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마음, 새로운 창조

1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2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1-2)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갈 6:15)

1. 교우 여러분 반갑습니다. 서울제일교회는 역사적으로나 상징적으로 매우 중요한 교회입니다. 제가 학생 시절부터 존경하던 뜻깊은 교회에서 교회개혁주일 말씀을 전하게 되어서 기쁨과 거룩한 부담을 함께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선 서울제일교회를 우리 땅에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귀한 교회 공동체를 일구어가시는 목회자님들과 교우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배 모양의 서울제일교회 로고를 보고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칼스루에에서 11차 총회를 개최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로고에도 배 모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이코메네라고 부르는 온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십자가 돛을 달고 풍파를 헤쳐가는 모습입니다. 서울제일교회에서 이 로고를 80년대에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1990년에 세계교회의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JPIC: Justice, Peace, and Integrity of Creation) 대회가 열릴 때 서울제일교회 담임목사님이신 박형규 목사님께서 한국측 리더십으로 참여하셨던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면서 두 로고가 연결이 되었습니다.

제가 올해부터 정원진 목사님과 함께 기독교환경운동연대 공동대표로 일하게 되었는데요, 정목사님의 녹색교회 강연과 발제를 통해서 서울제일교회의 생태정의를 위한 여러 선구적 노력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계교회와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한국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에 대해서 말할 기회가 있으면, 20세기 전반부의 삼일운동 그리고 후반부의 민주화와 인권 운동의 마중물이 되었던 한국교회 이야기를 하고는 합니다. 서울제일교회야말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1970-80년대 십자가 행진에 선구적으로 참여하신 교회이고, 이제 21세기에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전 지구촌의 과제인 생명과 평화, 특히 기후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시는 공동체이시기 때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실 앞에서 다음 세대 양성이 큰 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청년 세대들을 다시 교회의 기둥이 되도록 인도하는 흐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격변하는 우리 시대의 표징을 기성 세대들이 먼저 읽어야 합니다. 지금 청년들은 서울과 수도권만이 아니라 시골과 농촌지역까지 다문화·세계화가 진행된 우리 땅에서 주체적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모 세대의 청춘 시절과는 달리 이제 기독교 청년 리더십은 세계시민이자 지구시민의 정체성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도 김요한 전도사님을 생태환경 사회선교사로 선발하시고 이번 독일 칼스루에 총회에 보내주신 서울제일교회에게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서울제일교회는 ‘청년 낚는 어부’ 역할에서도 좋은 모범을 세워주셨습니다. 어젯밤에 이태원 할로윈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마음껏 축제를 즐기고픈 청춘들이 이태원에 갔다가 가슴 아픈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청년들이 마음껏 축제를 열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다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서론이 길어졌는데요, 누군가 저에게 서울제일교회를 한 마디로 표현해보라고 하면 ‘온도조절기’ 같은 교회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의 표현입니다. 킹 목사님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라’라는 제목으로 오늘 본문 말씀에 포함된 로마서 12장 2절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이 설교에서 복음의 힘을 여지없지 보여주었던 초대교회 교인들은 수적으로 소수였지만, 질적으로 거인들이었다고 말합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혁명적인 사랑의 힘으로 로마제국 문화에 배어있던 이기주의와 잔인성에 저항했습니다. 결국, 아기들을 죽이는 영아살해와 검투사 경기 같은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로마제국의 관습을 중단하게 만드는 정의로운 사회적 변혁을 이루어내었고, 로마제국 자체를 정복하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 교회는 점차 시대의 풍조와 타협하는 무기력한 교회가 되었음을 킹 목사님은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불확실한 소리를 내는 연약하고 비효과적인 나팔”만 불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운동의 고전적 텍스트가 된 다른 글에서 킹 목사님은 오늘의 교회와 이천 년 전 초기 교회를 비교합니다. 지금의 교회는 세상의 온도를 수동적으로 반영만 하는 ‘온도계’ 같지만, 초기 교회는 세상의 온도를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는 ‘온도조절기’ 같았다는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 서울제일교회는 우리 땅에 하나님이 두신 ‘온도조절기’ 같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 놀라운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늘 동행하시고 계속 그 일을 힘차게 완성해 나아가시기를 기도하게 됩니다(빌 1:6).

2. 팬데믹 기간에 유행하게 된 용어로 표현하자면, 교회개혁주일은 교회를 ‘그레이트 리셋’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이 극으로 치닫게 되었을 때, 진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용기를 지닌 교회개혁자들은 복음의 본질을 재발견하였습니다. 당시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았던 교회개혁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서로’라는 원칙을 지렛대로 해서 당시 침몰하는 교회의 정신에 대활력을 불어넣게 되었습니다. 로마 베드로 성당의 신축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시작한 면죄부의 남용, 그리고 수입금을 중간에 가로채는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 등 교회의 타락에 깊은 충격을 받고 고민하던 신학자 마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 교회의 문에 그 유명한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였습니다. 10월 마지막 주일은 세계 개혁교회 전통의 교회들이 이 위대한 사건을 기리며 ‘교회를 교회되게’ 하려는 정신과 결단을 새롭게 다지는 날입니다.

