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를 통한 구원

7참으로 나 주가 말한다. 너희는 기쁨으로 야곱에게 환호하고 세계 만민의 머리가 된 이스라엘에게 환성을 올려라. ‘주님, 주님의 백성을 구원해 주십시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십시오.’ 이렇게 선포하고 찬양하여라. 8내가 그들을 북녘땅에서 데리고 오겠으며, 땅의 맨 끝에서 모아 오겠다. (렘 31:7-8a)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

2022년 새해 첫 주일 아침을 맞아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교회의 예배력으로 ‘성탄절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크리스마스 시즌’(Christmas Season) 중입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그보다는 오늘이 새해 첫 주일이기 때문에 보통 ‘신년 주일’로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신년 주일인 오늘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린 엑소더스’(Green Exodus)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단어입니다. 작년 우리 교인 필독서의 제목이기 때문입니다. 다 읽으셨지요? 아직 못 읽거나 안 읽은 분은 지금이라도 꼭 읽으시기 바랍니다. 사서 읽지 마시고, 서제뜰 공부방 책꽂이에서 가져가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 읽은 분은 속히 반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책 󰡔그린 엑소더스󰡕의 저자가 ‘기독교환경운동연대’(약칭 ‘기환연’) 사무총장 이진형 목사인데,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는 기환연이 2022년에 추진하는 중점 사업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그린 엑소더스—녹색 출애굽’을 한국교회에 확산하고자 교회에 친숙한 ‘기도회’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2022년 한 해 동안 각 교회의 형편에 따라 주일예배나 수요예배를 이용해 ‘그린 엑소더스 기도회’를 릴레이로 전개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첫 주자로 나서 오늘 신년예배를 ‘그린 엑소더스 기도회’로 드리게 된 것입니다. 제가 어제 기환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오늘이 신년 주일이어서 그런지 아직 홍보가 덜 되어서 그런지, 오늘 ‘그린 엑소더스 기도회’를 드리는 교회는 우리 교회하나 뿐입니다. 부디 연말까지 많은 한국교회가 ‘그린 엑소더스 릴레이 기도회’에 동참하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대 최우선 선교과제=기후위기 비상행동

오늘 우리 교회가 ‘그린 엑소더스 기도회’의 첫 주자로 나서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는 우리 교회가 2020년대 한국교회의 최우선 선교과제를 ‘기후위기 비상행동’으로 정한 것과 관련됩니다. 작년 성탄절에 발간된 교회 회보 <쉴만한 물가> 송년호 권두언을 읽으신 분은 잘 아시겠지만, 아직 못 읽으신 분을 위해 여기서 다시 소개합니다.

우리 교회는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당회 산하에 ‘중장기발전위원회’를 두고 우리 교회의 미래상에 대해 논의해 왔습니다. 당면한 여러 문제가 지적되었고, 다양한 해결책도 제시되었습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교회의 미래상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와중에 모두가 동의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교회는 당분간 생태·환경선교에 집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합의에 이르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의 길을 따르는 신앙공동체’인 서울제일교회는 지금까지의 ‘예배’공동체, ‘고백’공동체에서 ‘실천’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

2.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선교과제 중 모두가 동의하는 것을 선택해서 교회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3. 기후변화 시대인 2020년대 교회의 최우선적 최우선 선교과제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다.

4. 그러니 당분간 생태·환경선교에 교회 역량을 집중해 공동실천하며, 여기서 파생되는 구체적인 요구와 과제를 해결하면서 우리 교회의 공동체성을 발전시켜 나간다.

더구나 2023년은 우리 교회가 창립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입니다. 재작년부터 어떤 기념사업을 할까 고민하던 당회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1. 서제빌딩 101호 가게터를 ‘수익사업’이 아니라 (생태·환경) ‘선교사업’에 사용한다.

2. 교회창립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진영의 생태·환경 전문가를 양성한다.

3. 이 일의 추진을 위해 필요한 기금을 마련한다.

이런 배경에서 작년 11월 중순에 ‘생태·환경 업무를 전담할 사회선교사’를 청빙한다는 공고를 냈고, 적임자가 없어 12월 중순에 다시 공고를 냈던 것입니다.

왜 기후위기 비상행동인가?

