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주는 중심을 본다?

4사무엘이 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니, 그 성읍의 장로들이 떨면서 나와 맞으며 물었다.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5사무엘이 대답하였다. “그렇소. 좋은 일이오. 나는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러 왔소. 여러분은 몸을 성결하게 한 뒤에, 나와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갑시다.” 그런 다음에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만은, 자기가 직접 성결하게 한 뒤에 제사에 초청하였다. 6그들이 왔을 때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 ‘주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나와 섰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그러나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셨다. “너는 그의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는 내가 세운 사람이 아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8다음으로 이새가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9이번에는 이새가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 아들도 주님께서 뽑으신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10이런 식으로 이새가 자기 아들 일곱을 모두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새에게 “주님께서는 이 아들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뽑지 않으셨소” 하고 말하였다. 11사무엘이 이새에게 “아들들이 다 온 겁니까?” 하고 물으니, 이새가 대답하였다. “막내가 남아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양 떼를 치러 나가고 없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말하였다. “어서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시오. 그가 이곳에 오기 전에는 제물을 바치지 않겠소.” 12그래서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막내아들을 데려왔다. 그는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13사무엘이 기름이 담긴 뿔병을 들고, 그의 형들이 둘러선 가운데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그날부터 계속 다윗을 감동시켰다. 사무엘은 거기에서 떠나, 라마로 돌아갔다. (삼상 16:3-12)

영혼의 씨름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이 오래전에 설교집을 출간하면서, 그 제목을 “영혼의 씨름”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풋내기 목사였던 저는 그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혼의 씨름”, 설교를 이렇게 기막히게 요약한 말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제 스승이신 안병무 선생님은 설교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시간 관계상 여기서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고, 제가 한없이 존경하고 위대한 설교가로 생각하는 선생님이 설교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하셨으니, 제자인 저 역시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설교를 굉장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준비합니다. “영혼의 씨름”이란 말처럼 치열하게 씨름합니다. 보통은 주일에 다음 주일 본문을 읽고 묵상하기 시작해서 일주일 내내 본문과 씨름하고, 토요일에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설교 쓰는 일에만 집중합니다. 제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설교가 총체적으로 또는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지만, 사람의 변화를 시작시킬 수는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저입니다. 저는 80년대 초에 선생님의 설교를 듣고 시각(視角)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인생의 목적과 소명에 대해서 등등, 그때까지 교회에서 배웠던, 그래서 내가 알고 있고, 갖고 있던 입장에 대해서 선생님의 설교를 듣고 질문하기 시작했고, 시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오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제가 변화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설교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지만, 사람의 변화를 시작시킬 수는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설교하기 난감한 본문

