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것이다!

1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2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3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이집트를 속량물로 내주어 너를 구속하겠고, 너를 구속하려고, 너 대신에 에티오피아와 쓰바를 내주겠다. 4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하였으므로, 너를 대신하여 다른 사람들을 내주고, 너의 생명을 대신하여 다른 민족들을 내주겠다. 5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동쪽에서 너의 자손을 오게 하며, 서쪽에서 너희를 모으겠다. 6북쪽에다가 이르기를 ‘그들을 놓아 보내어라’ 하고, 남쪽에다가도 ‘그들을 붙들어 두지 말아라. 나의 아들들을 먼 곳에서부터 오게 하고, 나의 딸들을 땅끝에서부터 오게 하여라. 7나의 이름을 부르는 나의 백성, 나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창조한 사람들, 내가 빚어 만든 사람들을 모두 오게 하여라’ 하고 말하겠다.” (사 43:1-7)

주님의 세례일

오늘은 교회력으로 ‘주현절 후 첫째 주일’(First Sunday after Epiphany)입니다. 교회 전통은 ‘주님이 나타난 날’을 뜻하는 ‘주현절(主顯節)’의 첫 번째 주일을 ‘주님의 세례일’(Baptism of the Lord)로 지켜왔습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 갈릴리 나사렛이라는 촌구석에 묻혀 살던 예수가 역사 속에 자기 모습을 드러낸 날이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주님의 세례일’인 오늘은 예수가 세례받은 사건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이에 비추어 우리 각자가 받은 세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날입니다.

그래서 서구 교회에서는 세례는 일생에 단 한 번 베풀지만, ‘주님의 세례일’인 오늘 종종 ‘세례언약 재확인 예식’이라는 것을 합니다. 결혼식은 평생 한 번만 하지만 결혼 25주년에 은혼식을 하고, 50주년에 금혼식을 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이 가면 첫사랑의 감격이 희미해지고 무뎌집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재확인 예식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나무랍니다. 이유는 “처음 사랑을 버린 것” 때문입니다(3절). 그래서 “네가 어디에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 내서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4절)고 당부합니다. 재확인 예식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도 예배 중에 ‘세례언약 재확인 예식’을 거행하려고 합니다. 잠시 여러분이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며 받았던 세례를 회상해 보십시오. 언제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가 예배 중에 거행할 ‘세례언약 재확인 예식’을 통해 이전에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떨리는 마음으로 받았던 세례의 감격과 가슴 뜨거웠던 첫사랑을 회복하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다시 새로워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세례(식)의 참 의미

크리스천인 우리는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지 않고 크리스천이 되는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례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필수적인 의례입니다. 그렇다면 세례는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통과절차일 뿐일까요? 우리가 받은 세례는 과연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미국연합감리교회(UMC) 예식서는 세례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총으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신다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우리의 약속이다.”

먼저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으신다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로부터 이런 소리가 울려왔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막 1:11, 마 3:17, 눅 3:22). 그렇습니다. 세례는 단순히 머리에 물을 붓는 예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례의 핵심은 예수께서 보여주셨듯이 하나님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이다”라는 말씀을 듣는 것에 있습니다. 즉, 참 자녀로 인정받는 것에 그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자녀로 인정받는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자식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이유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제멋대로 살았습니다. 죄의 자녀로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속절없이 이미 용서하고 기다리십니다. 선(先) 회개, 후(後) 구원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았지만, 미리 용서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사실을 오늘의 구약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 43장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이다. 너의 구원자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 고백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지만 그것을 몰랐거나 인정하지 않고 살아온 우리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내 자녀로 인정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언제? 세례받을 때. 그래서 이를 ‘은총’이라고 합니다. 받을 자격이 없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꺼이 인정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세례받을 때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대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발성’을 존중합니다. 강제로, 억지로 우리를 회개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집 나간 탕자가 스스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실 뿐입니다. 하지만 탕자가 돌아오면 버선발로 동구 밖까지 뛰어나와 맞이하십니다. 신의 자리를 버리고 인간의 자리로 내려와 인간과 계약(covenant)을 맺으시고, 스스로 그 계약에 얽매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총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이 지극한 사랑과 은총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대한 인간의 자발적인 응답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세례는) 우리가 믿음과 사랑으로 살겠다고 하나님께 응답하는 우리의 약속”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약속의 표시로 물을 사용합니다. 예수도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물속에 몸 전체를 담그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몸이 물속에 잠기면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이렇듯 세례란 물속에 잠겨서 죽었다가 물 밖으로 나오면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하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는 정화의식이 아닙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부활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란 옛 자아를 물속에 죽이고 새로운 자아로 다시 태어나는 예식입니다. 마치 옛 이스라엘 백성이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넜듯이, 이제는 주님의 뜻만을 따르기 위해 자기 뜻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일입니다. 즉 옛사람에 대해서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예식입니다. 달리 말하면 세상 풍조, 세상 가치에 따라 살던 내가 죽고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사는 새로운 나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렇듯 세례는 사랑받아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세례언약 재확인 예식

오늘 우리는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왔던 ‘세례언약 재확인 예식’을 거행하고자 합니다. 저는 이 예식이 참여하는 모든 분이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는 큰 은혜가 있기를 빕니다. 그러기 위해 비결(tip)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여러분은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물그릇에 손을 넣어 구슬을 꺼낸 후 잠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원래는 조금 더 깊은 그릇을 사용해 손목까지 물에 담가야 하는데, 감염 위험 때문에 손가락이 담길 정도의 얕은 그릇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릇에서 구슬을 꺼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차가운 세례수를 만져야 할 것입니다. 그 차가운 세례수는 여러분의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을 수장시킬 무덤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것을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거기에 담겨있는 차가운 유리구슬은 구약의 여러 예언자가 지적했던 우리들의 ‘돌심장’을 상징합니다. 사랑이 없어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진 우리 자신을 상징합니다. 그런 자신을 물속에서 건져내 양손으로 감싸 보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다음 사람을 위해서 무릎 꿇고 오래 기도할 수 없으니, 구슬을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를 찬송하며 계속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리니.

나의 맘 속을 살피시사 눈보다 희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온전히 나를 주장하사.

주님과 함께 동행함을 만민이 알게 하옵소서.

그러면 차가웠던 구슬이 어느새 따뜻해질 것입니다. 마치 차가운 ‘돌심장’이 따뜻한 ‘살심장’으로 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무엇보다 차가운 구슬을 어미 새가 알을 품듯이 꼭 품을 때, 하나님의 심정이 되어 보십시오. 그리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다.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겨 사랑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확인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 사랑에 응답하며 살아가십시오. 그 따뜻한 사랑의 마음, 뜨거워진 하나님의 심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십시오. 아무쪼록 이 예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다시 체험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결단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