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

29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30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31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고전 7:29-31)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표’가 제시한 것입니다. ‘성서일과표’는 올해 주현절 둘째 주일부터 다섯째 주일까지의 서신서 본문을 매 주일 ‘고린도전서’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둘째 주일은 6장에서, 셋째 주일은 7장에서, 그리고 넷째 주일과 다섯째 주일은 각각 8장과 9장에서 본문이 제시됩니다.

오늘 본문은 7장 29-31인데, 본문이 있는 7장의 1절은 “여러분이 적어 보낸 문제를 두고 말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말은 바울이 ‘지금부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편지로 질문한 것에 관해 답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은 7장 전체에 걸쳐서 ‘결혼’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 이런저런 충고를 합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약간은 뜬금없게 들리는 말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본문 말씀입니다.

그 내용은 ‘이러저러한 사람은 마치 그렇지 않은 사람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왜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살라고 할까요? 왜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살고, 기쁜 사람을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살라고 할까요?

그 이유는 “때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질 것이다” 라는 말 속에 있습니다. 즉, ‘종말’과 ‘재림’이 그 답입니다. 종말과 재림에 대해서는 그간 제가 여러 차례 말씀드렸습니다. 종말은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세상 악’의 종말을 뜻하고, 그래서 종말은 ‘악의 대청소’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재림’은 단순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이 시작한 세상 악의 대청소는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중단될 수 없고, 언젠가 그가 다시 오셔서 완성할 것이다’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재림의 초점은 ‘다시 오심’에 있지 않고, ‘청소 완료’에 있습니다. 바울은 ‘세상 악에 대한 대청소의 완료’가 얼마 남지 않았고, 그것이 끝나면 현재의 세상 형체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달리 말하면 현재의 삶의 방식은 천지개벽할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세상에 대해서는 “마치 아닌 것 같은 태도로 살라”는 것입니다. 즉 종말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는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말 지연에 따른 부작용

그런데 문제는 바울을 비롯한 초대 크리스천들이 기대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세상 악의 대청소 완료가 자꾸 지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분적으로 ‘이미’ 우리 가운데 시작된 ‘하나님 나라’가 ‘아직’도 완성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이미’와 ‘아직’ 사이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났는데, 가장 큰 부작용은 ‘악의 힘이 점점 커져서 악이 세상을 거의 모두 지배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악의 종말이 세상의 종말이나 인류의 종말과 같아지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동안 세상 악이 확장되고 보편화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악이 세상을 거의 다 지배하게 되었다’는 말에 이의가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지난 2천 년간 역사는 진보했고, 민주주의는 발전했으며, 인류는 더 잘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류가 코로나19로 1년이 넘게 몸살을 앓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류의 종말은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입니다. 학자들은 코로나19의 궁극적인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듭니다. 지구의 온도상승으로 인해 그동안 빙하 속에만 존재하던 특정 바이러스가 세상 밖으로 나왔고, 인류의 활동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그 바이러스와 접촉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세계적 감염병으로 번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코로나19를 극복한다고 해도 제2, 제3의 코로나19가 계속해서 등장하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감염병은 앞으로 닥칠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작부터 지구 온도상승으로 인한 급격한 기후 변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가뭄과 홍수의 증가, 농업생산의 감소, 해안 저지대의 침수, 대규모 화재, 기후 난민과 분쟁 발생, 신종 감염병의 증가, 생물 멸종의 위기 등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은 “(종말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현대 학자들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만들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제 겨우 30년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기후 변화의 위기에 대해 우리는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아무 생각 없는 소비생활이 지금의 기후위기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활의 편리를 위해 마구 사용한 플라스틱이 돌고 돌아서 지금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는 선과 악이 분명하게 구별되었습니다. 소수의 지배자나 기득권자가 악에 속한다면, 그 외 사람들은 선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는 모두 악에 속합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사회는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쓰레기’라는 도식 위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하나라도 멈추면 자본주의사회는 무너집니다. 달리는 자전거의 페달을 멈추면 쓰러지듯이 말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도식에 직·간접적으로 기대어 먹고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에서 그동안 세상의 악이 확장되고 보편화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이제 악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문제입니다. 과거에는 악한 소수를 청소하면 세상은 깨끗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모두 악한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비로소 코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고를 오늘 우리 시대에 맞게 변형하여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궁극적인 가치를 두지 말라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 ‘~ 하는 사람은 ~ 하지 않은 사람처럼 살라’고 다섯 차례나 권고합니다. 제가 이 권고를 본떠 오늘 증언 제목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새롭게 해석하여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 번째 해석과 적용은 ‘무엇에든지 궁극적인 가치를 두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허상이므로 거기에 가치를 두지 말라는 불교의 가르침과도 비슷합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 삶은 그와 반대로 살고 있습니다. 곧 사라질 것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변할 것들이 마치 영원할 것처럼, 영원히 변치 않은 가치를 지닌 것처럼 착각하고서 그걸 영원히 소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는 말을 ‘그 무엇에도 궁극적인 가치를 두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해서 우리 삶에 적용하면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그 무엇에도 궁극적인 가치를 두지 말라’는 말은 ‘그 무엇도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하라’가 말입니다. 절대화는 ‘그것밖에 없다’는 것이고, 상대화는 ‘그것 없이도 산다’는 태도입니다. ‘그것 없으면 절대로 못산다’는 삶의 태도는 결국 ‘집착’이 되고, 나아가 ‘우상 숭배’가 됩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본주의사회는 ‘대량생산—대량유통—대량소비—대량쓰레기’로 작동하고 유지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소비를 요구합니다. 따라서 매스컴은 직·간접적인 광고를 통해 ‘그것 없으면 절대로 못산다’고 우리를 유혹해 소비와 소유에 궁극적인 가치를 두게 만듭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는 바로 이런 절제 없는 소비와 소유에서 비롯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는 바울의 권고는 절제 없는 소비와 소유의 삶의 방식을 넘어서라는, 초월하라는 말로 새겨들어야 할 것입니다. 소비와 소유가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고 초월하는 것에 궁극적인 행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왜? 절제를 잃은 소비와 소유는 만족 없이 끊임없는 탐욕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없다면 어떻게 될까?

