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돗의 밭

6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7"너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너에게 와서,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너더러 사라고 하면서, 그 밭을 유산으로 살 우선권이 너에게 있기 때문에, 네가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8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근위대 뜰 안으로 나를 찾아와서, 내게 부탁하였다. 베냐민 지방의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나더러 사라고 하였다. 그 밭을 소유할 권리도 나에게 있고, 그 밭을 유산으로 사들일 권리도 나에게 있으니, 그 밭을 사서 내 밭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 때에 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명령임을 깨달았다. 9나는 숙부의 아들 하나멜에게서 아나돗에 있는 그 밭을 사고, 그 값으로 그에게 은 열일곱 세겔을 달아 주었다. 10그 때에 나는 매매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그것을 봉인하고, 증인들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었다. 11그리고 나는 법과 규례에 따라서 봉인된 매매계약서를 봉인되지 않은 계약서와 함께 받았다. … 14"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이 증서들 곧 봉인된 매매계약서와 봉인되지 않은 계약서를 받아서, 옹기그릇에 담아 여러 날 동안 보관하여라. 15참으로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다시 집과 밭과 포도원을 살 것이다."(렘32:6-15)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자기성찰’을 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적 사고’와 ‘자기성찰’은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입니다. 인간은 ‘비판적 사고’와 ‘자기성찰’을 통해서 삶을 한 단계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늘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날마다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해서 더욱 성숙의 과정으로 나아간다면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렇게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편안한 삶에 익숙해지고, 소유와 욕망을 따라 살다 보면, 자연스레 ‘자기성찰’의 삶과는 멀어지게 됩니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잘못인 줄 알지만 고치지 못할 때가 많고, 문제인 줄 알지만 무감각하게 넘길 때가 많습니다. 몸이 아프고 이상 신호를 보내도 별일 아닌 것처럼 넘기다가 결국 큰 병이 나고 그제야 자신의 몸에 돌보는 것처럼,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했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만나게 되었을 때가 돼서야 우리의 삶을 다시금 성찰하고 돌아보게 됩니다. 중간중간 위태로운 위기의 신호가 있었음에도 무시하고, 또 무엇이 문제인지, 개선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음에도 방관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그제야 ‘아~ 큰일이다’ 하고 성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개인에서 집단으로, 사회로 확대되면 더욱 심각해집니다. 삶을 성찰하고 이를 개선하는 문제는 개인에서 사회로 확대되면 더욱 둔감해집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기독교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도덕적인 인간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그 사회가 도덕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면 도덕성은 더욱 약화되고, 집단 안에서 개인의 이기심은 증대된다.’ 하는 것입니다. 사회가 병들어가고 있고, 이러다가 큰 문제가 생기고, 사고가 난다고 해도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또 내 이해관계와 결부되지 않으면 모른척하거나 직접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회의 경우, 문제가 드러나고 긴급히 개선할 사항이 생겨도 그것이 잘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내 문제가 아니면 ‘다른 누군가 하겠지’ 하며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수수방관하다가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고,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르는 비극이 발생해야 ‘이것이 문제였네’ 하고 뒤늦게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결국 사회적 참사로 이어졌던 사건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최근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살해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3년 전부터 스토킹 폭력이 있었고, 피해를 호소하고 ‘보호와 격리’요청을 했음에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신병확보가 용이하다는 이유로 가해자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별다른 조치 없이 가해자에게 단 한 달간 접근금지조치 하는 것만으로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결국 한 사람이 죽임당하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서, 이렇게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해서일까요? 아니 이미 6년 전 2016년에도 강남역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유사한 사건으로 살해되고 사회적으로 충분히 문제시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못한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 해결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사회는 최악의 기후위기 현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 적극적으로 나서서 손쓰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큰 결과를 초래하게 될지 모릅니다. 또한, 교회는 존속을 위협받는 안타까운 현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각 교회는 다시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이 위기는 비단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임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자기성찰을 외면해 온 결과로 세상의 신뢰를 잃게 되었습니다. 개발과 성장을 일삼고 욕망만을 추구해 온 인류가 기후위기 현실을 맞이한 것처럼 뼈아픈 자기성찰을 외면한 채, 오로지 부흥과 성장만을 향해 달려온 교회는 존속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외면했으며, 오로지 성공과 축복, 개인의 위안만을 신앙의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구약성서에서는 사회가 부패하고 죄악이 차올라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시대의 아픔을 읽고 뼈아픈 성찰의 목소리를 냈던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예언자들입니다. 예언자들은 그 시대가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예리하게 인식했습니다. 또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이러한 인식과 아픔 가운데 예언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너희는 망한다’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좋은 말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며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예언자들에게 왜 없었겠습니까만 안타깝게도 예언자들은 비장한 각오와 처절한 심정으로 심판을 예언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늘 날카로운 심판의 말을 전해야 했던 예언자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동족들에게 무시무시한 말을 해야만 하는 그들의 마음은 고독했고 번민에 찼으며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시대와 때를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 무거운 직무를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예언자 중에서도 가장 처절한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몸부림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사람은 바로 예레미야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위기의 상황이 낳은 신학자였습니다. 그는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하기 직전 민족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예언했습니다. 바벨론과 전쟁을 하기 위해 동원령이 내리고 온 나라가 한판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전한 메시지는 “이 민족은 망한다.”, 그러니 “바벨론에 항복해라” 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에 움츠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야말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언자로서 예레미야는 수많은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의 말씀이 범상치 않은 만큼 그의 생애도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살해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예레미야 11장을 보면 그의 친척들마저도 그를 죽이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레미야를 ‘수난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하고, 눈물과 고뇌가 많다고 해서 ‘눈물의 예언자’라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예레미야서를 천천히 읽어보면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얼마나 많은 인간적 고뇌와 아픔이 있었는지 아주 잘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 15장에는 예레미야가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며 하나님께 울부짖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보면 그가 얼마나 힘겨운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는 왜 이렇게 시대가 받아들이기 힘든 예언을 하며 고뇌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당시 상황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거대한 바벨론과의 전쟁에 백성들을 부추기어 몰아세웠습니다. 유다 민족은 단결해서 이민족인 바벨론 제국과 대항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지도층의 이러한 논리는 거짓 예언자 하나냐의 예언으로 대변되었습니다. 그들은 꺼지지 않는 신념을 가진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그들이 내세우는 명분인 ‘민족’이란 것은 결국 예루살렘 지배층이 자기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보장받기 위한 허울일 뿐이었습니다. ‘민족을 위해 거대한 바벨론과 맞서 전쟁을 한다?’‘과연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그 전쟁에서 희생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하고 예레미야는 묻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최근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용감한 영웅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라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말하고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승리의 전쟁이라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이들의 힘겨루기에서 결국 누가 희생되고 있고, 누가 이득을 얻고 있습니까? 젤렌스키나 푸틴이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받았습니까? 전쟁에서 희생당하고 상처 입고 피해를 보는 것은 가장 약한 민중들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으로 희생당한 양국의 수많은 민중의 아픔과 맞바꾼 명분과 실리는 과연 무엇입니까? 결국, 그 어떤 명분과 실리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국가나 민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 곧 민중입니다. 아파하고 있는 민중들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는 정의와 평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예언자가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했을 때 그 구체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정의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독 예언자 예레미야에게서 이 문제가 도드라지게 드러난 것은 그야말로 국가냐 백성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가 현실적으로 제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예례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정의를 역설한 것입니다. 그 정의가 무너진 국가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예언자 예레미야의 선포였습니다.

