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내게 한 것이다
31“인자가 모든 천사와 더불어 영광에 둘러싸여서 올 때에, 그는 자기의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32그는 모든 민족을 그의 앞에 불러모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갈라서, 33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그 때에 임금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할 것이다. 37그 때에 의인들은 그에게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38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39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40임금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할 것이다.”(마 25:31-40)
오늘 부족한 사람을 아름다운 교회에 초대해주시고 말씀을 전할 기회를 주신 서울제일교회 모든 교우들에게 좋으신 주님의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서울제일교회는 그 존재만으로 한국교회와 사회에 큰 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교회에 대해 질문할 때, 여기 답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곳이 서울제일교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아니라고 손사래 쳐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목사님의 전화를 받고 부담감 가운데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과연 내가 서도 되는 자리인가? 그렇지만 저는 부족하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믿고 말씀을 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만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설교, 좋은 설교는 서울제일교회 훌륭한 목사님들께 들으시고 저는 그저 저의 삶과 사역을 여러분과 나누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은혜의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먼저 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감리교 사회선교단체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줄여서 ‘고난함께’라고 합니다. 또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라고 13개 사회선교 단체가 모인 모임의 상임대표를 맡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남에서 담임목회도 하고 있습니다. 고난함께는 1989년 세워져서 비전향장기수라는 존재를 세상에 알렸고, 양심수라고 불렸던 이들의 인권 옹호를 위해 30년 넘게 사역해 왔습니다. 또 최근에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 쫓겨나는 세입자 등과 매주 함께 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사회선교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침에는 ‘오늘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누구를 만나게 될까?’ 기대감에 차서 집을 나서지만, 저녁 늦게 ‘내가 왜 이 일을 해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후회하는 마음으로 돌아갈 때가 많습니다. 차라리 이 세상을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가족들 고생시키는 것 같아 우울해질 때도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던 후배를 편의점에서 만났을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 멀게만 느껴졌던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 세입자들, 유가족들 만날 때면 없던 힘도 생겨나고, 뭔가 뿌듯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부르신 나의 사역지라고 생각하면서 날마다 씩씩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마지막 날에 있을 주님의 심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날에 주님은 모든 민족을 모으시고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오른쪽에는 구원받을 사람, 왼쪽에는 저주받을 사람들로 구분합니다. 주님은 자기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 곧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창세 때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너희는 내가 주릴 때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로 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어 있을 때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찾아 주었다”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구원받을 사람들, 즉 의인들은 대답하기를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말씀해주십니다.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은 구원받을 일을 하고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지도 않은 일도 자신이 한 것처럼 여깁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첫 번째, 구원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어떻게 했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의문을 품으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아니 구원이 행위로 결정된다는 말이야?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자,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믿음은 행위를 통해 증명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행위로 믿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 아닐까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 소수자들에게 우리의 시선과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갈 길을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웃은 하나님 나라의 입구입니다.
다음으로 본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강렬한 메시지입니다. 교회의 교회 됨은 이런 이들을 잘 맞이하고 영접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그 근본적 사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넉넉해질수록, 교인수가 늘어날수록 그 사실을 까먹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가족으로 맞아들이고 존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물론 악의를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도 있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어려운 이들이 마음 편히 찾아올 수 있는 공동체를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배신하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하찮아 보여도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배고픈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런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분은 교회에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2011년부터 거의 매주 현장 기도회에 참여했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수많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우연히 찾아간 첫 번째 현장은 재능교육 학습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했지만 나중에는 2명이 남았습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혜화동 본사 거리 천막에서 끝까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9년 만에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다음에는 5명의 해고노동자가 싸우는 삼표동양시멘트 현장이었습니다. 하루는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데 달랑 여덟 명이 앉지도 못하고 비를 맞으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볼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무언가가 계속 흘러내렸습니다.