첫 번째 해석과 적용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두 번째 해석과 적용은 ‘~이 없는 것처럼 살라’는 말을 ‘~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라는 물음으로 바꾸어보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 우리가 가진 것 중에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버리기가 아까워서 그냥 소유하고 있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뭘 사들입니다. 꼭 필요할 것 같아서 사지만, 처음엔 잘 사용하다가도 오래지 않아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참 많습니까? 그러니 뭘 살 때 자신에게 꼭 물으시기 바랍니다. “이게 없으면 어떻게 되지?” 하고 말입니다. 이제껏 그것 없이도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것 없어도 못살 까닭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분명히 그것을 대체할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뭔가를 사기 전에는 꼭 두 번 세 번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지름신’이 강림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외치십시오. 나아가 모든 물건은 결국 쓰레기 후보임을 명심하십시오.

나아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집안을 정리해서 1년간 한 번도 안 쓴 물건은 내 것이 아니라고 여기시고, ‘아나바다 바자’나 ‘재활용 가게’를 통해 그것을 요긴하게 쓸 다른 주인을 찾아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소비가 줄면 생산-유통-소비-쓰레기의 고리가 끊어져 당연히 경제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극복하고 초월해야 합니다. 조금 못 사는 것이 아주 못사는 것, 즉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 성장과 풍요와 편리에 대한 욕망을 초월하십시오. 그래야 우리 후손도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자유가 있지만 없는 것처럼 살라

마지막으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는 바울의 말에는 ‘자유가 있지만 없는 것처럼 살라’는 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에게 최고의 가치는 단연 ‘자유’입니다. 현대사상의 핵심은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행복추구권’으로 대표되는 이 권리는 한 마디로 ‘저마다 살고 싶은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시대의 흐름이고 시대정신이므로 누구도 막거나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외부의 권위로도 자유라는 도도한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고 보니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는 걸 막을 수단이 없어졌습니다. 저는 종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과거처럼 종교가 외부의 권위에 기대서 그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더는 율법이나 교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종교가 개인이나 공동체 내부에서부터 양심의 목소리, 성령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울의 언어로 번역하면 ‘자유가 있지만 없는 것처럼 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를 오늘 기후위기와 연결해 이야기하자면 ‘난 소비할 자유가 있지만 마치 그것이 없는 것처럼 살겠다’라는 말로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내가 노력해서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소비하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인류를 위해, 특히 후손을 위해 그 자유가 없는 것처럼 사는 태도가 우리에게 꼭 필요합니다.

녹색교회에서 녹색그리스도인으로

우리 교회는 몇 년 전에 녹색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제는 교회뿐 아니라 교우 각자가 녹색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우리가 모두 지금 당장 ‘기후위기 비상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인류의 종말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저는 올해 우리 교회의 최우선 선교과제를 ‘언제 어디서나 녹색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으로 삼고자 생각합니다. 이를 실천하는 데 있어서, 오늘 주신 “그렇지 않은 것처럼 살라”는 바울의 권고에 대한 새 해석과 적용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매우 비상한 시국에 놓여있는 이때, 부디 아는 것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아는 것을 일상에서 삶으로 살아내어 우리 모두 ‘언제 어디서나 녹색 그리스도인이 되는 한 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