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에 앉으라!
1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지도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의 집에 음식을 잡수시러 들어가셨는데, 7예수께서는,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8“네가 누구에게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아라. 혹시 손님 가운데서 너보다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 9너와 그를 초대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앉게 될 것이다. 10네가 초대를 받거든, 가서 맨 끝자리에 앉아라. 그리하면 너를 청한 사람이 와서, 너더러 ‘친구여, 윗자리로 올라앉으시오’ 하고 말할 것이다. 그 때에 너는 너와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 11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12예수께서는 자기를 초대한 사람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만찬을 베풀 때에, 네 친구나 네 형제나 네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말아라. 그렇게 하면 그들도 너를 도로 초대하여 네게 되갚아, 네 은공이 없어질 것이다. 13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 14그리하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눅 14:1.7-14)
지금 우리는 계절의 변화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심각했던 무더위와 집중호우가 물러가고, 최근에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농사력(農事曆)으로 사용되는 24절기(節氣) 상으로 보면 ‘가을이 시작된다’라는 입추(立秋)가 벌써 지났습니다. 또 지난 주중에는 ‘더위가 물러간다’라는 처서(處暑)도 지났습니다. 어느새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입니다. 이제 날씨가 점차 쌀쌀해지고, 일교차가 커지면서 논의 벼와 들판의 곡식들이 익기 시작할 것입니다. 농작물과 여러 식물은 이제 성장을 멈추고 성숙의 시간을 가지며 결실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인도 더욱 깊어지는 성숙의 때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본문 말씀은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낮은 곳에 앉으라’는 권고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하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낮아짐’과 ‘섬김’이야 말로 핵심적인 가치이면서도 정말 따르기 쉽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누가복음이 전하는 ‘낮은 곳에 앉으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요청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절은 말씀이 전해진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새파 사람의 지도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의 집에 음식을 잡수시러 들어가셨다” 그리고 7절에 “예수께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골라잡는 것을 보셨다”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낮은 곳에 앉으라’ 하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인싸’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인싸’는 인사이더(Insider)의 줄임말인데, 요즘 학생들과 젊은 층에서 유행하는 말입니다. 사전적 의미인 ‘내부자’,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한 집단 안에서 주류에 속한 사람들,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인싸’ 중에 가장 중심에 있는 사람, ‘인싸’ 중에 ‘인싸’를 ‘핵인싸’라고 부릅니다. 이 말을 공유하는 초등학생들의 최고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핵인싸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인싸’의 반대말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웃사이더(Outsider), 줄여서 ‘아싸’입니다. 과거 사용되던 왕따란 말과 비슷한 의미입니다. 한 사회 안에서 주류가 되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떠도는 사람. 이런 의미겠지요. 자발적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류 집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인싸’가 되고 싶어 합니다. 인싸는 인정을 갈망합니다. 그리고 인정을 받지 못한 아싸는 인정 대신 무시를 받게 되죠. 이 인정과 무시는 각각의 부작용이 있는데 그것은 자기과시와 혐오입니다. 인정을 받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자기과시를 합니다.
뭐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표현하는 언어가 다를 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집단에서 주류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이 갖는 욕망인가 봅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을 열심히 따랐던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자리, 예수님의 좌우에 앉기를 바랐겠습니까? 자리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 배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앉거나 서는 자리에 민감합니다. 주인이나 높은 분 가까이에 앉을수록 자기가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치 싸움이 치열해집니다. 의전에 유난히 민감한 이들이 있습니다. 자리 배치가 자기 성에 차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그 자리에서 떠나버리는 이들도 있습니다. 종교인들이라 하여 다르지 않습니다.
