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1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까닭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를 참모습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그에게 이런 소망을 두는 사람은 누구나, 그가 깨끗하신 것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합니다. (요일 3:1-3)

성도추모주일 추모대상자들

우리 교회는 2019년부터 매년 대림절 둘째 주일을 ‘성도추모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날 우리는 ① 지난 1년간 소천한 우리 교회 성도들, ② 역대 담임목사님과 사모님들 가운데 소천한 분들, ③ 교우들이 신청한 가족분들을 함께 추모합니다. 올해 추모대상자는 총 27분입니다.

올해 추모대상자 가운데, 지난 1년간 하나님의 품에 안긴 분들은 모두 5분입니다. 날짜순으로 소개하면 최풍식 장로님, 오국환 집사님, 송일섭 권사님, 박희봉 권사님 그리고 박종걸 권사님입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은 이 다섯 분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해외나 지방에 사셨거나, 병환으로 코로나 전후로 교회에 잘 출석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침 올해 2023년은 우리 교회가 창립한 지 70년이 되는 특별한 해였습니다. 그런데 이 5분은 우리 교회 70년사에서 특별한 발자국을 남기신 분들입니다. 그래서 올해 성도추모주일 증언은 이분들 한 분 한 분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자 합니다.

서울제일교회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 송일섭

가장 먼저 살펴볼 분은 송일섭 권사님입니다. 송일섭 권사님은 올해 5월 8일 어버이날 아침에 만 87세를 일기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송 권사님의 부고가 안타까웠던 것은 바로 그 다음 주일이 <교회창립 70주년 기념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우리 교회는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중 송 권사님께 공로패를 수여하고 작은 선물을 전달하기로 한 것도 있었습니다. 4월 7일에 제가 권사님을 찾아뵙고 그 소식을 전해드렸을 때, 오랜만에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드리고 그리운 교우들을 만나게 될 것을 뛸 듯이 기뻐하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는데, 끝내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하셨습니다.

송일섭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산 역사요 증인이셨습니다. 송 권사님의 할머니와 어머니는 모두 절에 다니셨는데, 6·25 이후 집에 우환이 끊이지 않자, 할머니가 “예수 믿어라. 예수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셔서, 그 당부 때문에 어느 날 성경을 들고 가는 낯선 할아버지를 따라서 교회에 갔고, 거기서 이기병 목사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이기병 목사님이 서울제일교회를 개척하자 지난 70년 동안 그 교회를 내 교회, 내 집으로 알고, 교회 식구들을 친정집 식구라고 여기면서 한결같이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 저는 이북에서 피난 와서 서울제일교회 하나만 알고 살았으니, 이 교회로 끝나게 해주세요”라고 평생 기도하셨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니까 서울제일교회는 권사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권사님은 당신 가정과 가족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않게 우리 교회도 사랑하셨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일인데, 권사님은 교회 재정을 위해서 명동에 미장원을 개업하셨다고 합니다. 전호철 장로님은 추모예배 때 하셨던 추모사에서 “예수 사랑, 교회 사랑, 교인 사랑, 목회자 사랑 등에서 감히 본받거나 따라가기에 벅찬 분이었다”고 회고하셨습니다. 실로 출석, 봉사, 헌금, 기도, 심방 등 전 분야에 타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권사님에게 큰 목소리로 혼나보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권사님은 교회가 곧 당신인 양 주인의식이 강했고, 다른 교우들도 그런 주인의식 갖기를 바라셨습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내 집과 똑같다.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교회를 내 집이라 생각하고, (교회가) 잘못되면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이라도 바쳐서라도 교회를 살려야지 이런 마음이 든다, 내 마음은 그렇다. 그래서 나는 어떤 때 안 그런 사람들을 보면 너무너무 속이 상하곤 한다.