이 사건은 교회개혁만이 아니라, 독일 민족을 로마 교황청의 지배로부터 구출하는 민족사적 사건도 되었습니다. 이번 칼스루에 총회에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 제11차 총회 로고의 네 가지 구성요소들인 원, 길, 십자가, 비둘기에 대하여 훌륭한 강연을 하였습니다. 평신도 신학자다운 원숙한 모습으로 강연하는 정치인의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보통 사람이 읽을 수 없는 외국어인 라틴어 성서만 있던 시대에, 마틴 루터와 그의 신앙 동지들은 독일 민족을 위하여 모국어인 독일어로 성서번역을 하였습니다. 이번 독일 대통령의 신학 강연을 들으면서 종교개혁이 5세기 전 독일 사회에서 이룩한 놀라운 변혁의 현대적 유산을 맛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사적 차원에서 놓고 보면 교회개혁은 본래 뜻하지 않았던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본래 교회의 개혁을 추구했던 운동이 결국 교회의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카톨릭과 개신교는 16세기 교회개혁 이후 수백 년 간 서로를 경원시해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카톨릭과 개신교는 수백 년에 걸친 상호비방의 역사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신앙의 뿌리를 가진 교회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카톨릭도 1960년대에 제2바티칸 공의회라는 엄청난 교회개혁을 단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로 인해서 로마 교황청과 개신교회 특히 루터교세계연맹은 2017년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동안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새로운 대화의 여정을 시작하기로 결의하는 공동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갈등에서 사귐으로’가 그 제목입니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에서는 이 문서를 한글로 번역하였습니다.