여러분 오늘 주보함에서 <2022년 말씀 책갈피>를 받으셨지요? 어제 송구영신예배에 오신 분들은 그때 받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뒷면에 있는 “2022년에 000님께 드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제가 교우 한 분 한 분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성을 다해서 고른 것입니다. 그러니 혹시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그것만큼은 아니지만, 앞면에 있는 제목도 신중하게 정합니다. 과거 제목은 ‘謹賀新年’(2017년), ‘예수길벗’(2018년), ‘정의·평화·생명’ (2019년), 그리고 ‘예수살기’(2020년)였습니다. 작년에는 송구영신예배를 온라인 하례회로 대신했기에 말씀 책갈피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다시 만들면서 ‘기후행동’으로 정했습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다 같이 실천하자는 뜻입니다.

왜 기후행동에 나서야 합니까?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인류가 파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듯이 작년 8월 9일에 ‘기후변화에 관한정부간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는 6차 보고서 중 제1실무그룹 보고서가 발표됐습니다. 그리고 IPCC는 이 보고서를 제54차 총회에서 승인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기후변화가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고, 현재대로라면 불과 10여 년 후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서 극지방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극한의 폭염·가뭄·홍수·화재·한파를 더 자주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우리는 지금 기후 위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지금이 앞으로 다가올 그 어떤 날보다 더 안정적인 시기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과학자들이 기후 위기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한 1.5℃까지 이제 겨우 0.4℃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지구 평균 기온 1.5℃ 상승’이라는 시한폭탄이, 2018년에 발표된 IPCC ‘특별보고서’의 예측보다 작년에 발표된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무려 10년이나 앞당겨졌습니다. 기후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더욱 강해지고, 더 명백하고, 훨씬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폭염, 홍수, 가뭄과 같은 기후재앙은 그 빈도와 강도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들이 말하는 ‘거대한 가속’(great acceleration)의 현실입니다. 이 가속을 늦추거나 멈추지 않으면 지구 생태계와 인류는 곧 파멸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그 해결책이 바로 ‘담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입니다. 인류는 수년이나 수십 년 내에 반드시 ‘담대한 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바로 이 ‘담대한 전환’을 이뤄내기 위한 한 방편입니다.

그린 엑소더스

기환연은 ‘기후위기 비상행동’을 ‘그린 엑소더스’라는 그릇에 담아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이집트를 탈출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갔던 히브리인들처럼 기후 위기 시대에 한국교회가 (1) 회색에서 녹색으로 (2) 탐욕에서 은총으로 (3) 절망에서 희망으로 나아가는 ‘생태적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셋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즉 회색과 탐욕과 절망이 한쪽에 그리고 녹색과 은총과 희망이 다른 한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회색’에서 ‘녹색’으로의 출애굽이 필요합니다. 콘크리트로 대표되는 ‘회색’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상징입니다. 또한, 회색은 성장과 번영 뒤에 감춰져 있는 탐욕과 죽음을 색깔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성장과 번영 그리고 풍요와 편리를 좇아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기본 요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경제가 성장하고 과거와 비교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온갖 편리한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예전보다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부자 나라 국민보다 가난한 나라 국민의 행복지수가 더 높은 것에서도 확인됩니다. 분명 성장했고, 풍요로워졌지만, 빈부격차는 점점 벌어집니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졌습니다. 소외감도 덩달아 커졌습니다. 분명 온갖 편리한 물건들을 많이 소유하게 되었지만, 계속 쏟아져나오는 편리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 더 많이 일해야만 합니다.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이 해소되기는커녕 마실수록 갈증을 더 느낍니다. 욕구가 탐욕이 되면 그리됩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지치고, 우리 마음도 점점 회색으로 어두워져 갑니다.

‘회색’에 반대되는 ‘녹색’은 자연의 색깔입니다. 인간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색깔이고, 온갖 피로를 풀어주는 색깔입니다. 회색이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쓰레기’로 요약되는 산업화의 색깔이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의 색깔이라면, 녹색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색깔입니다. 창조세계의 색깔이고 하나님의 색깔입니다. 또한, 인간중심주의, 황금만능주의, 물질중심주의, 소비주의, 경제성장주의 등등에 반대되는 색깔입니다. 그린 엑소더스는 바로 이런 ‘주의’, ‘ism’에서 탈출하자는 것입니다. 왜? 그런 ‘주의’가 지금의 기후 위기를 결과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그런 ‘주의’들의 추구를 멈추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엔 파멸뿐입니다.

