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창세기 6:1-9:17 말씀 순례

(1) 교회는 구원의 방주?

20세기 중반까지의 세계교회 선교전략은 ‘교회의 선교’였습니다. ‘교회의 선교’는 교회를 구원의 방주로 이해합니다. 마치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속에서 뭇 생명들을 구해낸 것처럼, 멸망으로 향해 가는 세상 속에서 허덕이는 인생들을 하나하나 건져내어 구원의 방주인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구원받을 사람의 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세상을 기독교 세계(christendom)로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방주 안 사람들을 천국으로 안전하게 이끄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교회는 자기 확장이 목표이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이 소명입니다. 이렇듯 교회의 선교는 개인 구원, 영혼 구원, 즉 구령사업에 치중하며 교인 확보, 교파 확장에 주력합니다.

그런데 20세기 중반부터 ‘교회의 선교’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952년에 독일의 빌링겐에서 열린 제5차 국제선교대회에서 ‘하나님의 선교’가 처음으로 제안되었고, 1961년 이후 지금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선교이념으로 굳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교’ 신학이 새로 발견한 것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인 이해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신학적 재발견, 그리고 ‘하나님-세계-교회’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입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선교활동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선교는 “교회의 여러 기능 중 하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 세상 속에서 수행하고 계시는 일”이고, “하나님께서 지금 세상 속에서 일하고 계시니 교회는 마땅히 그 일에 동참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고, 교회의 존재 근거입니다. 이렇듯 교회는 구원받을 세계의 한 표징으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섬기며 봉사하는 ‘소금’의 역할과, 세상 역사에 개입하여 변화시켜 나가는 ‘빛’의 역할이 교회의 중요한 선교과제로 부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 보살피는 일, 훈련하고 조직해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가는 일, 또 교회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산 표징의 하나로 항상 자기갱신의 길을 걸어가는 일이 교회와 목회 실천의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또한 이 세계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주신 선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대상, 곧 복음화의 대상은 개개 인간의 영혼만이 아니라 피조세계 전체입니다. 따라서 복음화는 한 인간을 회개시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복음화는 인간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 관계가 파괴된 가운데 있는 피조세계 전체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재창조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개인적, 구조적 죄악으로 인해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개인의 인간화 과정, 불의한 사회구조를 정의와 평화가 보장되는 구조로 바꾸는 사회구조의 인간화 과정, 인간에 의해 무한히 착취당해 파괴되어 있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창조질서 보전의 과정을 포함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삶의 모든 분야와 차원의 구석구석을 깊이 있게 복음화하여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자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선교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 ‘교회의 선교’와 ‘하나님의 선교’를 “하나님-교회-세계”라는 도식과 “하나님-세계-교회”라는 도식으로 비교해 놓았습니다.

(2) 주님께서…마음속으로 다짐하셨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8:21).

창세기 6-9장의 대홍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6:5-6)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인간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앞으로 그들을 어떻게 할까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로 ‘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악으로 인해 온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회개할 가능성은 0%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셨고, 결론적으로 지상에서 숨 쉬는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노아만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고, 그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노아는 기나긴 세월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되자 노아는 하나님의 명대로 짐승들을 방주에 집어넣었습니다. 드디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비는 하늘에서만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땅 속 깊은 곳에서 큰 샘들이 모두 터지고, 하늘에서는 홍수 문들이 열렸다”(창 7:11)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면서 갈라놓았던 물과 뭍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새와 집짐승과 들짐승과 땅에서 기어 다니는 모든 것과 사람까지, 살과 피를 지니고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다 죽었습니다. 마른 땅 위에서 코로 숨을 쉬며 사는 것들이 모두 죽었습니다”(창 7:21-22).

폭우는 40일 동안 쏟아졌고, 비가 멎은 후 물이 빠지는 데만도 150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방주 속의 짐승들을 ‘기억하사’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고, 그로부터 다시 40일이 지나자 산봉우리가 드러났습니다. 노아는 두 차례에 걸쳐 비둘기를 날려 땅이 말랐음을 확인하고 나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노아가 밖으로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하나님께 번제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은 노아가 바친 번제물의 향긋한 냄새를 맡으시고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셨습니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창 8:21).

하나님은 지금 “사람은…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라고 판단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판단을 근거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6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은)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이기 때문에 인간과 피조세계 전체를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즉, 6장에서는 ‘인간의 악함’이 심판을 결과했고, 8장에서는 같은 ‘인간의 악함’이 ‘은혜’를 결과했던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맺었던 관계는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더 이상 유지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결국 창세기 6장에 와서는 ‘싹쓸이’가 불가피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처음 창조됐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깨어졌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에게 벌인 살인극은 이 현실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 때문에 피조세계 전체가 죄악으로 물들었습니다. 부분적인 치료로는 완치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부를 모조리 들어내는 ‘대수술’을 하기로 결심하신 것입니다. 홍수 심판은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대수술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악으로 치닫는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곪아터진 육체를 잘라낸 칼로 마음까지 잘라내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택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요? 인간의 죄악이 피조세계라는 그릇에 차고 넘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홍수든 지진이든 천재지변으로 심판하실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다른 해결책을 강구하셨습니다. 그 해결책이 노아와 ‘언약’(covenant)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홍수 심판 전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등장하는데, 이것이 성경에서 처음으로 이 말이 사용된 예입니다(창 6:18). 이 언약은 홍수 이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창 9:1-17). 그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세기 1장 28절의 명령을 반복하신 후,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짐승의 피는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동물 뿐 아니라 사람의 피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후, 하나님은 모든 생물을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는 다짐하시면서 무지개를 다짐의 증거로 세우셨습니다.

‘언약’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됐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즉, 기존의 관계가 변했음을 상징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는 달라졌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및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가 깨진 것은 하나님과의 사람 사이의 관계가 변함에 따라 초래된 결과였습니다. 그 궁극적인 결과는 인간을 창조하셨던 데 대한 하나님의 ‘후회’와 홍수를 통해 지상의 생물을 싹쓸이하신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이렇게 악화일로를 치닫던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언약’을 맺음으로서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첫째로, 인간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홍수라는 대수술을 받기 전이나 받은 후나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는 여전히 악하다고 했습니다(8:21 참조).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칼은 육신의 환부만 도려냈을 뿐, 깊고 깊은 영혼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둘째로, 피조세계에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홍수로 잠시 질서가 흔들리기는 했지만 하나님은 다시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그리고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입니다(창 8:22).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울 것이니, 다시는 홍수를 일으켜서 살과 피가 있는 모든 것들을 없애는 일이 없을 것이다.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창 9:11)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변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심판을 불가피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사람의 악함’이, 홍수 이후에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게 만든 원인이 된 것은 하나님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실이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면 이는 평가자의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마음의 변화를 우리는 ‘은혜’(grace)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출렁거렸던 풍랑의 산물입니다. 이 은혜를 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픔을 견뎌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라는 칼로 인간의 환부를 도려내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자, 그 칼로 스스로의 가슴을 도려내신 것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인간의 악행을 아파하시면서, 악행에 대해 벌주는 것으로는 인간이 당신의 아픔을 알아주지 않기에, 스스로의 가슴에 칼을 들이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그 은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값비싼, 아니 값을 매길 수 없는 존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 아니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시며 하나님의 마음속에서 출렁거렸던 풍랑 속에서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까?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