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는 너를 보내어…

1모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2거기에서 주님의 천사가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에 불이 붙는데도, 그 떨기가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3모세는 … 어째서 그 떨기가 불에 타지 않는지를 알아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4모세가 그것을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떨기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모세가 대답하였다. “예,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5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너는 신을 벗어라.” 6하나님이 … 7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8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이 땅으로부터 저 아름답고 넓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 9지금도 이스라엘 자손이 부르짖는 소리가 나에게 들린다. 이집트 사람들이 그들을 학대하는 것도 보인다. 10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게 하겠다.” (출 3:1-10)

세계교회 창조절 둘째 주일, 남신도회 주일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세계교회) 창조절 둘째 주일’과 ‘남신도회주일’을 기념하며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본래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남신도회주일’은 다음 주일인 ‘9월 셋째 주일’입니다. 하지만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세계 기후 행동의 날’ 직전 주일을 ‘기후정의주일’로 지킬 것을 권고함에 따라 다음 주일에 ‘기후정의주일’을 지켜야 해서, 부득이 ‘남신도회주일’을 한 주일 앞당겨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한국기독교장로회’는 1990년대부터 매년 ‘9월 첫째 주일부터 대림절 직전 주일까지의 약 3달’을 ‘창조절’로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이와 달리 매년 ‘9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의 34일’을 ‘창조절’로 지키는 기독교 교파와 교단들이 있습니다. 이 창조절을 우리 교단이 지키는 창조절과 구분하여 ‘세계교회 창조절’이라고 부릅니다.

‘세계교회 창조절’은 1989년에 동방정교회의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가 매년 9월 1일을 ‘창조 세계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한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01년에는 유럽의 주요 기독교 교파와 교단들이 이를 수용했고, 2015년에는 로마가톨릭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를 수용했습니다. 한편, 매년 10월 4일은 로마가톨릭교회 등이 ‘성 프란치스코 축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잘 아시듯이 기독교 전통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창조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본보기’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기독교의 여러 교파와 교단들이 매년 9월 1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창조절’로 지키기 시작했고, 그 숫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듯이 기독교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습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 로마가톨릭과 개신교회의 분열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교회는 창조절을 지키면서 오랜 분열을 넘어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는 물론이고, 성공회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신교회, 심지어 복음주의 교회들까지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실로 명실상부한 에큐메니컬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JPIC—Justice, Peace & Integrity of Creation, 정의, 평화, 창조의 온전성을 기치로 내걸고 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이유는 기후위기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세계교회가 힘을 합쳐 함께 기도하고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세계교회 창조절’을 지키는 배경이요 이유입니다.

건너뛸 수 없는 본문, 출애굽기 3장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 3장’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RCL)가 지난 주일 구약 본문으로 제시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에 외부 강사를 모신 관계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 연속 증언에서 3장은 빼놓을 수 없는 본문이어서 오늘 다루게 되었습니다. 다만 오늘 예배 중에 ‘창조절 성만찬’도 있고, ‘장학금 수여식’도 있어서 증언을 짧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지지난 주일에 출애굽기 1장을 본문으로 “거룩한 불복종”이라는 제목으로 증언했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이집트의 새 왕이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급증하자 두려움을 느껴 대책을 세웁니다. 첫 번째 대책은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더욱더 불어나 실패합니다. 두 번째 대책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아이가 태어날 때, 아들이면 죽이라고 명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산파들의 거룩한 불복종으로 인해 이 역시 실패합니다. 마침내 바로는 “갓 태어난 히브리 남자아이는 모두 강물에 던지고, 여자아이들만 살려 두어라”고 명령합니다(출 1:22).