생태주의자들은 지금 우리 현실이 마치 냄비 안에 든 개구리 같다고 설명합니다.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냄비 안에 든 물의 온도가 상승하면 자기 몸의 온도를 높여 견디어냅니다. 하지만 물의 온도가 계속 상승해 물이 끓게 되면, 결국 몸이 익어 죽고 맙니다. 따라서 설마 설마 하면서 그냥 관성대로 살 것이 아니라, 빨리 냄비에서 튀어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집트 포로 생활의 본질적 차원은 그들이 견디는 법을 익혔을 때 시작되었다.” 유대교 신비주의 전통에 속한 하시딤 랍비 하녹(Chanoch)이 한 말입니다. 불의한 현실에 저항할 힘을 잃었을 때, 부당한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게 될 때가 진정한 절망의 시점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이 이집트나 바벨론에서 포로의 삶을 살았다면, 오늘날 우리는 인간중심주의, 황금만능주의, 물질중심주의, 소비주의, 경제성장주의 아래에서 포로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러한 경제적·물질적 포로의 삶을 그저 받아들일 때, 변화를 향한 희망을 놓아 버릴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절망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린 엑소더스가 말하는 ‘절망에서 희망으로’는 바로 이것을 의미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희망하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저항하라는 것입니다.

남은 자를 통한 구원

오늘 시간이 없어서 구약의 본문 말씀인 예레미야서를 자세히 다룰 수 없습니다. 다만 원래 주어진 본문은 31장 7절로 14절인데, 그중 7절과 8절만 골랐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이유는 7절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남은 자의 구원’을 청하는 간구로 들립니다. 본문의 맥락에서는 그런 뜻인 게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증언 제목을 ‘남의 자의 구원’이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넘어서 예레미야서 전체를 보면 예언자 예레미야는 ‘남의 자의 구원’이 아니라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의 자의 구원’은 “우리만이라도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뜻이라면, ‘남은 자를 통한 구원’은 “우리를 통해 전체 이스라엘을, 아니 인류 전체를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남은 자’ 개념은 예레미야와 이사야 등 여러 예언서에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 뿌리는 ‘열왕기상’에 등장하는 엘리야 예언자 이야기입니다. 잘 아시듯이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 산에서 바알의 사제 450명을 단칼에 처치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왕비 이세벨이 반드시 앙갚음을 하겠다는 전갈을 보내자 두려워서 도망을 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엘리야 예언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에 칠천 명을 남겨 놓을 터인데, 그들은 모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도 아니하고,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사람이다”(왕상 19:18).

그렇습니다. ‘남은 자’는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명”을 가리킵니다. 그 칠천 명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지만 하나님은 그 소수를 통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해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에 힘을 얻어서 엘리야는 다시 바알에 저항합니다.

바알이 무엇입니까? 가나안의 신 바알은 다산의 신이요 풍요의 상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도 성장과 번영, 풍요와 편리를 추구했습니다. 그 와중에서 불의와 부패 그리고 빈부격차가 만연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풍조는 그랬어도 거기에 휩쓸리지 않은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알에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사람, 성장과 번영과 풍요와 편리에 무릎 꿇지 않고 입 맞추지 않은 소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왕국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이 기후 위기 시대에 녹색교회는 전국적으로 고작 백 개도 안 됩니다. 수만 개의 한국교회 중에 말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백여 개의 녹색교회가 있음에 희망합니다. 그 교회가 마중물이 되어 그린 엑소더스를 실천해 가면 마침내 세상은 회색에서 녹색으로 바뀔 것입니다. 과거 암흑과 같은 군부독재 시대에 우리 교회를 비롯한 사명 의식과 역사의식을 가진 소수의 교회가 거기에 무릎 꿇지 않고 저항하자 끝내 민주화가 성취되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는 촛불이 횃불이 되고 마침내 들불로 번져 세상을 바꾸는 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 기후 위기 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 구원의 도구로 택하신 것에 감사합시다. 우리가 시작했으니 다른 교회가 뒤따를 것입니다. 우리가 바뀌면 마침내 세상이 바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우리 모두 회색에서 녹색으로, 탐욕에서 은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출애굽하십시다. 그 길에 앞서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