그 현장이 잘 타결되고 파인텍 노동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했습니다. 지회장은 40일 단식을 했고 두 노동자는 아찔한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에 올라가서 1년을 있었습니다. 어느 겨울 성찬을 하려고 놔둔 포도주잔이 얼어서 슬러시가 된 포도주를 가지고 성찬을 하는데 마음도 시리고 몸도 시렸습니다. 또 다음으로는 삼성 김용희 노동자와 함께 했습니다. 그는 마치 섬과 같은 강남 한복판 광고탑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얼마 전 1차 타결된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 현장이었습니다. 싸우는 800일 동안 3명 중 2명은 길에서 정년을 맞았습니다.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대여섯 명의 경찰에 들려서 던져졌을 땐 제 자존심도 던져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매주 목요일 명동재개발2지구 상인들과 기도회를 드리고, 매월 셋째 주 월요일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가족들과 함께 예배합니다.
제가 일하는 ‘고난함께’가 연대를 결정할 때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거나 연대인이 많은 현장은 가지 않는다. 둘째, 같은 말이지만 가장 열악한 현장, 매스컴에서도 다루지 않고 적은 인원이 싸우는 곳으로 간다. 셋째, 당사자들보다 딱 반 발짝 뒤에서 간다. 절대 앞서가지 않는다. 넷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끝까지 연대한다. 다섯째, 모든 싸움이 끝나면 이름 앞세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진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이 원칙을 잘 지켜온 것 같습니다.
2011년 우연히 재능교육 투쟁 현장을 찾아가기 전까지 저는 사실 저는 보수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제가 변하게 된 데에는 한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2010년 지금의 하남으로 목회를 나왔습니다. 여름마다 수해를 입는 지하 교회였지만 저는 빨리 교회를 성장시키고 싶었습니다. 좋은 머리에 설교도 제법 잘한다고 생각해서 금방 큰 교회가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아무리 설교가 좋으면 뭐합니까? 사람이 안 옵니다. 처음 몇 달을 아내와 두 딸아이를 데리고 11시에 예배를 드리는데, 처음에는 그래도 얼마나 신났는지, 앞에 셋을 앉혀놓고 부흥사처럼 설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이 예배를 드리는데 제가 설교를 하고 있으몀 다섯 살 큰 아이는 꾸벅꾸벅 졸고, 2살 둘째 아이는 용변을 가리지 못하면 아내는 한쪽 구석에서 기저귀를 갈았습니다.
“내가 목회에 소질이 있나? 정말 하나님이 나 목회하라고 부르신 것 맞나?” 그런 생각이 들던 어느 날, 예배 시작하고 한창 설교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들어 와서 맨 뒤에 앉았습니다. 제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오셨어요?” 주일날 교회에 왔으면 예배드리러 온 거잖아요? 어찌어찌 예배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려 했는데 그분이 말을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문자로 필담을 나눌 수는 있었습니다. 전화기에 “너는 내 아들이고 내가 너를 사랑하고 축복한다.” 성경 말씀을 적어서 보여주는데 그 동안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알게 된 사실은 그분은 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저에게 보여준 그 문자도 예수가 전도사를 축복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아무도 없는 불꺼진 지하 예배당에 혼자 앉아 있는데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첫 번째 교인이 하필 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니…’ 기도도 아니고, 넋두리도 아닌, 그저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다가 이제 정말 목회를 접어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이 제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얘 남병아, 너는 자기가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면 싫은거니? 그 사람이 자기가 예수라고 생각하면 예수처럼 대해 주면 되잖아?” “너는 헌금 많이 하고, 전도 많이 하고, 봉사 열심히 하는 사람이 오면 좋고 자기가 예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오면 싫은 거야?” 그 순간 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제 적나라한 모습을 알게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 나라, 부흥, 영광 그런 말을 하면서 속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을 보내주셨는데 저는 양을 가려서 목회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그 한 사람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서 목회했습니다. 제 목회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 큰 목사 되겠다가 목표가 아니라, 약한 한 마리 양을 잘 보살피는 것,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다고 여겨지는 이를 위해 나의 삶을 드릴 수 있는 것, 이것이 제 목회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잃어버린 양, 내 자매형제 중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어디있나 살펴보니까 예전에는 못봤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해고된 노동자들, 쫓겨난 사람들, 차별받는 사람들, 이주민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옥에 갇힌 사람들…. 지금도 그들 옆에서 울고 웃고 힘들어하고 보람도 느끼고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좋습니다.
사랑하는 서울제일교회 교우 여러분, 지금 그런 이들의 모습으로 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또 그들을 만나기 위해 교회 밖으로, 거리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의 입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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