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4주 하나님께서 나를 학자처럼 말할 수 있게 하셔서, 지친 사람을 말로 격려할 수 있게 하신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5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6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함께 법정에 나서 보자.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나를 고발할 자가 있으면 하게 하여라. 9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사 50:4-9a)

종려주일, 고난주일, 제주4.3기념주일

오늘은 지난 6주 동안 지켜온 사순절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오늘부터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한 주간이 시작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간을 일 년 중에서 가장 거룩하게 지킵니다. 그래서 영어로 ‘Holy Week’이라고 합니다.

이 ‘거룩한 주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됩니다. 당시에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해서, 오늘을 ‘종려주일/Palm Sunday’라고 부릅니다. 또한, 오늘을 ‘고난주일/Passion Sunday’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 ‘거룩한 주간’이 체포, 심문, 고문, 그리고 십자가 처형으로 이어지는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오늘은 두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두 가지 사건을 기념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가 없어, 예전/liturgy을 중요시하는 서구교회에서는 예배 전반부는 ‘종려주일’에 초점을 맞추고, 예배 후반부는 ‘고난주일’에 초점을 맞춥니다. 오늘 우리 예배도 그렇게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 오늘은 우리 교단총회가 제정한 ‘제주4.3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제75주년을 맞이하는 ‘제주 4.3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10년 전에 우리 정부가 국가추념일로 ‘4.3희생자추념일’을 지정했고, 기장 교단은 5년 전에 ‘제주4.3기념주일’을 제정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는 한 번도 이를 지키지 못했는데, 올해는 예배 중에 <제주4.3기념영상>을 시청하는 순서를 넣어, 이를 기념하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가 사용하는 ‘성서일과’(Revised Common Lectionary)는 오늘 종려주일 본문과 고난주일 본문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종려주일’ 본문으로는 ‘복음서’ 본문만 제시하고, ‘구약성서’와 ‘서신서’ 본문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고난주일’ 구약성서 본문과 서신서 본문은 가해, 나해, 다해 구별 없이 3년 내내 똑같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작년에 사용한 ‘고난주일’ 구약 본문인 이사야서 50장 4-9a절을 본문으로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당당함

오늘의 구약 본문 말씀인 이사야서 50장 4-9a절은 세 번째 ‘하나님의 종의 노래’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2이사야에는 소위 ‘고난받는 종의 노래’로 잘 알려진 네 개의 본문이 등장합니다. 42장 1~4절, 49장 1~6절, 50장 4~7절 그리고 52장 13절~53장 12절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고난받는 종’의 모습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았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이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예언서에 등장하는 4개의 ‘고난받는 종의 노래’ 가운데 오늘 본문 말씀이 예수님의 일생, 특별히 예수님 생애의 마지막 일주일 모습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당당함’ 때문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떠올릴 때마다 ‘당당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지갑이 두둑한 사람의 당당함이 아닙니다. 밀어주고 보살펴 주는 든든한 ‘빽’(supporter)을 가진 사람의 건방진 당당함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당당함은 남의 평가와 판단에 좌우되지 않는 ‘자립’(自立)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힘 있는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 드는 일이 없고, 당신을 모함하고 모욕하는 무리 앞에서도 마음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에 마음을 빼앗기지도 않고, 비난에 속상해하지도 않으면서 예수님은 당신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은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던지고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열광적인 환영에 도취하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당하고, 총독에게서 모욕받을 때도 예수님은 고요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못 박혀 처형당할 때조차도 의연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로마군 백부장은 “참으로 이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막 15:39)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이 ‘당당함’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저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그 당당함의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무력해 보이는 유력자

우리는 그것을 오늘 읽은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오늘 본문은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의 노래’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특히 6절에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는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겼고, 내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뺨을 맡겼다. 내게 침을 뱉고 나를 모욕하여도 내가 그것을 피하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6절)

이 고난받는 종은 참 ‘무력’해 보입니다. 아니 ‘무력’을 넘어 노예적인 ‘굴종’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에게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만만하게 보이면 짓밟힌다고 배웠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되로 받으면 말로 갚아주라고 가르칩니다. 은혜받은 걸 그렇게 갚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한 대 맞으면 곱절로 갚아주라는 말입니다. 그래야 바보 취급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후손 ‘라멕’ 이야기입니다. 라멕은 자기 아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할 때에 귀를 기울여라. 나에게 상처를 입힌 남자를 내가 죽였다. 나를 상하게 한 젊은 남자를 내가 죽였다.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 (창 4:23-24)

저명한 성경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John Dominic Crossan)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창세기 4장을 분석하면서 “(원)죄를 인간이 폭력을 확대하는 경향”이라고 풀이합니다. 그러니까 ‘폭력’이 ‘대응 폭력’을 낳으면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이 아벨을 죽이기 전에 가인에게 경고했습니다. “죄가 너의 문에 도사리고 앉아서, 너를 지배하려고 한다. 너는 그 죄를 잘 다스려야 한다”(창 4:7). 하지만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폭력과 대응 폭력은 일곱 배, 일흔일곱 배로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렇듯 폭력은 악순환되고, 확대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고난받는 종은 부당한 폭력과 모욕에 대응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감수합니다. 그래서 이 고난받는 종은 참 무력해 보입니다. 만만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력하지 않습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입니다. 저항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그를 모욕하는 이들을 이깁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저항(無抵抗)이 아니라, 비폭력적으로 저항함으로써 폭력을 이기는 것입니다. nonresistance가 아니라 nonviolence resistance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눈을 눈으로, 이를 이로 갚지 말라” 하신 것과 같습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마 5:39-41)

