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33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34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고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자매들이다. 35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 (막 3:33-35)

26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27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28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 (갈 3:26-29)

다양한 ‘가정’

서울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랜만에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전 세대 온 교우가 예배 시작 때부터 마칠 때까지 함께 예배합니다. 우리 어린이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는데, 1년에 딱 한 번 있는 특별한 주일이니까 꾹 참고 의젓하게 예배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저도 쉽고 짧게 설교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이 5월 첫째 주일인데, 흔히들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5월에는 가정과 관련된 여러 기념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과 5월 8일 ‘어버이날’은 잘 아시지요? 그 밖에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고, 또 5월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얼마 전까지 가정하면 아빠와 엄마 즉 부부와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옛날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이고, 삼촌과 고모까지도 가족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크게 달라졌습니다. 결혼을 안 한 독신가정도 있고, 결혼했어도 자녀가 없는 무자녀가정도 있습니다. 또 부모 중 한쪽만 있는 한부모가정도 있고, 할아버지나 할머니만 사시는 독거가정도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나 할머니와 손자나 손녀가 사는 조손가정도 있고, 가족이 함께 모여 살지 않고 이곳저곳에 나뉘어서 사는 분거가정도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가정이 드물었는데, 지금은 많습니다. 또 예전에는 이런 가정을 이상하게 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는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정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더구나 매년 교회에서 지켜온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올해부터 매년 5월 첫째 주일을 ‘오이코스주일’로 정해 지키기로 했습니다.

‘오이코스’(οἶκος, oikos) = 확대 가족, 대안 가족

여러분 ‘오이코스’란 말이 낯설지요? ‘오이코스’는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고대 그리스 말로 ‘집’(house)과 그 집에 사는 ‘가족’(family)을 뜻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말은 한 집에 거주하는 친척, 고용인, 손님까지 포함하는 매우 포괄적인 뜻으로 사용됩니다. 간단히 말해 ‘확대된 집안’ 또는 ‘확대된 가족’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개인에게 발생한 중대하고 특별한 사건에 대해서 즉시 연락하여 기쁨이나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행 16:25-34 참조).

그런데 오이코스는 사도 바울이 말한 교회공동체와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은 주로 갈릴리에 있는 시골 마을을 돌아다니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사도 바울은 주로 로마제국의 속주 수도, 즉 대도시를 돌아다니며 교회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가 말한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특히 기존의 가족을 대신하는 대안 가족으로 기능했습니다.

당시에도 기존의 가족은 혈연 중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식민 통치로 인해서 고향을 떠나서 대도시로 이주한 기존의 가족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체되었습니다. 전쟁 때문에, 사고 때문에, 병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교회공동체를 세우고,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가족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부모 없는 어린이에게는 부모가 되어 주고, 자녀 잃은 부모에게는 자녀가 되어 주고, 갑자기 형제자매가 없어진 사람들은 서로의 형제자매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까 성가대가 부른 찬양 가사 중에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을 닮아 외로운 어른들의 자녀가 되어”라는 말과 “아이들의 해맑은 마음을 닮아 길을 잃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라는 말, 그리고 “온 세상이 아름다운 가정이 되어 온 인류가 형제처럼 어울려 사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이게 교회였습니다. 이렇듯 교회는 서로서로 아픔을 보듬어주고, 서로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그런 공동체였습니다. 달리 말해 기존 가족을 대신한 대안 가족이었습니다. 이 ‘대안 가족’이 바로 ‘오이코스’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족

예수님과 사도 바울은 주 활동무대가 시골 마을과 대도시라는 차이도 있지만, 사용한 용어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자주 썼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합니다. 만약 로마제국을 황제 카이사르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면 어떤 나라가 될까, 유대 나라를 헤롯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면 어떤 나라가 될까 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가 뜻했던 것입니다.

이에 비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라는 말을 안 쓰고, 대신 ‘하나님 아버지’란 말을 자주 썼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이 가장(家長)인 인류 가족’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가장이라면 하나님은 어떻게 당신 가족을 돌보실까를 상상했습니다. 좋은 가장은 자식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을 것입니다. 강하고 잘난 자녀에게만 사랑을 쏟아붓지 않고, 오히려 가장 약하고 못난 자녀의 필요를 더 챙겨줄 것입니다. 이게 좋은 가장의 모습입니다.

