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1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2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 3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과 같구나.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시133:1-3)

 교우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야외로 나와서 함께 예배드리니까 좋으시죠? 따뜻한 가을의 햇살이 내리쬐고, 선선한 바람도 불고, 주변에서 새소리도 들려서 이곳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예배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해서, 또 옆에 있는 교우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깨달음을 주실 때가 많습니다. 오늘 우리가 야외로 나온 만큼 말씀과 더불어 자연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그리고 옆에 있는 교우들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더욱 깊이 귀를 기울이고,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시편 133편의 말씀입니다. 본문 전체가 3절밖에 안 되는 아주 짧은 말씀이지만,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큼 아주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시편 133편은 부제로 ‘다윗의 시,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붙여져 있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모셔 오면서 불화하던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언약궤를 중심으로 다시 하나가 되었고, 그것에 감사하며 더욱 하나가 되도록 권면하는 시다’ 하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개역개정 성서에는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한다’, ‘어울려서 함께 산다’ 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그리고 본문은 ‘그렇게 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고, 즐거운 일이다.’ 하는 증언합니다.

 ‘연합한다’, ‘어울려 산다’하는 것은 ‘조화’를 이루며 산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서로 비슷해지거나 똑같아지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고, 즐겁다’가 아니라 ‘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룰 때 선하고, 아름답고, 즐겁다’ 하는 것이죠. 우리가 그림을 평가할 때 우리는 비슷한 색상이 잘 모여 있을 때보다 다양한 색상이 어우러질 때 잘 그렸다고 말합니다. 미술 이론을 보면 “보색” 또는 “색상대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채도가 정반대인 색을 보색이라고 하는데, 빨강과 초록, 주황과 파랑, 노랑과 보라가 대표적인 보색입니다. 그리고 이 두 색상을 대비시킴으로써 그 색을 본연의 색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는 현상을 색상대비라고 합니다. 재미난 사실은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이기에 서로를 더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고, 완전 다른 색깔들이 서로 절묘하게 어우러질 때 우리는 ‘와! 아름답다’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죠. 어느 색도 자기 본래의 색을 잃지 않았지만, 다른 색과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혼자는 일으킬 수 없는 감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성가대의 찬양을 들었었는데 합창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선율로 찬양을 부르는 것도 아름답지만 서로 다른 음색들이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화성을 경험하게 되고, 감동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잘 부른다고 해서 크게 부르거나 못 부른다고 해서 작게 불러서는 안 됩니다. 높은음만 많이 내거나 낮은음만 많이 불러서도 안 됩니다. 서로 다른 각 파트가 지휘자의 조율에 따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합창이 되고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화’이자 ‘하모니’입니다.

 저마다 개성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 사람인 가는 그가 얼마나 다른 이들과 조화를 이룰 줄 아나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공동체가 얼마나 성숙한가를 알려면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조화롭게 공동체에 머물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와 생각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익힐 때 성숙한 사람, 성숙한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133편 1절은 바로 이렇게 ‘형제자매가 조화를 이루고, 연합하고, 어우러져서 살아갈 때 선하고, 아름답다’ 하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2절과 3절 상반절을 보면 이 아름다움에 대해 두 가지 은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에 흘러내는 것과 같고, 헤르몬산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론의 머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향기 나는 기름의 은유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길게 늘어뜨린 수염을 지닌 제사장 아론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백성을 대표해 하나님 앞에 나서는 제사장의 옷은 가장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거기에 길게 늘어뜨린 수염은 권위와 위엄을 나타냅니다. 거기에 향기 나는 기름이 드리워졌으니 그 수염은 더욱 빛을 발하며 아름답게 보였을 것입니다. 이 은유는 고대 근동의 세계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헤르몬산의 이슬에 대한 은유입니다. 작렬하는 태양 빛 아래서 모든 것이 시들어버렸다가 한밤중에 내리는 이슬로 그 모든 것이 다시 생기를 얻는 장면은 찬란합니다. 더욱이 건조하기 그지없는 사막 지역에서 이슬로 생기를 얻는 생명의 모습은 더없이 찬란합니다. 저 북쪽 헤르몬산에서부터 남쪽 유다의 시온산에 이르기까지 이슬이 내리는 일은 실제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팔레스타인 일대 나라들의 수원지 역할을 하는 헤르몬산은 그 지역에서 가장 우뚝 선 산입니다. 그 가장 높은 산에서 그보다 낮은 산에 이르기까지 온 땅에 내리는 이슬의 은유는, 온 땅이 생기를 얻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표현합니다. 시인은, 형제자매가 어울려 사는 것은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노래합니다.