40년 전에 전두환 정권이 교회 파괴 공작을 벌였을 때, 창립 멤버였던 송 권사님과 남편인 오재원 장로님이 박 목사님의 편에 섰던 일은 우리 교회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공작에 넘어가 주요 초창기 멤버가 박 목사님의 반대편에 섰고, 그들과의 오랜 친분 때문에 초창기 멤버 대부분이 저들과 함께했을 때도, 권사님은 끝까지 박 목사님 편에 섰습니다. 덕분에 박 목사님은 큰 힘을 얻었고 그 엄혹한 시간을 견디실 수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송 권사님은 박 목사님을 편들었다기보다는 당신 교회를 지켰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안사의 교회 파괴 공작 때문에 갈등이 심했을 때 권사님은 “너희가 어떻게 네가 다니던 교회를 그렇게 할 수 있냐? 나는 못 그래. 그렇게 하고서도 마음이 괜찮아? 그러지 말라”면서 눈물로 호소하셨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까지도 갈라진 옛 교우를 만나면 이제라도 돌이키라고 설득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안사의 교회 파괴 공작 40년을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도록” 중보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의 중보기도가 지금도 하나님 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고 계시는 권사님 덕분에 꼭 응답받을 것으로 믿습니다. 송 권사님 추모예배 때, 마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말하면서 제가 이렇게 증언했었습니다.

저는 우리 서울제일교회에서 송일섭 권사님이 바로 이 여인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를 말할 때, 우리 교회를 이야기할 때, 송 권사님은 언제나 그것들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분입니다. 뛰어난 지식과 경륜으로 교회를 지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엄청난 헌금을 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 서울제일교회가 창립된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사랑으로 본인의 자리를 지키셨고, 교우들을 살피고 돌보셨고,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송 권사님이 계셨기에 우리 교회는 호된 시련 가운데도 든든히 버틸 수 있었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담임한 목사님마다 소신을 다해 일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 여인의 이름을 우리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서울제일교회는 ‘송일섭’이라는 이름을 교회 역사가 다하는 날까지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삶으로 증언한 박희봉 권사

송 권사님을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낸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지난 6월 5일, 박희봉 권사님도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박 권사님은 1925년생으로 우리 교회의 최고령자셨습니다. 코로나 직전까지도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 주일 전철을 갈아타시면서 교회에 출석하시던 강건한 분이셨습니다.

박 권사님은 우리 교회가 중부경찰서 앞에서 노상 예배를 드릴 때, 막내아들이 학생운동으로 투옥되자, 그때까지 다니시던 소망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교회를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아들로 인해 각성한 아내 임기란 권사님이 《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실 때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우셨고, 우리 교회에서도 성실하고 모범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박 권사님을 좀 아시는 분이면, 누구나 권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긴 시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 혈혈단신 고향 함경북도 명천을 떠나 서울로 오신 일,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였는데 남한으로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부터 어떻게 어떻게 의식주를 해결한 일, 중학교 졸업증명서를 안 가지고 와서 응시 자격도 없었는데, 시험에 합격하면 중학교를 졸업했다는 증거가 될 테니까 시험을 보게 해 달라고 졸라서 결국 해양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당당히 합격하여 해양대학교를 다니게 된 일, 학교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자 해양대학교 재학증명서를 가지고 서울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러 합격하고 졸업 후에는 당시에 최고의 직장이었던 《충주비료》에 취직한 일, 남쪽에 아무 일가친척도 없었는데 임 권사님을 만나 결혼하고 2남 3녀를 낳고 잘 길러서 지금의 대가족을 이루게 된 일 등등. 비록 권사님은 늦게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신앙인이셨습니다. 당신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함께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것에 감사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이 60이 다 될 때까지도 인생은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그저 성실하게 닥치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70이 가까이 되어 기독교에 심취하면서 나의 죄를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고, 지켜 주시고, 이끌어 주시었다는 신념을 얻게 되었습니다. 나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이 없으나, 성실하게 일하면 하나님이 모든 복을 주시고 있다는 것을 나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알게 되기를 빕니다. 이런 뜻에서 내 삶의 경험이 유일한 내 유산인가 합니다. (『박희봉 회고록』 중에서)