당시 가장은 대부분 아버지였기에, 바울은 하나님을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일부 여성 신학자가 오해하듯이 성차별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당시 사회문화적 한계를 지난 표현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것은 오늘 서신서 본문 말씀인 갈라디아서 3장 28절 말씀에 분명히 드러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없다”는 말은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세상/사회 풍조와 달았던 교회만의 특별한 점이었습니다. 만약 차별이 존재하면 그것은 더는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세상 죄/구조 악이 교회 안에 침투한 결과요, 무늬만 교회일 뿐이었습니다. 이를 바울은 ‘다른 복음’, ‘왜곡된 복음’이라고 말했습니다(갈1:6-7 참조).

똑같은 건 없어요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공동체’, 즉 ‘오이코스’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많은 지체”로 설명했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이지만, 그 한 몸은 많은 지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눈, 코, 입, 귀, 손, 발 등등 말입니다. 각각의 지체는 그 모양도 하는 일도 다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다 모여야 비로소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을 좀 어려운 말로 “다양성 속에서의 일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각자가 서로 달라야 한 몸을 이룰 수 있고, 사람으로서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 오이코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똑같지 않고 각자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가족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를 감사찬송은 “똑같은 건 없어요”인데, 이 노래는 우리 교단이 지난 2000년 여름성경학교 어린이부 주제가로 만든 곡입니다. 그 가사를 한 번 볼까요?

하나님 주신 세상에 똑같은 것은 없어요

생긴 것도 달라요 마음도 달라요

하나님 주신 세상에 꼴찌도 일등도 없어요

서로 잘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나무도 꽃들도 길가에 돌맹이 하나도

똑같은 건 없어요 세상에 단 하나

우리는 모두 한 가족 하나님 안에 한 가족

달라서 더 소중한 주님의 한 가족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빛깔 무지개가 아름다운 것은 여러 색깔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똑같지 않은 사람들이 어우러져서 살아가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랑의 공동체

그런데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공동체’, 즉 ‘오이코스’가 비록 각각 다른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똑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가족 개념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은 혈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신앙 중심의 가족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막 3:35).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갈 3:26). 즉 ‘교회공동체—오이코스’가 ‘하나님의 가족’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까닭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결코 세상에 속해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세상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을 따릅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거나 지배됩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을 따르기도 합니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이익을 몽땅 차지합니다. 그래서 적자생존(適者生存), 이긴 자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자는 도태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사람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 제각기 살아나갈 방도를 찾습니다. 하지만 이런 세상은 무한 경쟁의 정글입니다. 짐승들이 사는 세상이지,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경쟁이 아니라 상생이, 독존이 아니라 공존이 목표입니다.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더불어 잘사는 것을 꿈꿉니다.

무한경쟁과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 해답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기존의 가족이 이런저런 이유와 사정으로 해체된 상황에서, 교회공동체가 대안 가족, 확대 가족이 되어 해체된 가족을 대신하면 됩니다. 그 옛날 로마제국 시대에 바울의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서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삼촌, 고모, 외삼촌, 이모, 아들, 딸, 손자, 손녀, 조카, 형제자매가 되면 됩니다. 피를 나눈 가족처럼,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면 됩니다.

하지만 피를 나눈 혈연 가족도 때로는 데면데면하고, 심지어는 원수가 되기까지 합니다. 그러니 신앙을 공유한 대안 가족은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는 나이, 성별, 배경, 형편, 처지가 다 다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를 하나로 만듭니다. 성령의 띠가 우리를 하나로 묶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따라서 살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서로서로 환대하고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배제하지 않고, 사랑으로 용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용서하며 살 수 있습니다.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존중과 배려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점 채워주고, 넘치는 것 나눠주며 믿음·소망·사랑이 넘치는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오이코스주일을 맞아 사랑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 본받아 살고, 우리 서울제일교회를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세워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