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편단심 주님만 섬겨라!

1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이게 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그 우두머리들과 재판관들과 공직자들을 불러내니,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섰다. 2그 때에 여호수아가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14“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조상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섬기던 신들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 섬기십시오. 15주님을 섬기고 싶지 않거든, 조상들이 강 저쪽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아니면 당신들이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들의 신들이든지, 당신들이 어떤 신들을 섬길 것인지를 오늘 선택하십시오. 나와 나의 집안은 주님을 섬길 것입니다.” 16백성들이 대답하였다. “주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 17주 우리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가 여러 민족들 사이를 뚫고 지나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모든 민족을, 이 땅에 사는 아모리 사람까지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수 24:1-2.14-18)

출애굽의 목적?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저는 올해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RCL)가 제시하는 네 가지 본문 중 ‘구약 본문’에 따라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27일 주일부터 총 9주 동안은 출애굽기의 말씀들을 증언했고, 지난 주일과 이번 주일은 여호수아기의 말씀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종살이하던 땅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반해 여호수아기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야기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터전은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출애굽의 목적이 달성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장소의 변화’가 아니라 ‘사람의/인격의 변화’에 있습니다. ‘노예’에서 ‘자유인/하나님 백성’으로의 변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였습니다. 그런 그들을 긍휼히 여겨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켰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지만 팬이 바뀐다고 글씨체가 바뀌지 않듯이, 삶의 터전이 바뀐다고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노예가 자유인이 되지 않습니다.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저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여호수아의 유언입니다.

일편단심(一片丹心)

그 유언을 한마디로 요약한 것이 본문 14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 같은 구절을 공동번역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야훼를 경외하며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시오.” 오늘 증언 제목은 바로 이 공동번역에서 가져왔습니다. ‘일편단심’이란 표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편단심’ 하면 옛날 학창 시절에 배운 ｢하여가｣와 ｢단심가｣가 생각납니다. ｢하여가(何如歌)｣는 나중에 조선의 제3대 국왕이 된 태종 이방원이 지은 시조입니다. 원래 고려의 장수였던 아버지 태조 이성계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멸망케 하고 조선을 건국하려고 했을 때, 고려의 유명한 학자이자 충신이었던 정몽주가 그 일에 가담할 뜻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방원은 ｢하여가｣를 지어 정몽주의 마음을 떠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 년까지 누리리라

참 멋들어진 시입니다.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시대의 대세에 편승해 편하고 쉽게 우리와 더불어 잘살아 보자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정몽주는 이방원의 이 ｢하여가｣에 대해서 유명한 ｢단심가｣(丹心歌)로 답합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일백 번을 죽어도, 그래서 몸이 썩고 그 뼈마저 한 줌 티끌이 되어 넋까지 사라진다 해도, 고려를 향한 자기의 충성심은 일편단심이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한 조각 붉은 마음”이란 뜻의 일편단심(一片丹心)은 이렇듯 지조를 지키는 것, 즉 원칙과 신념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지켜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변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주님을 경외하고 일편단심으로 그를 섬기는 것”이라고 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주님만 섬기라고 하는가?

그런데 왜 여호수아는 일편단심으로 주님만 섬기라고 할까요? 그러고 보면 출애굽 후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나라의 헌법으로 받은 십계명의 제1계명도 같은 내용입니다. “너희는 내 앞에서/나 밖에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한다”(출 20:3, 신 5:7). 이렇듯 야훼 종교는 한결같이 ‘하나님만’을 주장해 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다른 신은 다 가짜고 야훼 신만 참 신이기 때문에? 맞기는 하지만 ‘정답’은 아닙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은 바로 앞에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희의 하나님이다”(출 20:2, 신 5:6).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다른 신이 아니라, 바로 야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야훼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의 고통에 수수방관했던 다른 신은 섬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야훼가 네 편이 되어 주셨으니, 이제 너도 야훼 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일까요? 오늘 본문 16절 이하는 그렇게 해석할 여지를 줍니다. 거기 보면 백성들이 “주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는 일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말합니다.

17주 우리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을 이집트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큰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또 우리가 이리로 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고, 우리가 여러 민족들 사이를 뚫고 지나오는 동안에 줄곧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18그리고 주님께서는 이 모든 민족을, 이 땅에 사는 아모리 사람까지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17-18절)

이렇게만 보면 신앙은 주고받는 것—give and take처럼 보입니다. 보은(報恩)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일편단심으로 주님만 섬겨야 하는 이유는 그것 이상입니다. 왜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에 응답하셨지만, 다른 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수수방관했을까요?

