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목마름의 위기 앞에서

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은 신 광야를 떠나서, 주님의 명령대로 진을 옮겨 가면서 이동하였다.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쳤는데, 거기에는 백성이 마실 물이 없었다. 2백성이 모세에게 마실 물을 달라고 대들었다. 이에 모세가 “당신들은 어찌하여 나에게 대드십니까? 어찌하여 주님을 시험하십니까?” 하고 책망하였다. 3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4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었다. “이 백성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들은 지금이라도 곧 저를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합니다.” 5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6이제 내가 저기 호렙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7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주님께 대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곳의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 또 거기에서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 계시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고 해서, 그 곳의 이름을 맛사라고도 한다. (출 17:1-7)

세계성만찬주일

매년 10월 첫째 주일은 전 세계교회가 함께 지키는 ‘세계성만찬주일’ (World Communion Sunday)입니다. 원래 이 주일은 1936년에 ‘미국장로교’가 지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부터 ‘미국교회협의회’로 확대되었고, 1982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함한 전 세계교회가 함께 지키기로 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듯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안에는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개혁교회 등등 많은 교파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파마다 ‘성사’(聖事) 또는 ‘성례’(聖禮), 즉 sacrament가 다릅니다. 하지만 성찬은 모든 교파의 성례에 포함됩니다. 물론 성찬에 대한 해석은 각각 달라 이름이 Lord’s Supper(주님의 만찬), Holy Communion(거룩한 교제), Eucharist(감사제)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지만 말입니다. ‘세계성만찬주일’은 전 세계교회가 교리와 교파를 초월하여 공통의 성례인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키는 교회력 가운데 가장 에큐메니컬 한 주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회도 예배 중에 성찬식을 거행함으로써 이를 기념하며 연대하고자 합니다.

거듭되는 위기 앞에서

하지만 오늘 증언 본문은 ‘세계성만찬주일’이 아닌 ‘창조절 다섯 번째 주일’ 구약 본문을 택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출애굽기 16장 ‘만나와 메추라기’ 이야기였는데, 오늘은 이어지는 17장 ‘물’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지난번에는 ‘먹을거리’가 문제였고, 오늘은 ‘마실거리’가 문제입니다. 달리 말하면 ‘음식’(飮食) 문제이고, ‘배고픔’과 ‘목마름’ 문제입니다.

본문을 보겠습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먹을거리’가 문제가 되었던 ‘신 광야’를 떠나서 ‘르비딤’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마실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모세에게 대들었습니다.

3그러나 거기에 있는 백성은 몹시 목이 말라서, 모세를 원망하며, 모세가 왜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려왔느냐고,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과 그들이 먹이는 집짐승들을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고 하면서 대들었다. (3절)

어디선가 이 말을 들어본 것 같지 않으십니까? 지난 주일 본문과 매우 유사합니다. 출애굽기 16장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3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 출애굽기 연속 증언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이스라엘 자손이 예속의 땅 이집트를 벗어나 자유의 땅 가나안을 향하는 길목에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 군대의 추격에서 벗어나야 했고, 홍해 바다를 건너야 했습니다. 추격을 벗어났다는 감격도 잠시뿐, 저들은 마실 물이 없어 고생했고, 이집트에서 가지고 나온 음식이 떨어졌을 때 굶주림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위기 앞에 설 때마다 저들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면서 비루한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저들은 작은 어려움조차 크게 느꼈고, 위기가 닥쳐오면 쉽게 지도자들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확인했듯이, 저들은 위기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은 원망하고 대드는 똑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이 묘사한 이스라엘 자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째, 얼마 전에 먹거리가 떨어졌을 때 만나와 메추라기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까마귀 고기를 먹은 것도 아니고 어찌 그리 ‘까맣게’ 잊어버린단 말입니까? 둘째, 제가 오늘 증언 제목을 ‘다시 목마름의 위기 앞에서’라고 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 후에 이미 목마름의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저들이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에 들어섰을 때 ‘마라’에서 겨우 물을 발견했으나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으니, 주님께서 그에게 나무 한 그루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가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물에 던지니, 그 물이 단물로 변하였습니다”(15:25). 그러니까 저들은 이미 목마름의 위기 앞에 섰던 적이 있었고, 주님의 도우심으로 그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번에도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원망하고 대들었던 것입니다. 마치 젖먹이 어린아이 같습니다.

셋째, 본문 1절은 이곳 이름이 ‘르비딤’이었다고 합니다. ‘르비딤’의 뜻은 ‘쉼터’입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원래 ‘오아시스’가 있던 곳입니다. 다만 계절적인 영향으로 샘이 말라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니 잘 찾아보면 마르지 않은 샘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모세는 조금 떨어진 호렙산 바위 밑에서 샘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찾지 않고 원망하고 대들기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쉼터’ 르비딤은 ‘대듬’과 ‘시험함’을 각각 뜻하는 므리바와 맛사라 불리게 됩니다.

