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가복음의 기원과 중요성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40년이 조금 지난 1세기 70년경, 어떤 초대 그리스도인이 최초로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펴냈습니다. 그전에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유대 땅과 그 너머에 있는 크리스천 공동체들 사이에서 단지 구전(口傳)으로만 전해졌는데, 그것도 전체가 아닌 부분적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이제 이 조각 이야기들이 최초로 기승전결을 가진 하나의 긴 이야기로 엮어지고 글로 쓰이게 된 것입니다. 비록 저자는 이 문서를 ‘복음’(gospel)이라 부르지 않았고 또 표지에 자기의 이름을 쓰지도 않았지만, 후에 사람들은 이 문서를 “마가복음”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이후 ‘복음’은 특정한 문서 유형, 특별한 문학 장르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됩니다.

이렇듯 마가복음은 최초의 ‘복음서’라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신약성서에서 마가복음보다 앞선 문서는 주후 50년대에 바울이 쓴 일곱 통의 편지들뿐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복음서’가 아니었고, ‘서신서’들이었습니다. 서신서는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들 안에서 제기된 ‘질문과 문제에 대한 바울의 편지 답변’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들에는 예수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편지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각 공동체의 일원이었을 때 이미 그 공동체에 예수의 이야기, 즉 복음을 (말로) 전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편지에 이를 반복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마가가 예수의 이야기를 글로 펴낸 최초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마가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마가가 다른 두 복음서, 즉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원(原)자료 중 하나로 쓰였다는 점입니다. 신약성서에는 모두 네 개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를 학자들은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이들 복음서들은 공관(共觀, synoptic)이라는 어근이 암시하듯이, 나란히 펼쳐놓고 함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유사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공관복음서를 읽어보면 중복되는 자료가 많은데,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마가복음의 90%가 마태복음에도 나타난다. (마가의 661절 가운데 약 600절)

㉡ 마가복음의 67%가 누가복음에도 나타난다. (마가의 661절 가운데 약 450절)

㉢ 마가복음에 나오지 않는 약 200절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양쪽에 나타난다.

그러나 어떤 자료들은 마태복음에서만 발견되고, 어떤 자료는 누가복음에서만 발견됩니다. 그리고 아주 적은 분량의 자료가 마가복음에서만 발견됩니다. 여기서 중첩되는 자료가 공관복음서의 기원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위에서 말한 범주㉠과 범주㉡, 즉 세 복음서가 공유하고 있는 자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또한 범주㉢, 즉 마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공유하고 있는 200절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래의 도표와 같이 이해합니다.

주후 70년경에 마가는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 구전을 채집하여 복음서를 펴냈습니다. 이것은 주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대적으로 그의 가르침은 거의 없습니다. 한편 그보다 10- 20년 앞서 누군가가 주로 예수님의 말씀 구전만 채집하여 예수님의 어록(語錄)이라 할 수 있는 Q복음서(Q는 ‘자료’를 뜻하는 독일어 Quelle의 약자)를 펴냈습니다. 그리고 서기 80-100년경에 마태와 누가는 각기 복음서를 펴냈는데, 그들은 주로 마가의 구조를 따르면서 그 중간 중간에 Q복음서로부터 가져온 가르침을 첨가하는 수법을 썼습니다. 또한 누가와 마태는 마가와 Q복음서 외에도 제각기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자료를 채집하여 여기저기에 삽입했습니다. 이 사료들을 일컬어 누가의 특수자료와 마태의 특수자료라고 합니다.

2. 복음서의 성격

위의 사실은 계몽주의 이후 등장한 ‘성서학’(Biblical Study)이 지난 200여 년 동안 ‘역사-비평적 방법론’(historical-critical method)이라고 통칭되는 ‘성서연구방법론’을 발전시켜 온 결과로 알게 된 것입니다. 아래에서 복음서와 관련하여 모든 성서학자들이 동의하는 중심적인 결론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⑴ 성서 전체와 마찬가지로, 복음서도 하나님의 작품(divine product)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human product)이다. 그러므로 복음서들은 고대의 다른 문서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구될 수 있다.

⑵ 복음서들은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들의 산물이다. 물론, 개별적인 저자들도 영향을 끼쳤지만, 그들은 공동체의 관점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위해서 각 복음서를 썼다.

⑶ 복음서들은 역사적인 자료들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들의 일차적인 목적은 역사적인 보도가 아니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단순하게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보도하려는 저널리스트가 아니었으며 역사가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기쁜 소식”을 선포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복음사가들’(evangelists, 이 단어는 ‘복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서 온 것이다)이었다. 관점을 약간 달리하면, 복음서는 ‘전기’(biography)가 아니며, 그들의 관심은 역사적인 사실성(historical factuality)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의 삶과 사상 속에서 예수가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를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⑷ 복음서의 전승들(traditions, 전해진 이야기들)은 발전하고 성장한다.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은 예수의 죽음 이후 40년에서 70년 사이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그 수십 년 동안에 예수에 관한 전승들은 계속 발전했다.

⑸ 복음서들은 역사(history)와 해석(interpretation)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즉 복음서들은 어느 정도 예수에게로 소급되는 전승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전승들은 예수의 의미를 말하는 해석이 덧입혀지면서 발전하고 성장한다. 실제로 각 복음서들은 한 가지 이상의 목소리, 즉 예수님의 목소리와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의 목소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예수님의 목소리는 ‘부활절 이전의 기억’(pre-Easter memory)으로서 예수님이 실제 한 이야기와 행동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비해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의 목소리는 부활절 이후의 해석(post-Easter interpretation)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이후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의 신앙고백에 기초하고 있다.