고대 세계에서 모든 신은 ‘당파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파성은 늘 사회적 강자를 향했습니다. 예를 들어, 애굽의 왕 바로(Pharaoh)는 하늘의 신 호루스(Horus)의 화신(化身)이며, 태양신 라(Ra)의 아들이었습니다. 즉, 그는 인간이 아니고 신이었습니다. 신인 그는 당시 사회의 최강자였고, 당연히 자기의 지배 체제를 옹호했습니다. 이처럼 고대 세계의 모든 신은 사회적 강자를 편들었는데, 인류 종교사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하나님 ‘야훼’입니다. 야훼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모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이집트에서 고생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을 받으며 괴로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이제 내려가서 그들을 이집트인들의 손아귀에서 빼내어 …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답고 넓은 … 땅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출 3:7-8)

여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하시면서, 저들에게 컴패션(com-passion)을 느낍니다. 즉 저들의 아픔이 당신의 아픔인 양 함께 아파합니다. 그래서 마침내는 저들을 해방합니다. 이렇듯 출애굽의 하나님은 사회적인 약자를 편드는 신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이런 뿌리를 가진 ‘유대교’로부터 나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하나님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왜?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을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가난한 인간이 되셨다”가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허름한 마구간에서, 아무것도 아닌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탄절 이야기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일편단심으로 주님만 섬겨야 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 주님이 일편단심으로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그 주님은 사회적 약자만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통해 강자까지도 구원하십니다. 하지만 거꾸로는 불가능합니다.

제국과 하나님 나라

강자를 편드는 신의 나라를 역사는 ‘제국’이라고 불러왔습니다. 모든 제국은 힘(power)을 추구하고 숭배합니다. 예수 시대의 로마제국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저들이 말한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폭력—힘 을 통한 평화였습니다. 자신을 현대의 로마제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도 이와 똑같습니다.

성경은 약자를 편드는 신의 나라를 ‘하나님 나라’라고 불러왔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일부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배려받는 세상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증언하는 하나님의 꿈입니다.

하나님이 이집트 제국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 백성을 해방한 이유는 저들을 통해 당신의 꿈을 세상에 실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매주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씨앗임을 믿습니다. 말씀과 사귐과 봉사를 통해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것을 밖으로 확장해 나가고자 우리의 삶을 헌신합니다”라고 되뇌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는 더욱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역할 모델이 되라는 하나님 명령에 충실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이 그 생생한 증거일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이유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지만, 유추해 보면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일편단심으로 주님만 섬기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과거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강제로 노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은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나서는 형국에 처하게 됩니다. 왜? 가나안에 정착한 그들은 처음엔 ‘약자’였지만, 점점 ‘강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국의 지배를 벗어난 이스라엘은 ‘제국의 유혹’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야훼 하나님이 아니라, 힘 추구와 힘 숭배라는 우상숭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것을 막는 길은 일편단심으로 주님만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주님만 섬기는 일일까요? 레위기 19장에 실려있는 ‘성결법전’은 주님만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을 가르칩니다. 그 대전제는 2절의 “너희의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절 이하는 거룩한 삶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부모 공경, 안식일 준수, 우상숭배 금지, 제물 규정 등 일반적으로 종교적 덕목이라 일컬을 수 있는 내용들이 언급됩니다. 이후 9절부터는 하나님의 백성이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덕목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추수할 때 밭의 한 모퉁이는 남겨두어야 할 뿐만 아니라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나그네 신세인 외국 사람들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도둑질, 사기, 속임수, 거짓 맹세, 이웃에 대한 학대나 착취를 버려야 합니다. 몸이 불편한 이들을 저주하거나 그 앞에 걸려 넘어질 것을 놓아서도 안 됩니다.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웃의 생명을 위험 속에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말을 요약한 것이 18절에 나오는 “너는 너의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여라”입니다. 이웃사랑으로 귀결되지 않는 거룩함은 위선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고통받는 히브리 노예들에게 다가갔고 자신을 열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에게 책임적인 존재가 되었기에 야훼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언젠가 고통받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다가오셨고 자신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의미 있는 책임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체험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에게 내가 받은 은혜,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여호수아는 우리에게 “당신들은 이제 주님을 경외하면서, 그를 성실하고 진실하게 섬기십시오”(14절)라고 말합니다. 신약의 예수님은 “모든 계명 가운데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어느 것입니까?”라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9“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은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여, 너의 하나님이신 주님을 사랑하여라.’ 31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여라.’ 이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막 12:29-31)

그렇습니다! 일편단심 주님만 섬기는 길은 결국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귀결됩니다. 앞에서 출애굽의 목적은 ‘사람의/인격의 변화’라고 했습니다.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하나님 백성’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 신앙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습니까? 그 신앙이 우리를 자유인으로, 하나님 백성으로 살게 합니까?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으로 살게 합니까? 끝으로 사도 바울이 한 말씀을 인용하고 마치겠습니까?

13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갈 5:13-14)

아무쪼록 “일편단심 주님만 섬겨라”는 여호수아의 간곡한 당부를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으로 살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