2000년 전에도 잔치의 ‘인싸’가 되기 위해, 아니 ‘핵인싸’가 되기 위해 자리다툼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하는 것과 같이 초대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왕이면 윗자리에 앉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잔치 자리의 상석을 누구에게 배정하느냐 하는 문제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아주 까다로운 문제였습니다. 잔치 자리의 상석에 앉는 것은 그의 사회적 신분과 위상을 드러내는 일이었기에 존경받는 바리새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거든,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님 가운데 더 귀한 사람이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 주인이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시오’ 하고 말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민망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앉으라는 것입니다. 남들에 의해 낮추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스스로 낮은 자리를 택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대조되는 두 가지 단어가 등장합니다. ‘올라앉다’라는 동사와 ‘내려앉다’라는 동사입니다. 이 두 동사는 모두 미래 수동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비유는 단순히 처세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푸실 종말론적 구원의 잔치에서 벌어질 일을 암시함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의 결론으로 하신 말씀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눅14:11). 자기를 낮추라는 것은 자칫 창피를 당할 것이 두려우니 겸손을 꾸미라는 세속적인 교훈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높여줄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사람의 위치, 곧 사람을 높이고 낮추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린 것이지 인간의 자기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이들을 존중할 줄 모릅니다.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우리 사회의 어두움을 드러내는 단어 ‘갑질’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고, 그 자리가 곧 사람의 품격이나 능력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고귀한 존재를 지으셨는데, 누가 그 사람의 품격과 가치를 평가하겠습니까?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은 높아지려는 마음을 끌어내려서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같은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같은 입장에 서는 것이 최고의 연대라는 말을 기억하시지요?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은 누군가를 함부로 비난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제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바라고 믿고 참아내는 사랑으로 대하고 연대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열린 밥상공동체가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인 이유는 남녀노소(男女老少),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막론하고 누구나 같은 자리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는 평등한 잔치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 귀하게 대접받도록 빈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인정받고 대접받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귀히 대접받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은 자리로 인정받고, 보상받고, 평가받는 그 기준을 거부하고 하나님께서 고귀한 존재로 여기고 인정해주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예수님의 말씀은 잔치에 초대하는 사람을 향한 것입니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 사람들’ 대신에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되갚을 수 있는 사람들보다 갚을 수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눅 14,12-14). 가난한 사람은 갚을 경제적 능력이 없고, 나머지 사람들은 갚을 경제적 능력은 물론, 신체적 능력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렇게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 당시 쿰란 공동체에서는 ‘장애인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은 전쟁에 소집되는 것도 면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공동식사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예수께서 갚을 수 없는 이런 사람들을 식사에 초대하라는 것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보상을 받을’ 선한 행동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눅 14,14),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누구도 소외됨 없이 평등하게 식탁을 나누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선취하기 위함입니다. 가진 것이 없다 하여 배제되지 않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라고 천대받지 않고, 장애가 있다고 소외되지 않는 자리, 누구나 환대받는 자리가 바로 진정한 잔치자리이자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헬레니즘 신봉자인 헤롯은 잔치를 많이 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처럼 살고 싶은 헤롯은, 값비싼 연회복을 차려입고 진귀한 음식과 수입 포도주가 잔뜩 차려진 연회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매번 호화로운 연회를 차리려니 비용이 많이 들었습니다. 또 음식값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그것은 손님을 차별화해서, 품격 높은 손님을 윗자리에, 부조금 봉투 품격이 얇은 사람은 아래에 앉히는 겁니다. 당연히 윗자리에는 비싼 음식이고 아래에는 싸구려 음식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 돈이 많은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리경쟁을 시켜서 연회비용을 충당한 것입니다. 그러고도 남는 돈으로 부로 축적한 것이지요. 이것이 헤롯의 잔치였습니다. 돈깨나 있다는 사람들도 그런 연회를 흉내 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잔치는 ‘진정한 잔치가 아니다’ 하며, 헤롯의 잔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신 것입니다. “잔치를 베풀 때는, 가난한 사람들과 지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과 눈먼 사람들을 불러라(13절).”라는 말씀은 진정한 잔치는 나를 시위(示威)하고 내 잇속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다. 잔치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내 기쁨을 나누는 것이다. 그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어지는 비유에서 기쁜 일이 있을 때마다 잔치를 연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5장에는 세 가지 되찾는 비유가 나오는데, 이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기쁨의 잔치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았을 때도, 드라크마 하나를 되찾았을 때도, 집 나갔던 작은 아들이 되돌아 왔을 때도 모두 잔치를 열고 기쁨을 나눕니다. 잔치야말로 모두가 함께 나누며 기쁨을 누리는 축제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요약하면 두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낮은 자리에 앉으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라’ 하는 것입니다. 그리 어렵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말씀입니다. 만일 이 말씀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삶에서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삶으로 살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잘 아는 말씀이지만 아는 만큼 삶으로 실천하는 것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아는 것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까지가 바로 믿음이고 예수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 말씀을 자신의 삶을 통해 살아내고자 노력한 두 명의 인물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낮은 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을 따라 산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여 베푼 사람입니다. 오늘 주제에 딱 맞는 이 두 인물을 소개함으로써 말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보고자 합니다.