민족주의적이고 애국주의적인 선포였다면 더 많은 공감을 얻었겠지만, 예레미야는 확고하게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이뤄지는 정의를 선포했습니다. 그러니 외로울 수밖에 없었고, 온갖 박해와 오해를 다 겪어야만 했고, 그런 만큼 그 누구보다도 극심한 고통을 몸과 마음으로 다 겪어야만 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의에 충실한 예언자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고달픈 번민과 아픔을 견디면서, 박해와 오해를 겪으면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심판 너머 회복이 있음을 예레미야는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시 회복케 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비전을 예레미야는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예레미야 32장의 말씀은 이처럼 회복의 희망이 담겨 있는 본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33장까지는 하나님께서 회복을 약속하는 본문이 나오는데 그 한 가운데 오늘 본문이 위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어느 날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숙부인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자기 땅을 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산으로 살 우선권이 예레미야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아나돗은 예레미야의 고향입니다. 예레미야 1장에 보면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마을의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자기들이 지금 살고 있는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들에게 분배해주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땅을 누군가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가까운 친척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 땅이 다른 지파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나돗의 땅을 사라는 하나멜의 요청을 받아들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땅을 사고 은 십칠 세겔을 달아줍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증인들의 서명을 받은 매매 증서 두 부를 작성해서 하나는 봉인하고 다른 하나는 봉인하지 않은 채 서기인 바룩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봉인한 것은 임의 변경을 막는 조치이고, 봉인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 확인을 요구할 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룩은 그 매매 증서를 토기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갑자기 친족의 땅인 아나돗의 땅을 사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이 말씀이 어떻게 회복의 말씀일까요?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32장 전체를 읽어보면 하반부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2장은 시드기야 10년 즉 주전 58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이 주전 587년이니까 멸망 바로 전 해에 일어난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고, 예루살렘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지금 나라가 다 망해서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인데 땅을 사라니? 얼핏 봐서는 땅을 팔아 얼마 안 되는 은 십칠 세겔을 받은 사람이나 멸망을 앞두고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땅의 문서를 가진 사람이나 이것이 무슨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땅을 통해서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인간의 생각과 가능성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혹하지만,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은 정화의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집니다. 32장 37절에서 4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 희망을 약속하며 말씀하십니다.