넋두리가 좀 길어졌는데, 지난 주일에 오늘의 본문 말씀을 읽고 막막했습니다. 오늘의 요절이라고 할 수 있는 7절 말씀 때문입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처럼 그렇게 판단하지는 않는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 이 말씀에서 “사람이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한 경우”는 사무엘이 “준수한 겉모습과 큰 키만을 보고”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시려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중심을 보고 판단한 경우는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을 보자 “바로 이 사람이다. 어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주님이 판단한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하나 막막했던 첫째 이유는 조금 전에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본문 12절은 “그는/다윗은 눈이 아름답고 외모도 준수한 홍안의 소년이었다”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뿐 아니라 막내아들 다윗도 ‘겉모습이/외모가’ 준수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는 7절 말씀은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겉모습은 물론이고 그 중심도 본다”라는 뜻일까요? 이렇게 되면 결국 하나님도 사람의 겉모습을/외모를 본다는 것이고, 이는 ‘외모지상주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아니, 누구는 겉모습이 준수하게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그렇게 태어나게 하셨으면서 준수한 외모를 선호하신다니, 이런 억울한 경우가 어디 있으며, 이런 불공평한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따르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막막했던 둘째 이유는 사람이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한 경우는 궁극적으로 사울을 가리키고, 주님이 중심을 보고 판단한 경우는 다윗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셨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베들레헴까지 몰래 가서 사울의 대안으로 주님이 택한 다윗에게 기름 붓는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1베냐민 지파에 기스라고 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었다. … 2그에게는 사울이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그보다 더 잘생긴 사람이 없었고, 키도 보통 사람들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삼상 9:1-2)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람이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한 경우는 이새의 큰아들 엘리압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사울을 가리키고, 주님이 중심을 보고 판단한 경우는 다윗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리스도교는, 아니 그리스도교의 뿌리에 해당하는 유대교 때부터 이스라엘의 첫 왕 사울은 나쁜 왕—하나님의 눈 밖에 난 왕이고, 둘째 왕 다윗은 훌륭하고 위대하고 좋은 왕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경전인 성경 자체가 그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아니 세계를 구원할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까지 증언합니다. 다만 예수님은 “다윗 스스로가 그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막 12:37)라고 말해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임을 부정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다윗이 위대한 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스승 안병무 선생님을 통해서 배운 새로운 시각에 따르면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은 사울보다 더 나쁜 왕입니다. 아니 더 나쁜 왕인 정도가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의 뿌리라 할 수 있는 ‘야훼 유일 신앙’(Mono-Yahwism=‘오직 야훼만’의 신앙)을 무너뜨린 장본인이요 원흉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했다는 오늘의 요절—“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라는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식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더구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서 친일적 태도를 넘어서 굴종적인, 아니 치욕적인 외교를 펼쳐서 온 국민이 분노해 궐기하고 있는 이 중차대한 때에, 이런 본문과 씨름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어찌합니까? 자승자박이라고, 제가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의 구약 본문으로 설교하기로 약속했으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교의 규범은 ‘역사적 예수’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계시(啓示)’만 있지 않고, 인간이 자기 말을 하나님의 계시로 위장하여 집어넣은 ‘가짜 계시’도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성경에는 ‘하나님 신앙’과 ‘힘 숭배’가 섞여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에는 상호 모순된 주장들이 종종 등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무조건 ‘아멘’하며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참 계시와 거짓 계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참 계시는 받아들이고 거짓 계시는 무시해야 합니다.

문제는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일 것입니다. 과연 그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일관되게 그 기준은 ‘역사적 예수’라고 말해왔습니다. 왜? 맨 먼저 우리는 ‘성경인’(Biblian, 비블리안)이 아니고, ‘그리스도인’(Christian, 크리스챤)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Bible)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Christ)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입장도 있고 저런 입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각 종파는, 심지어는 이단까지도 성경 말씀을 멋대로 취사선택해서 자기를 옹호합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근거로 촛불집회에 나가고, 또 어떤 그리스도인은 같은 성경을 근거로 태극기집회에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근거로 참 계시와 거짓 계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근거로 삼아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계시이며 형상이라고 선포하기 때문입니다(골 1:15). 하지만 성경 속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가 아닙니다. ‘역사적 예수’도 있고, ‘묵시적 그리스도’도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그리스도의 규범과 기준은 ‘역사적 예수’라고 말합니다. 왜?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셨기”(요 3:16)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교가 받은 하나님의 선물은 묵시적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육신한 ‘역사적 예수’입니다. 따라서 성육신이 묵시론보다 늘 우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명한 신약 성서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이렇게 말합니다.0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시가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예수 안에 계시가 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성경의 규범과 기준은 성경의 그리스도라면, 성경의 그리스도의 규범과 기준은 ‘역사적 예수’이다.

성경의 맥(脈)

그런데 문제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 학자마다 다르게 말해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에는 세부적으로는 달라도 크게는 비슷하게 ‘역사적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성경 연구방법론과 인문과학적 방법론이 많이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안병무 선생님은 ‘성경의 맥’ 속에서 역사적 예수가 누구인지를 밝혔습니다.