이 말씀은 무저항이 아니라 비폭력 저항을 가르친 말씀입니다. 힘이 없어서, 비겁해서, 두려움 때문에 저항하지 않는다면/못한다면 그것은 ‘비굴’입니다. 무저항은 비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비폭력 저항은 용기입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리려면 참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면의/영혼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그들이 나를 모욕하여도 마음 상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7절)

고난받은 종은 이를 악물고 부당함을 견디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쌓였을 것입니다. 물론 그는 모든 어려움을 견디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힘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이미 젖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가랑비 때문에 화내지 않습니다. 그는 부당한 폭력에 마음 상하지 않습니다. 폭력을 가하는 이들은 그의 몸은 괴롭힐 수는 있지만, 영혼까지 뒤흔들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8)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이긴 사람입니다.

귀가 열린 사람들의 당당함

앞에서 ‘당당하게’ 비폭력적으로 저항할 힘은 하나님의 도우심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본문 5절은 좀 더 자세히 말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셨으므로, 나는 주님께 거역하지도 않았고, 등을 돌리지도 않았다. (5절)

그렇습니다! 진정한 힘은 들을 ‘귀’에서 나옵니다. ‘총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종이란 ‘들을 귀’가 열린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 살면서도 하늘의 소리를 가려들을 줄 아는 사람은 내적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가려들음’의 비결에 대해서 앞 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 하나님께서 … 아침마다 나를 깨우쳐 주신다. 내 귀를 깨우치시어 학자처럼 알아듣게 하신다.

여기서 ‘학자처럼’이라는 말 때문에 주눅 들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학자’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사실은 ‘제자’라고 옮기는 것이 더 낫습니다. ‘배우는 자’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고난받는 종은 자기 몸과 마음을 예민하게 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배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우리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말을 건네오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배우며 사는 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들어보십시오. 오늘의 본문 7~9절은 얼마나 당당한 선언입니까?

7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시니 … 내가 각오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어 냈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까닭은, 8나를 의롭다 하신 분이 가까이에 계시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나와 다투겠는가! … 나를 고소할 자가 누구냐? … 9주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실 것이니, 그 누가 나에게 죄가 있다 하겠느냐?

이 당당함을 본받아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31그렇다면, …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 33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21-39 중에서)

그렇습니다! 바울이 시련과 역경 가운데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음성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 목숨을 바쳐 사랑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당당함의 근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당당함과 뻔뻔함을 구별해야 합니다. ‘당당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 앞에 내세울 만큼 모습이나 태도가 떳떳하다”입니다. 이에 비해 ‘뻔뻔하다’는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염치없이 태연하다”입니다. 당당함이 ‘근거 있는 자신감’이라면, 뻔뻔함은 ‘근거 없는 자만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거 있다고 함은 비록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다”라고 말했지만, 그 이유는 먼저 바울이 하나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섰기에 당연히 하나님과 나는 한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다른 편에 서고도, 하나님은 그런 죄인인 나를 무조건 용서해 주셨다는 것은 근거 없는 자만심이요 뻔뻔함입니다. 몰염치(沒廉恥)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고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섰다고 한다면, 아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온갖 시련과 모욕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서자의 당당함’과 자유

혹시 ‘서자의 당당함’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소설가 이승우 선생이 사용한 말입니다. 그가 말하는 서자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뒤처진 이들,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 내몰린 이들을 일컫습니다. 내세울 만한 변변한 스펙도 없고, 직장도 번듯하지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없는 이들은 괜히 주눅 들어 지내기가 쉽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하여 행복하게 살 권리조차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승우 선생이 말하는 ‘서자의 당당함’이란 적자(嫡子, 정실 자식)의 호의에 의지하여 살려는 마음을 버리고, 남의 인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살아내려고 어깨를 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가치 기준을 따라가느라 허덕이지 않고, 자기 보폭과 리듬에 따라 살아갈 용기를 내는 것을 말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우리 삶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그 잔인한 나치의 수용소에서도 인간적인 품격을 보여준 이들에게 주목했습니다. 그들은 수용소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껴서 모아두었던 빵 조각을 배고픈 이들에게 건네곤 했습니다. 프랭클은 그들을 통해 배운 것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불의한 체제는 사람에게서 모든 것을 다 앗아갈 수 있지만 한 가지만은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처지에서든 자기의 태도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결국, 내 삶을 망칠 수 있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세상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도 당한 만큼만 되돌려주지 말고, 곱절로 되돌려주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인습적인 지혜요, 세상이—인류 문명이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폭력의 확대재생산 아닙니까? 어떻게 이 폭력의 악순환을 멈출 수 있을까요?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무저항이 아니라, 가장 적극적인 저항입니다. 하지만 폭력적 저항의 길이 아니라, 비폭력인 저항의 길입니다. 사랑의 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을 값없이 받았기에 그 사랑을 이웃에게 기꺼이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지는 것처럼 보여도 이기는 법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길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이 십자가의 길을 다시 묵상하시고, 세상이 가르친 죽음의 행렬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가르친 생명의 길을 당당하게,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뒤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