먼저 평생의 삶을 낮은 자리에 앉고자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바로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입니다. 그는 <강아지똥>, <몽실언니>, <우리들의 하느님> 등과 같은 베스트셀러 작품을 남긴 유명 작가였지만 평생을 자신이 지은 10평 남짓한 흙집에서 자신을 낮추며 검소하게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권정생 선생은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지독한 가난과 전쟁, 결핵 등의 병고로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운 삶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늘 겸손히 이웃을 섬기며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의 여러 일화를 듣다 보면 그가 얼마나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을 따라 살고자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16년간 일직교회라는 작은 교회에서 종지기로 일했는데, 그가 살았던 교회 문간방은 약 5평 남짓한 크기의 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새벽 종을 울리기 전 종탑 앞에서 두 손 모아 “이 종소리로 가난한 이들을 일으켜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종 줄에 서리나 눈, 살얼음이 앉아있을 때도 항상 맨손으로 줄을 잡아당겼는데, 그 이유가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가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는가?”하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보상이나 인정을 바랐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한번도 자신이 인정받고자, 자신을 드러내고 높아지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동안 숱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음에도 수상받기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동화작가로 살 수 있는 것은 아이들 덕분이라며 그 공을 아이들에게 돌렸습니다. 또한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거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며 그의 유산과 인세를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를 위해 사용해달라고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 몫 이상을 쓰는 것은 남의 몫을 빼앗는 것이라며 내가 두 그릇의 물을 차지하면 누군가 나 때문에 목이 말라 고통을 겪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며 늘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그가 가진 이러한 삶의 자세일 것입니다.
권정생 선생의 낮은 자리의 삶과 그의 작품 바탕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없고 약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자신이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인간을 사랑함이 곧 하나님을 사랑함이며, 인간을 사랑하는 길은 이웃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권정생 선생을 통해서 아주 사소한 것 하나조차 가벼이 여기지 않고 자신의 삶으로 옮기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권정생 선생은 자신의 자리를 비워 누군가 귀하게 대접받도록 빈자리를 내어주었습니다.
두 번째로 소개할 사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초대해 하나님 나라 잔치를 열었던 사람은 살아 있는 성자이자 바보 의사로 불렸던 장기려 박사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작은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돈 없고 병든 몸만 가진 가난한 환자들은 누구 하나 자신을 거들떠보지 않는 세상에서 장기려 박사만이 희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만약 예수님이 지금 여기에 오신다면 이토록 가련한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장기려 박사처럼 손을 내밀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를 통해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그의 삶에서 예수가 직접 드러나는데 굳이 예수님을 믿으라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당신이 믿는 그분을 나도 한번 믿어 볼랍니다.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생명도 돈 앞에서는 아무런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병들고 불쌍한 인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람이 바로 장기려 박사였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경성의전 입학 당시 돈이 없어서 의사의 진료를 받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의사가 되겠다던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좋은 조건의 여러 자리를 마다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곁에 섰습니다. 1951년 부산에 복음병원을 개설하여 무료진료를 시작했고, 1968년에는 행려병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며 평생 어려운 환자를 섬겼습니다. 그가 이런 일을 할 때 왜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그는 한국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올 때 가족을 잃었습니다.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며 살았고, 때때로 이권의 밝은 사람들에 몰려 곤란을 겪기도 하고, 쫒겨 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핵심이 무상치료와 열린 밥상공동체였던 것처럼 장기려 박사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값없이 누리는 하나님 나라 잔치를 열고자 그의 평생의 삶을 바쳤습니다.
이 두 사람의 삶을 보면서 ‘와~ 대단하다.’ ‘정말 존경스럽다’로 끝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이 두 사람처럼 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보면서 같은 신앙인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 모습을 돌아보고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낮은 자리에 앉으라’ 권고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삶에서 작은 실천을 옮기며 ‘앎’을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다 깊이 알게 되고,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서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해가 커지는 것이 ‘신앙의 성장’이라면, 성서의 말씀대로 살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삶에서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바로 ‘신앙의 성숙’입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섬김의 모범을 보이셨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성장이라면, 낮아지고 섬기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 바로 ‘성숙’이라는 말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앎’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인정이나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는 낮아짐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의 자세를 그렇게 낮추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성숙으로 향하는 이 계절에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을 끌어내리려고 노력하고, 인정받고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도 줄이도록 노력합시다. 대접받으려는 마음만 내려놓아도 삶의 무게가 덜어집니다. 한 번에 큰 걸음을 내디딜 수 없더라도 작은 일부터 한 걸음씩 내디뎌 보고, 또 욕심을 비우고 검소해지는 작은 훈련부터 시작해봅시다. 낮은 자리를 향해 우리의 삶의 자세를 낮추고, 마음을 열어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 삶의 자리에 기꺼이 맞아들이는 연습을 합시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환대의 공간을 열어가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의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의 행복입니다. 이 행복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또 한 주간의 삶을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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