인류의 화해와 일치의 본이 되어야 하는 교회가 지난 세월 불가피하게 분열되었을 뿐만 아니라 파괴적인 결과도 가져왔던 역사적 현실을 겸허하게 깨닫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의식의 진보입니다. 개신교와 카톨릭은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해달라는 예수의 기도를 함께 기억하게 되었습니다(요 17:21). 아직 교리적 차이도 많고 갈 길도 멀지만, 적어도 세계교회 차원에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와 바티칸이 함께 참회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일하는 친교와 사귐의 순례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진지한 노력은 교회가 한번 개혁에 만족하고 과거의 영광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관료적 집단으로 경직되면 안 된다는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오늘의 시대적 표징을 분별하며 우리에게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하나님 안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부단히 자신을 개혁해 나아가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특히 인류의 공동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도 교회는 교회 일치와 연합의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리적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또 과거의 갈등과 반목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상호 용서와 치유,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는 일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 사도적 교회’ 곧 공교회의 필수항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교회개혁주일과 연관된 세계교회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우리 자리로 돌아와서 개혁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결국 교회개혁 정신을 면면이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교회공동체를 구성하는 우리 신앙인 각자의 자기개혁과 결단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계속되는 자기개혁이 선행되어야 계속되는 교회개혁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사회의 변화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정작 자기를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부족한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간디는 “우리 스스로 세상에서 원하는 변화가 되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상 물질주의, 소비주의, 개인주의, (패거리 문화), 탄소중독의 노예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이 전쟁에 기여하는 방산산업을 통해서라도 물질적으로 잘 살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을 개혁하지 않는 한,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원전을 사용해서라도 계속 풍요로운 경제생활을 누려야겠다는 의식을 반성하지 않는 한, 비인간적인 정신의 노예 상황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전철과 기차역에서 이미 길들여진 에스컬레이터로부터 자유롭기도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들, 노약자들, 무거운 트렁크를 든 여행자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도 무심코 타게 만드는 에스컬레이터를 늘 가동하면서, 바로 옆 계단에는 이 계단 몇 개를 직접 걸어 올라가면 수명이 얼마 연장된다는 설명을 덧붙여 놓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큰 모순입니까. 마치 우리 사회가 방향 감각을 상실하고 ‘어두움에 대한 사랑’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탐욕과 이기심과 어리석음이 상식처럼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우리 신앙인들부터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의 자기 개혁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구의 파국적 상황을 막기 위한 조처를 반드시 취해야만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은 이런 중차대하고 결정적인 시기에 살아가면서, 우리 각자가 하루 24시간을 중요하지도 급하지도 않은 일로 다 써버린다면, 그 누가 중요하고 급한 문제에 관하여 기도하고 대화하는 시간, 공부하고 실천하는 시간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관성적인 마음과 몸의 습관대로 그냥 살아간다면, 우리의 집단적 운명을 바꾸어 낼수 있는 힘의 기반을 형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부터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의 풍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 변화될 때,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두 번째 말씀이 담긴 갈라디아서를 ‘자유의 대헌장’이라고도 부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를 받고 시대의 풍조에 저항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삶은 자유인의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래전에 쓰여진 김남주 시인의 “자유”라는 시는 지금도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만인을 위해 내가 노력할 때 나는 자유/땀 흘려 일하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피와 땀을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제 자신을 속이고서.” 이제 우리는 이 시의 ‘만인’이라는 표현에 ‘만물’ 곧 우주적 자연을 함께 포함시켜서 읽어야 하는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4. 지금 기후위기 문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직면한 가장 큰 안보 문제’(독일 외무장관 아날리나 베어복)입니다. 그런데 기후위기 문제를 극복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 토대가 되는 평화, 생명경제, 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총체적인 사회 시스템 전반을 함께 혁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경 학살’인 전쟁과 군사연습을 지속하면서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가 요청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집단지혜가 필요합니다. 무한한 경제성장을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들과 공생하는 지속가능한 생명경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만인의 참여를 보장하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견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중차대한 도전은 우리 한국 사회의 과제이자 전 지구촌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변화에 못 미치는 결과로 끝마치는 답답한 국제 회의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우에서 개최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 26)의 결과를 보고서 세계교회협의회는 실망과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교회와 에큐메니칼 공동체들이 추종자만이 아니라 변화의 지도자들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또한 지구촌의 모든 국가, 사회, 교회와 공동체에게 메타노이아를 촉구했습니다. 메타노이아는 근원적인 방향 전환 곧 회개를 뜻하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파국으로 인도한 물질주의적 가치관과 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혁신을 통해서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일구어가자는 호소입니다. 무한한 경제성장이라는 바벨탑의 신화로부터 출애굽하자는 호소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이 만들어진 것은 참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 로드맵에 의하면 2021년부터 2030년까지가 1차 목표 기간입니다. 1차 목표 기간의 상반기가 끝나는 2025년에 세계교회는 325년 최초의 교회 공의회로 모였던 니케아 공의회를 기리는 1700주년 기념대회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적인 교회의 모임에서는 각 나라에서 교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기후정의와 평화를 위해 변화를 만드는 실천적 이야기들이 많이 공유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즘 세계적으로 한류가 유행인데요, 한국교회가 ‘한국교회 2050 탄소중립 로드맵’을 반드시 실천해서, 세계교회, 세계 시민사회, 지구촌 전체에 귀한 영감을 줄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게 됩니다. 서울제일교회를 위시해서 선구적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녹색교회들, 민중교회들, 마을목회와 지역 에큐메니즘을 실천하시는 교회들이 이러한 ‘K-교회’의 꿈을 꿀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셔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느낍니다.

5. 서울제일교회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신앙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근원적인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나사렛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제자 공동체인 교회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로마 제국이 천하를 통치하던 시절, 식민지 땅 팔레스타인의 목수 집안의 아들로, 그것도 말구유에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억압받는 유대민족을 위해 하나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걸어가신 길, 곧 예수의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초대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행 9:2). 바울은 초대교회 교인들을 탄압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새로운 창조의 주역이 됩니다.

예수의 길은 사랑의 길입니다.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으로 유명합니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이 땅 위에서 혁명적 사랑, 정의로운 사랑, 거룩한 사랑을 보여주시며 살아가셨던 예수는 겨울 같은 로마 제국 속에서 스스로 봄 길이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힘’(Strength to Love)이라는 제목의 마틴 루터 킹 목사님 설교집이 있습니다. 이 설교집은 사랑하는 힘의 본보기가 되어주신 부모님께 헌정된 책입니다. 이 헌정사에는 기독교 신앙의 영원한 원칙, 곧 사랑 안에서 변함없는 헌신의 삶을 평생 살아가셨던 부모님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이 사회적으로 표현되면 정의가 됩니다. 사랑의 삶을 실천하며 사셨던 부모님이 일구신 가정과 교회에서 정의의 사도인 킹 목사님이 탄생했습니다.

오늘날 사랑은 잃어버린 예술입니다. 정의와 평화와 창조질서의 보전을 향한 노력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않고 시대의 물살을 거스르는 저항의 운동이기도 한데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길이야말로 이 시대의 풍조에 저항하며 대안적인 새로운 창조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사실 교회개혁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정신이기도 한데요, 21세기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개혁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사랑의 계명, 그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연까지 포함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후손까지 포함해서 나 자신을 참되게 사랑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제일교회 성도님들께서 예수의 길, 사랑의 길을 기쁨으로 힘차게 걸어가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