그렇습니다. 권사님은 당신 생애를 한 마디로 이렇게 정리하십니다. “돌아보니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다.” 자기 인생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의 최후 승자일 것입니다. 삶에 감와 기쁨이 넘치고 그래서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에 살다 간 천사, 최풍식 장로님

작년 12월 4일에 우리 교회가 성도추모주일을 지키고 있을 때, 멀리 뉴질랜드에서 최풍식 장로님이 만 76세를 앞두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당회는 조문을 위해 저를 뉴질랜드로 보내려고 했는데, 아내 박준옥 전도사님이 극구 사양하셔서 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우들이 마음을 모아 조의금이라도 보내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사양하셨습니다.

애석하게도 제가 장례 예배를 인도하지 못해서 장로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습니다. 다만 60년사를 뒤져보니 1978년 제직 명단에는 없고, 1983년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79년에 부인 박준옥 전도사님이 우리 교회에 부임하면서 같이 등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가 전두환 정권의 교회 파괴 공작으로 인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의 장학금을 《의건장학금》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장로님의 아들 최의건 성도가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재학 중에 해군에 입대했다가 1999년에 군대 폭력으로 사망한 것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의건’을 잃은 후 장로님은 지평을 넓혀 세상의 모든 자녀를 자기 자녀처럼 여기시며 사셨습니다. 아들 의건이의 못다 이룬 배움의 꿈이 가난으로 배움이 어려운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들 의건이 장례식 조의금은 전액 의건이가 다니던 서울대 천문학과에 장학금으로 기부하셨고, 국가에서 받은 보상금 전액은 교회에 의건장학금 기금으로 헌금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자와 매년 별도로 보내오시는 돈을 합하여 장학금을 지급하게 하였고, 《월드비젼》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극빈 어린이를 후원하셨습니다.

후에 최 장로님은 당신 아들을 죽인 가해자의 선처를 탄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실로 ‘원수 사랑’을 말이 아닌 삶으로 살아낸 분이셨습니다. 장경우/이승숙 권사의 아들 장재웅 교우가 주일학교 때 “나중에 크면 최 장로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할 정도로 한없이 인자하셨던 분, 아들 의건이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우리 아버지”라고 했던 분, 김효식 장로님이 “마치 살아있는 예수님을 보는 것 같았다”고 하신 분이 바로 최풍식 장로님이셨습니다.

짧지만 굵게 헌신한 박종걸 권사

최근인 지난 11월 27일에 박종걸 권사님이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박 권사님이 우리 교회에 등록한 것은 2016년 12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서제빌딩을 건축하는 과정에서 우리 교회와 인연을 맺었고, 건축의 여러 난제를 당신의 경험과 전문 지식으로 해결하고 결국 서제빌딩을 완공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등록 후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교인들과 잘 어울리셨고, 강한 추진력으로 매년 베드로회와 마리아회의 나들이를 주관하셔서 어르신들에게 많은 추억을 선물하셨습니다. 교회 홈페이지의 사진 자료실을 보면 지금은 돌아가셨거나 병환으로 출석하지 못하시는 교회 어르신들이 즐거워하면서 활짝 웃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마다 박 권사님이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박형규 목사님을 기리기 위해 수주기념실을 꾸미게 된 것도 권사님이 박 목사님 흉상 제작을 힘 있게 추진하신 덕분입니다. 권사님을 회고해 보면, “짧지만 굵게 헌신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 때문에 흉상 제막식을 하지 못해서 매우 아쉽지만, 서울제일교회가 있고, 수주기념실이 있고, 거기에 박형규 목사님 흉상이 전시되어 있는 한 박 권사님도 함께 기억될 것입니다.