 시편의 시인은 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요?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형제자매가 어울려 사는 것이 그렇게 아름답고 찬란하다 노래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그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는 없지만, 구약성서의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 한 가지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성서에는 수많은 형제간의 갈등이 중요한 주제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형제였던 카인과 아벨은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으로 끝났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은 한 땅에서 살 수 없어 갈라섰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늘 긴장 관계에 있었고, 야곱의 열두 형제는 동생 요셉을 다른 곳에 팔아버렸습니다. 성서 인물 간의 갈등은 이후 이스라엘의 열 두지 파간의 갈등, 팔레스타인 땅을 중심으로 한 민족 간의 갈등으로 드러납니다. 결국,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평화는 이러한 갈등을 종식하고 하나님을 향해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시인은 형제들의 갈등이 심화된 현실에서 거꾸로 형제자매가 어울려 사는 일의 아름다움을 노래합니다. 어울려 함께 사는 일, 그것은 제도가 묶어 주고 혈연이 이어주고 이해관계가 얽히게 해 주어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아끼며, 결국에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가운데 어울려 사는 것을 말합니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삶, 그뿐만 아니라 서로의 기쁨과 슬픔 이면의 삶의 진실까지 헤아리며 감싸 안는 삶을 말합니다. 기쁨 이면의 어떤 아픔을 헤아리고, 슬픔 이면의 어떤 꿋꿋함까지도 찾아내 더욱 북돋아 주는 삶의 관계, 그것이 함께 어울려 사는 일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형제자매의 모습입니다. 설령 피를 나누지 않았더라도 그와 같이 살 수 있다면 형제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이상, 교회의 꿈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일입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일입니까?

 지금부터 딱 3년 전인 2019년 10월, 우리 교회 역사에 또 하나의 한 획이 될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수의 선한향린교회 식구들이 전입해 두 공동체가 한 식구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 교회를 지켜오던 연로한 권사님들이 한두 분씩 돌아가시고, 또 교회에 나오실 수 없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존속이라는 현실적 위기 앞에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선한향린교회의 전입은 교회의 큰 변화와 활력을 주었고, 그동안 생각만 하고 하지 못했던 많은 일을 행동에 옮기게 되었습니다. 예배와 모임도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곧바로 이어진 최악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능숙하게 대처하고, 잘 극복해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변화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보다 깊이 서로를 알아갈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했던 안타까움도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의 다름이 있지만, 이를 조율할 시간 부족했습니다. 친밀감을 높이고 보다 깊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에 때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운해하며, 오해했던 부분들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고, 언젠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의 말씀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하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3년 전, 세계성만찬주일이었던 10월 13일 정원진 목사님은 성찬의 의미를 설명하시면서 새롭게 전입해 온 교우들과 기존 교우들이 하나로 어우러질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은 ‘기억함’을 통해서입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한 형제자매로 연결되고, 그것을 함께 기억하는 것이 바로 교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영어로 ‘기억’은 ‘remember’인데, ‘다시’를 의미하는 ‘re’와 ‘식구’라는 ‘member’가 만나 ‘다시 한 식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기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억’ 즉 ‘공동의 기억’이 다시 한 식구로 묶어 주는 끈이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다른 교회의 기억이 있고, 교회의 역사와 생활방식, 문화의 다름도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공동체’라는 공동의 기억이 있기에 하나로 어우러질 수 있다고 증언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며, 마음이 몹시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믿음의 시작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모습이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습니다. 정원진 목사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공동의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는 서울제일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확장해 가는 ‘공동의 기억’을 쌓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3년간 우리는 함께 그리스도 신앙을 바탕으로 많은 ‘공동의 기억’ 쌓았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친교를 나누고, 선교를 실천한 ‘공동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대단한 사업을 전개한 것은 아니지만 매 주일 함께 성가대 찬양을 준비하면서, 옥상정원을 꾸미고, 공동식사를 준비하고, 생일축하도 하면서, 또 성경 공부와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많은 ‘공동의 기억’을 쌓았습니다. 가장 크고 의미 있는 사실은 우리가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고 있고, 건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우들을 위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 더욱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서로를 가깝게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코로나19가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친교와 사귐을 더욱 강화해야 할 때 입니다. 오늘 야외예배는 우리가 친교와 사귐을 나누기 아주 좋은 장소이자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조화롭게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에서, 맑고 청명한 가을의 풍성함을 느끼면서 더욱 깊이 사귀고, 가까워지고, 즐겁게 어우러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단 한 명이라도 좋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교우와 마음을 나누고 더욱 가까워지도록 꼭 노력하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시편 본문의 말씀처럼 ‘형제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그 아름답고, 선하고, 즐거운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

우리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함께 어울려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영생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 말씀, 이 믿음으로 또 한주간을 힘차게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