 “똑똑히 들어라. 내가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이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 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 그러면 그들이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과 삶을 주어, 그들이 언제나 나를 경외하여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받게 하겠다. 그 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내가 그들에게서 영영 떠나지 않고, 그들을 잘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 속에 나를 경외하는 마음을 넣어 주어서, 그들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게 하겠다. 나는 그들을 잘되게 함으로 기뻐할 것이며,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렘32:37-41)

 흩으시고 내쫓으신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모아다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상처를 입은 백성에게 한결같은 마음과 삶을 주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자손 대대로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로 변했던 땅,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갔던 땅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희망의 씨를 뿌릴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삶을 일구기 위해 땅을 사려 할 것입니다.

이제야 우리는 비로소 땅을 사라시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돗에 있는 땅을 사라 하셨던 것은 바로 시련의 시간 후에 빚어질 희망의 선취(先取)인 셈입니다. 아나돗의 땅은 회복에 대한 희망의 상징입니다. 다시금 이 땅에서 사람들이 살고 자신들의 땅을 되찾고,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도 어려운 위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와 공의를 일관되게 추구한다면, 평화와 진실을 지향한다면, 시련의 시간은 오히려 복으로 화할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기후정의를 위한 행진에 함께 했습니다. 200여 명의 기독인이 함께 예배를 드렸고, 전국에서 약 4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행진했습니다. 기독교 전체인구에 비하면 200명은 너무도 작고, 4만 명의 참석자도 전 국민의 0.1%도 안 되는 적은 인원입니다. 그러나 아나돗의 땅과 같이 작은 희망을 품고 뜻을 모아 함께 행진할 수 있음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젊은 청년, 청소년들이 즐겁고 유쾌하게 함께 하고 있음에 힘을 얻었습니다.

 때로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는 예레미야의 심정과 같이 이 시대 우리가 처한 이 위기 앞에 깊은 고뇌와 좌절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다고 이 거대한 재앙을 막을 수 있나?’ ‘이럴 바에는 그냥 맘 편하게 사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유혹과 포기의 마음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길의 끝에 회복의 새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선취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고 말씀하시며 희망을 선취하는 믿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통일을 문을 열었던 문익환 목사님도 “통일은 됐어”라고 말씀하시며 통일의 희망을 선취해 사셨습니다.

 아나돗의 땅을 사서 회복의 희망을 담지한 예레미야처럼 이 시대의 위기를 선포하고, 약자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이 시대의 예언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과 방법을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담지하신 그리스도인의 사명, 예언자적 사명을 붙들고 최선을 다해 나아갈 뿐입니다. 뒷일은 주님께 맡깁시다. 주님께서 너희를 잘 되게 함으로 기뻐하며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너희가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 하신 그 약속 그 회복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