사랑꾼 오국환 집사

끝으로 작년 성탄절을 앞두고 젊은 나이에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난 오국환 집사를 소개합니다. 고인은 김중자 장로님의 차남이고, 오소연 집사의 오빠입니다. 우리 교회가 노상 예배를 드리던 때는 오소연 집사와 함께 동네 교회를 다니다가, 나중에 예배당으로 복귀했을 때 우리 교회로 옮겨왔습니다. 직장과 결혼 때문에 주로 울산에서 생활해서 고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교회를 사랑해 끝까지 교적을 옮기지 않았고, 또 서울에 올라올 때면 항상 성가대에 섰습니다. 작년에 울산 빈소에서 드린 추모예배 순서지에 실린 간단한 약력을 소개합니다.

1965년 9월 29일(양)에 서울 휘경동에서 父 오창근 권사와 母 김중자 장로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했다. 1989년 한양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고려합섬에 입사하여 이후 롯데그룹 KP케미컬, LIG 에너지컨설팅 등에서 부장, 소장, 공장장 등 우리나라 석유화학 분야 산업현장에서 역량 있는 엔지니어로 활동했다. 1999년 1월 9일 서도섭 목사의 주례로 최은희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세민을 두었다. 신실한 믿음으로 서울제일교회에서 청년회와 성가대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다. 모든 사람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했으며, 매일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친구 같은 아들이었다. 당뇨합병증으로 투병 치료를 하던 중 2022년 12월 21일(수) 새벽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인해 향년 만 57세의 나이로 하나님이 품에 안겼다.

발자국과 길

제가 예년과 달리 올해는 지난 1년간 돌아가신 성도들에 대해서 한 분 한 분 소개를 했습니다. 잘 모르는 남의 이야기를 왜 하나 싶은 분들도 계실 텐데, 그 이유는 그분들이 남긴 발자국들 때문에 지금의 우리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길과 도로는 다릅니다. 영어 way와 road는 전혀 다릅니다. Road는 토목공사를 통해 만들어진 길이고,way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만들어진 길입니다. 문자 그대로 footway입니다. 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처음에는 길이 아니었던 어떤 땅을 한 사람이 밟으며 걷고, 다음 사람이 또 밟으며 걷고, 이렇게 계속해서 여러 사람이 걷고 또 걸으니까, 결국에는 그 땅이 다져지고 다져져서 지금과 같은 모양의 길이 된 것입니다. 이렇듯 길은 사람들이 수없이 왕래함으로써 생긴 무수한 발자국들에 의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길’(道)은 곧 ‘맥’(脈)입니다. 발자국의 이어짐, 사람들의 이어짐이 길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내 뒤에 누군가가 내 발자국을 포개어 걸을 때, 그리고 그것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때, 비로소 길이란 것이 탄생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수없이 많은 성도가 걷고 또 걸으면서 새긴 발자국들에 의해 세워집니다. 물론 그 발자국 중에 어떤 것은 크고 진하고 긴 것도 있고, 반대로 작고 흐리고 짧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발자국이 모여서 교회의 역사가 되고, 전통이 서고, 색깔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새로운 교인이 그 길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간 성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헌신과 기도와 눈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모두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순종하면서, 선배들의 발자국 위에 우리 발자국을 보태어 나갑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서울제일교회 역사를 이어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서일과가 제시한 성도추모주일 본문 중 하나입니다. 제가 그중 일부를 인용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증언 제목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였습니다. 우리는 (대안) 가족으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인생길을 동행합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면서 각박한 세상에서 서로에게 따뜻한 동행이 되어줍니다. 우리는 이렇듯 인생길 길벗이 되기 위해 지금 서울제일교회에 다닙니다. 가족은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대안 가족인 교회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서 서울제일교회의 역사와 문화와 색깔이 마음에 들어서 한 가족, 길벗, 동행이 되었습니다. 오늘 성도추모주일을 맞아 우리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걷다가 우리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신 성도들의 믿음을 기억하면서, 우리에게 남겨진 믿음의 길을 잘 감당하기를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