우리도 이와 똑같지 않습니까?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온 세월이지만 우리는 가끔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삽니다.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받은 은혜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기억하면 원망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억하면 주님의 부재를 염려하지 않고, 혼자서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만찬을 통해 주님의 희생적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바위를 치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고 원망합니다. 심지어 대들기까지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부르짖고,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b“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이 백성보다 앞서서 가거라. 그리고 나일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6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였다. (5b-6)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수가 터져 나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기자는 그 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입을 꾹 다물고 맙니다. 여기까지 성경을 읽은 사람들은 바위에서 물이 솟아 나와 그 생수를 마시는 사람들의 흡족하고 흥겨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기자는 매정하다 싶은 정도로 단호하게 이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아쉬움을 알았던 것일까요? 러시아 태생의 프랑스 화가 샤갈(Chagall, Marc)은 우리의 바람을 ‘바위를 치다’라는 제목의 그림에 담았습니다.

이 그림 중앙 좌측 상단에는 머리에 뿔이 난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치고 있습니다. 모세의 뒤로는 그가 목동이었음을 상기시키는 양 떼가 배치되어 있고, 그 위에서 천사가 나팔을 불고 있습니다. 화면 하단에는 이미 물을 받은 듯 물동이를 가슴에 안고 감격에 겨운 표정을 짓는 이들과 춤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는 이들이 보이고, 물동이에 물을 긷고 있는 여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지팡이를 든 모세의 표정이 밝지 않습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거침없이 대들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백성들에게 질렸기 때문일까요? 오늘 본문만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물이 솟구쳐 나오는 바위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화면 좌측 최상단을 보면 십계명을 받는 모세가 아주 작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샤갈이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즉 토라야말로 모든 사람을 ‘목마름’에서 해갈 시켜줄 진짜 ‘생수’라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그걸 모르고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안타까워 표정이 어두운 것은 아닐까요?

말씀의 생수

예수님도 수가성 우물가 여인과의 대화에서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요 4: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주는 물’이 무엇입니까? 예언자 아모스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암 8:11)

그렇습니다! 말씀이야말로 참 생수입니다. 아모스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육체적 배고픔과 목마름이 문제가 되는 시대가 아닙니다. 인류는 그만큼 풍요로워졌습니다. 지금의 문제는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입니다. 먹고 또 먹어도 부족하고 허기집니다. 마시고 또 마셔도 목이 마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입니다. 이 문제는 ‘음식’이 아닌 ‘말씀’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말씀의 기근 시대’입니다. 홍수 때 오히려 마실 물이 부족한 것처럼, 말의 홍수 속에서 살면서 우리는 참 말씀을 듣지 못해 방황합니다. 참 말씀은 우리에게 사는데 필요한 ‘정보’(infornmation)를 주는 말이 아닙니다. ‘변화’(transformation)를 일으키는 말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교는 ‘말씀이 육신이 된 사건’에서 출발했습니다. 육신이 된 말씀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성육신(incarnation) 사건을 증언한 요한복음은 6장에서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표징을 보도한 후에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들을 전합니다.

27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35b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48나는 생명의 빵이다. 49너희의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다. 50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 51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나의 살이다. 그것은 세상에 생명을 준다.

55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56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당신도 밥이 되어라!

요한복음에는 ‘최후의 만찬’이 없습니다. 대신 6장에 성만찬 제정사가 나옵니다. 그 이유는 성만찬이 종교예식에 그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처럼 성만찬은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만찬에서 빵과 잔을 받아먹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섭취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살리는 밥, 음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고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먹고 마시는 것은 살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달리 말하면 ‘본’(本)이 아니고 ‘말’(末)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다 보면 종종 살기 위해서 먹고 마시는지 먹고 마시기 위해서 사는지가 헷갈립니다. 즉 본말(本末)이 헷갈리고, 전도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심한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나를 묻고 번민합니다. 왜? 우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 삶, 사람, 사랑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저는 “우리가 사람다운 삶을 살려면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새겨듣습니다. 사랑은 희생을 전제합니다. 희생 없는 사랑은 없습니다. 밥을 먹었으면, 밥이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생명이 죽어서 마련된 음식을 먹었다면, 나도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희생해야 옳지 않습니까? 그게 도리(道理),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 아닙니까?

성만찬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양식으로 먹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나를 희생해 세상을 살리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양식이 될 것을 다짐하는 예식입니다. 세계성만찬주일을 맞아 전 세계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다짐을 하고, 그 다짐대로 산다면 이 세상은 곧 하나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는 시대의 삶을 지금 사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천국에서의 삶을 지금 여기서 살아내는 것이 영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더러 당신처럼 희생하면, 나누고 섬기면. 지금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 천국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성만찬 예식을 통해 우리가 모두 희생과 사랑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