ‘the gospel,’ 즉 ‘그 복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그 복음’이란 앞서 말했듯이 ‘예수의 복음’이며,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에 관한 복음’입니다.

마가복음의 제목이기도 한 이 1장 1절의 말씀은 참으로 심오한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주후 1세기 당시 ‘복음’이란 말은 원래 군사용어였는데, 구체적으로는 ‘승전보’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전쟁에서의 패배는 패잔병뿐만이 아니라 패전국 국민 전체가 적국의 노예가 되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러니 전쟁에서의 승전보가 얼마나 ‘기쁜 소식’이었겠습니까! 따라서 그리스-로마 시대에 최고의 ‘Good News’는 다름 아닌 전쟁에서의 ‘승전보’였습니다. 그 실례가 바로 ‘마라톤’의 유래입니다.

그런데 승전보를 뜻하던 복음이라는 ‘군사용어’를 빌려와서 ‘신학용어’로 사용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복음’(Gospel)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즉, 죽음의 세력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기쁜 소식’ (Good News)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복음서가 쓰이면서 ‘복음’이란 단어의 뜻은 바울이 사용했던 것보다 더 넓고 깊어졌습니다. 1강에서 밝힌 것처럼 신약성서의 네 복음서 가운데 제일 먼저 쓰인 것은 마가복음입니다. 마가는 바울 서신이 쓰인 후 약 20년 뒤에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서 책으로 엮었는데, 그 책에 ‘복음’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책제목이기도 한 마가복음 1장 1절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 시작”이란 말은 이제부터 마가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마가복음의 내용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쁜 소식,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즉, 사도 바울의 주장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만이 복음이 아니라, 예수의 공생애 전체, 예수의 행적과 말씀 모두가 복음이라는 것이 마가의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가의 복음은 원래 16장 8절에서 끝났다”는 것입니다. 개역개정이나 새번역 성경을 보면 마가복음 16장 9절부터 마지막 절인 20절까지 꺾쇠괄호가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권위를 인정받는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은 8절에서 마가복음서가 끝남(새번역)” 또는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개역개정)”이라는 내용의 각주가 붙어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마가복음 16장 9절로 20절의 말씀은 2세기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은 원래 빈 무덤 이야기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즉, 마가의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와 승천 이야기와 재림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마가의 복음서는 원래는 부활 없는 수난 이야기로만 끝났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사도 바울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복음이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가의 복음서는 원래 부활 없는 수난 이야기로 끝이 났다니, 이것이 어떻게 ‘복음’일 수 있을까요? 승리가 아닌 패배의 이야기가 어떻게 기쁜 소식일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마가는 자신의 책에 분명 ‘복음’이란 제목을 붙였습니다. 어째서 부활 없이 수난으로 끝난 예수 이야기가 마가에게는 복음이요 기쁜 소식일 수 있었을까요? 이 물음은 우리가 마가복음을 읽는 내내 결코 놓아서는 안 될 화두(話頭)같은 것입니다. 이 질문을 놓치면 마가가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가장 크고 심오한 진리를 놓치고 맙니다.

∎곰곰이 생각하기

(1) 내가 생각하는 또는 믿는 복음(福音, 기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복음서를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복음으로 받아들입니까?

(2) 막 1:2-20을 각주와 함께 꼼꼼히 읽고, 다음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①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고, 그 증표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과 세례를 받은 후에 나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저 옛날 세례자 요한은 요단강에서 물로써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1:5). 그 무렵 갈릴리 나사렛 사람 예수도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1:9). 그런데 유대인들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를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는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세례를 받으면서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에겐 죄가 없으므로? 이런 선입견 없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② 막 1:12-13a은 “12그리고 곧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내보내셨다. 13예수께서 사십 일 동안 광야에 계셨는데, 거기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사탄을 시켜서 예수님을 유혹하게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③ 마가는 1:14에서 예수님이 ‘요한이 잡힌 직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그 장소가 갈릴리였다고 보도합니다. 왜 하필 그 시간과 그 장소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④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즉시 응답한 첫 제자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고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내가 포기한 기득권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