⑹ 복음서들은 기억(memory)과 은유(metaphor)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각 복음서들은 그것을 쓴 공동체의 삶 속에서 예수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기 위해 은유(metaphor)라는 언어를 사용한다. 은유적 언어는 본질적으로 비문자적(non-literal)이며, 그 핵심적 의미는 “~으로 보는 것”(to see as)이다. 즉 어떤 것을 다른 어떤 것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은 예수님이 문자적으로 빛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본다(to see Jesus as the light of the world)는 뜻이다. 따라서 은유적 언어는 비록 문자적으로는 사실이 아니지만, 비문자적으로는 사실일 수 있다.

3. 마가복음 독해(讀解)를 위한 세 가지 원칙

(1) Let the Bible speak for itself!

우리가 성서를 읽고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그 원칙들 가운데 하나는 ‘성서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서학자들은 “Let the Bible speak for itself!”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 우리 생각을 성서 이야기에 주입시키면서 읽으면 안 되고, 성서 이야기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에 귀를 기울이면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을 때 선입관을 가지고 읽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신경이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있는 교리를 전제하고 그 교리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서 성서를 읽습니다. 이 경우 Text는 신앙고백이고 성서는 Reference가 됩니다. 성서가 교과서이고 신앙고백은 참고서가 되어야 하는데 앞뒤가 바뀐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 성서를 읽으면 성서에서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교리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성서 이야기 자체로부터 도전을 받을 수는 없게 됩니다.

선입관을 가지고 성서를 읽는 또 다른 예는 마가복음을 읽으면서 다른 복음서를 읽고 얻은 성서 지식을 가지고 읽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마가복음을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성서에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네 복음서는 각각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한 개의 복음서가 아닌 네 개의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는 걸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답을 해 줍니다. 크기와 빛깔이 서로 다른 유리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되듯이, 서로 다른 복음서들이 모여서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복음서는 각각 다른 크기와 빛깔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하나가 다 독특합니다. 만약 그 독특성을 잃어버리면 각각의 복음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자기 색깔로 표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을 다 모아놓아도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을 읽을 때에는 마가의 이야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을 읽을 때에는 마태의 이야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서를 읽고 그것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원칙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은 최초의 복음서이고 다른 복음서들의 원(原)자료이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마가복음을 읽게 되면 마가의 집필 의도를 완전히 놓치게 됩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을 읽을 때는 반드시 마가의 이야기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마태나 누가를 읽을 때는 마태나 누가가 마가의 어떻게 변형했나는 살피고, 그 이유를 묻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단, 마가복음에 앞서 15-20여 년 전에 이미 바울의 일곱 서신들이 쓰였고, 이 서신들은 수신처뿐만 아니라 다른 초대 크리스천 공동체들에서도 널리 알려지고 읽혔던 것으로 보이기에(벧후 3:15-16 참조), 마가와 마가 공동체도 이들 일곱 바울서신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마가복음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즉 마가가 선택한 단어, 문장, 이야기들은 바울서신에 대한 반향(reflection)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2) 역사적 접근법(historical approach)을 활용하라!

성서는 ‘지금 여기서’(now and here) 우리를 위해 쓰이지 않았고, ‘그때 거기서’(then and there) 저들을 위해 씌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 본문이 그때 거기서 무슨 뜻이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성서학자들은 역사비평론(historical-critical method)이라 불리는 수많은 성서연구방법론을 발전시켜 왔는데, 그 대부분이 바로 이 역사적 접근법에 속합니다.

이 역사적 접근법은 역사적 상황(historical context)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역사적 상황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말이나 행동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만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즉, 말이나 행동을 상황과 떼어놓을 경우, 그것은 거의 아무 의미가 없거나 모호한 것이 되고 맙니다. 같은 몸짓이라도 문화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으며,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Context의 접두사인 con은 “함께”(with)라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text와 함께 가는 것이 바로 ‘con-text’입니다.

우리가 낮선 외국을 여행한다고 상상해봅시다. 물론 여행자는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그곳에 가서 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인간은 아는 만큼 느낄 뿐이며, 느낀 만큼 보인다”라고 핵심을 집었듯이, 여행할 때 그 여행지에 대해 사전지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 안내자나 해설자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여행자가 보고 느끼는 것에 있어서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역사적 접근법은 성서 본문의 역사적 상황을 앎으로서 성서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고 듣는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상황이란 복음서의 문자적 맥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상황, 즉 사회적 세계(social world)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하고 행동한 현장은 1세기 지중해 연안에 살던 유대인들의 사회적 세계였습니다. 이 사회적 세계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학자들은 문화인류학, 종교에 대한 교차문화적 연구, 그리스-로마 및 유대인들의 상황에 관한 역사적 연구 등을 이용합니다.

(3) 사실과 은유를 구별하고, 은유를 은유로 알아들으라!

복음서의 많은 이야기들은 역사적인 보도(historical report)가 아닙니다. 즉 기억된 역사(historical remembered)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미에 대한 핵심적인 진리를 표현하기 위해 고대의 종교적 이미지들을 사용한 은유적인 이야기들(metaphorical narratives)입니다. 이렇듯 복음서를 포함한 성서를 만들어낸 고대 공동체들은 흔히 자신들의 역사를 ‘은유화’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그런 은유들을 ‘역사화’ 합니다. 약간 달리 표현하면, 그들은 흔히 자신들의 역사를 ‘신화화’(神話化)했지만, 우리는 흔히 그들의 신화를 ‘문자화’(文字化) 합니다. 그러나 은유를 문자화할 때, 그 결과는 난센스가 됩니다[예:“이솝 오류”(Aesop Fallacy)] 반면에 우리가 은유적 이야기를 은유적 이야기(metaphorical narratives)로 인식할 때, 그 결과는 매우 힘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서에 나오는 은유적인 이야기를 역사적인 사실로 이해해서는 안 되고, 은유를 은유로 분별해서 읽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