오늘의 주인공 모세는 바로 이때 태어났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아이를 더는 숨겨서 기를 수가 없게 되자, 아이를 방수 처리한 상자에 담아서 강가에 두었습니다. 마침 강에 온 바로의 딸이 상자에 든 아이를 발견해 양자로 삼고, 아이 어머니를 유모로 고용했습니다. 공주는 이 아이를 “물에서 건져 냈다”고 해서 ‘모세’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세는 바로의 궁전에서 ‘이집트 왕자’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유모 역할을 했던 친어머니를 통해서 그의 내면에는 히브리인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히브리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집트 사람을 때려죽인 것도 그가 히브리인으로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격분에 못 이겨 저지른 그 일이 빌미가 되어 그는 광야로 피신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 머물면서 그는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자로부터 목자로의 전락, 회한과 상실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을 것입니다. 동포인 히브리인들은 여전히 바로의 압제 아래 신음하고 있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인 십보라와의 사이에서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얻었지만, 아내도 아들도 그의 가슴에 박힌 아픔을 씻어내 줄 수 없었습니다. ‘게르솜’은 ‘황무지에 사는 손님’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 속에는 모세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떨기나무 같은 모세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당시 모세는 도망자 신세로 장인의 집에 몸을 의탁하고, 40년째 양을 치는 목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이미 80세가 된 그는 아마도 자신의 삶이 끝나가고, 현재는 의미 없는 일상의 연속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런 그를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어느 날, 모세는 양을 몰고 광야를 지나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습니다. 성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산의 이름을 ‘호렙’(horeb)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불모지’(wasteland)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낼 장소로 ‘버려진 땅’을 선택했고, 마치 버려진 듯한 존재 모세를 선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현현이 하필 ‘떨기나무’에서 있었던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떨기나무는 광야 곳곳에 있습니다. 아무 데나 흔하게 널려 있어 아무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모세는 아무 쓸모도 없는 그 나무가 자신의 모습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장년의 모세, 그는 자기의 무능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장년 남신도들이 느끼는 감정과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뭐 하나 제대로 성취한 것이 없습니다. 때때로 자식은 무시하고 아내는 괄시합니다. 점점 외모도 볼품없어지고, 건강도 자신 없습니다. 돌아보니 인생이 초라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광야에 살던 모세의 자화상이요, 이 시대 장년 남신도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모세는 자기 모습 같은 떨기나무를 발견합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뜨거운 사막 바람에 바짝 마른 떨기나무가 자연 발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떨기나무는 곧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히 불이 붙었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모세는 자세히 보려고 다가갔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본문은 모세가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확인하려는 장면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역사적인 사건’으로 말을 건네는 장면으로 재빨리 바뀝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당신이 하고자 하는 계획의 선포였습니다. 특히 하나님이 당신 의향을 밝히는데 사용한 ‘동사’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또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내고자 한다”(출 3:7-8). 이것은 바로의 압제 정권을 뒤집고, 그 밑에서 신음하고 있는 노예를 구출해 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 표명입니다.

지난 주일에 김학철 목사님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묵음(默音)의 청각기관이 되고, 침묵(沈默)의 발성기관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그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침묵의 아우성’을 듣고, 이를 대신해서 소리쳐 외칩니다. 이렇듯 히브리 노예들의, 사회적 약자들의 귀가 되고 입이 될 뿐만 아니라, 저들을 못살게 구는 자들을 감시하는 눈도 되고, 끝내는 저들을 압제에서 해방하는 손과 발도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이 거룩한 사역을 당신 혼자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 사건에 모세가 참여하도록 촉구하십니다. “이제 나는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나의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게 하겠다”(출 3:10). 모세는 스스로 광야에 널린 쓸모없는 떨기나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태워 없애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였습니다. 다시 역사의 타는 불꽃이 되어 동포 히브리인을 해방할 지도자가 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 남신도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려고 부르십니다. 아니 남신도들뿐 아니라 여신도들도, 나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라고, 별 볼 일 없는 실패한 인생이라고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그런 이들의 삶에 불꽃을 일으키시고 없어지지 않고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십니다. 그 부르심이 들리십니까? 그러면 이제 힘을 내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초청에 아멘으로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