누가 뭐래도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대교의 뿌리는 ‘야훼 유일 신앙’(Mono-Yahwism=‘오직 야훼만’의 신앙)이고, 이 신앙은 ‘출애굽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야훼 신만이 우리의 하나님이다”라는 주장은 “다른 어떤 신도 야훼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출애굽 당시에 누가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파라오)가 스스로 하나님이라며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 바로가 인간 백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힘을 독점한 바로가 힘없는 백성 위에 군림해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출발했던 ‘힘 숭배’의 한 상징입니다. 출애굽은 그런 힘 숭배에 대한 거부입니다. ‘힘’이라는 가짜 하나님을 거부하고, 힘없는 약자—히브리를 편드는 야훼만을 진짜 신/참 하나님으로 신앙하겠다는 문명의 정상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노예를 편든 신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어떻습니까? 그리스도교는 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믿고 고백하는 독특한 종교입니다. 그런데 신은 그냥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는 예수가 대도시 예루살렘에서 왕족이나 귀족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고, 변방 중의 변방 갈릴리 나사렛에서 농사지을 땅이 없어 잡일이나 하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보면 압니다. 구약 출애굽의 하나님이나 신약 성육신한 하나님은 다 약자들의 하나님입니다. 힘없는 사람들을 편드는 하나님입니다. 따라서 약자들을 편드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 신앙은 강자들을 편드는 세상의 힘 숭배와 대립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히브리가 ‘야훼 유일 신앙’으로 뭉쳐서 ‘12지파 평등공동체’를 이루고 살던 200년간의 ‘사사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이 ‘왕정시대’로 넘어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사시대 이스라엘의 특징은 주변 나라와는 달리 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처럼 인간이 왕이 되면 그가 백성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힘 숭배’에 영향받은 어리석은 백성들은 왕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사울을 왕으로 세웁니다. 하지만 사울은 곧 하나님의 눈 밖에 납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헤렘’(진멸, 盡滅) 명령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투에서 군인은 물론이고 민간인이나 가축까지도 모조리 죽여야 한다는 ‘헤렘의 명령’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명령 같지만,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고대 전투의 목적은 전리품 획득에 있었고, 전리품 획득은 곧바로 힘의 집중 또는 독점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새로운 바로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울은 ‘헤렘 명령 위반’으로 하나님에게 버려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땠습니까? 그는 전리품만을 독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의 도성 예루살렘에 안치하며 하나님마저도 독점했습니다. 실로 그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바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 예배자’가 아니었고 ‘힘의 숭배자’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겉모습이 아닌 중심을 보는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 선택된 사람이라는 오늘 본문을 어떻게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다윗 추종자의 기록에 바탕하고 있고, 힘 숭배에 오염된 인간의 거짓 계시라고 확신합니다.

로마의 평화 대 그리스도의 평화 그리고 십자가

그렇다고 본문 전체가 거짓 계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 본다”는 말씀은 참 계시일 수 있지만, 전자를 사울에게 그리고 후자를 다윗에게 적용한 것은 거짓 계시임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 주는 중심을 본다”는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중심’이라고 번역한 히브리어는 ‘레바브’로 ‘마음’ 또는 ‘심장’을 뜻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은 중심을 ‘heart’로 번역합니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판단하지만, 나 주는 중심을/heart를 본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떠오른 것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누가 뭐래도 ‘기독교의 심장(heart)’입니다. 기독교의 본질(本質)이요, 진수(眞髓)요, 핵심(核心)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22유대 사람은 기적을 요구하고, 그리스 사람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유대 사람에게는 거리낌이고, 이방 사람에게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24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에게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고전 1:22-24)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유대 사람과 그리스 사람은 겉모습만을 따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거리낌이나 어리석은 일’로 판단하지만, 중심을 보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는 말 아닙니까? 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입니까? 그것은 ‘폭력의 악순환’을 끊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문화가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힘이 최고라는 믿음’은 끝없는 힘의 경쟁을 결과합니다. 내가 남을 정복하지 않으면, 내가 남에게 정복당합니다. 그래서 평화가 없습니다. 힘의 절대적인 차이나 임시적인 균형이 잠시 평화를 유지하게 할지 모르지만, 힘이 역전되거나 힘의 균형이 깨지면 평화는 곧 전쟁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힘을 신앙해 온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폭력의 역사’였습니다. ‘로마의 평화’가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이에 비해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평화’를 대안으로 제시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십자가로 폭력의 악순환을 끊는 것입니다. 힘의 추구가 아니라 힘의 포기, 낮아짐, 비움, 나눔과 섬김을 추구합니다. 이것을 통해 “정복하지 않으면 정복당한다”는 인류의 오랜 신념을 깨뜨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화는 임시적이지 않고 영구적이며, 인류의 문명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건설하는 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道), 십자가 순례길을 묵상하며 따라가는 사순절입니다. 과연 우리는 십자가의 도와 길이 ‘기독교의 심장’이라고 믿습니까? 그래서 그 길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걷습니까? 아니면 예수님만 그 길을 걸으라고 하고,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아갑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묵상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