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다하여 평화를

못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여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 34:14, 공동번역)

8.15 광복절

오늘은 8.15 광복절 기념주일입니다. 이 주일에 우리는 몇 가지 특별한 의미를 담아 예배를 드립니다. 먼저는 1945년 8월 15일 민족의 해방을 기념합니다. 1945년은 세계역사상 뜻깊은 날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사건을 기념합니다. 유럽에서는 제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연합군에 의해 항복을 선언하고 패망했습니다. 그날이 5월 8일입니다. 주범인 독일의 나치 제국이 멸망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전범인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패망한 날입니다. 그날이 8월 15일입니다. 이날을 기념하여 전범국 독일은 패망을 선언하고 죄책을 고백하며 전범국으로서 보상과 배상을 현재까지도 계속합니다. 일본은 연합국에 항복을 선언했으면서도, 패망을 인정하지 않고 “종전”이라 주장합니다. 패망에 따른 온갖 책임을 방기하려 합니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문제가 여전히 미결의 갈등을 겪고 있음이 이를 말해줍니다. 하여간 해방의 기쁨을 맛보아야 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미완의 해방입니다.

일본과 독일의 차이

다른 점은 뒤로 미루더라도 일본과 독일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은 절대자 천왕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은 모두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자기도취입니다. 이 도식에 의하면 한반도 식민지화는 죄책이 아니라 기여가 됩니다. 죄책감은 고사하고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오히려 문명화시켜주었다고 항변합니다. 그래서 여전히 미결 상태입니다. 온갖 한일 간의 갈등이 바로 여기에 기인합니다. 독일의 경우는 절대자 하나님의 주권에 반하는 나치 폭정은 회개와 참회의 대상이고, 그래서 공개적으로 죄책을 고백하고 지금도 예외 없이 실천에 옮기면서 용서를 빕니다.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결국 무신론적 교만과 유신론적 겸허의 차이입니다. 인간의 사회는 예나 지금이나 범죄를 얼마나 어떻게 저질렀느냐의 문제이기보다는 저지른 범죄를 인정하고 참회하고 돌아서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며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8.15”는 한일 모두에게 해방의 날입니다. 일본에게는 억압과 지배라는 쇠사슬에 속박되어 사는 자칭 허황된 “정신승리”에서 해방되어 회개하고 새 삶을 누리게 되는 해방이고, 대한민국에게는 억압과 지배의 종살이 체제를 벗어나 새 힘을 얻고 자주적 삶을 사는 해방입니다. 새로운 일본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이 누릴 해방, 이 두 가지의 해방이 곧 한일 쌍방이 함께 누리려고 하는 공감대이고, 그것은 곧 “평화”라는 공동의 광장입니다.

평화의 복음

오늘의 시편 말씀은 이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하라고 권고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세상 밖에 계시고, 초자연적인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성육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육하신 하나님,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던 날, 하늘에서 내려온 찬양대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며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눅 2:14)라고 찬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이 성탄에 평화의 주님으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단도직입적으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엡 2:14)라고 선포합니다. 이분 그리스도가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마 5:9)입니다.

해방의 날에 듣는 주님의 말씀은 바로 “평화의 복음”입니다.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길은 오직 한길 곧 “평화의 연대”입니다. 이 평화만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일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용광로이고, 앞으로 누릴 한일 간의 협력과 연대의 공동광장이 바로 평화입니다. 나치 악행을 기억하며 세운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간판 문구가 있습니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 지나간 과거를 잊으면 안 됩니다. 기억 속에 간직하고 다시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결단을 매일같이 하도록 해야 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공동의 평화를 위해서 용서의 은총을 베풀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으로 이기라

예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원수사랑”은 사랑의 최고봉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면 그 사랑 속에는 당연히 평화가 담깁니다. 증오 속에 평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고 쉬운 일이고, 증오하는 사람끼리 증오하며 사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는 실행할 수 없는 원수 사랑을 평화의 복음의 조건으로 주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요인이 있습니다. 먼저 증오하는 원수가 자기 생각과 삶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원수가 갑이고 자신이 을이 되는 원치 않는 속박의 모순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수라는 적과 강박관념에서 먼저 해방되라는 것입니다. 해방되어 참 자유를 누리라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속박되면 참 자유가 없고, 자유가 없으면 참 평화를 누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로마서에 답이 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21)고 하십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고, 원수를 사랑으로 이기라고 합니다. 원수 사랑의 목적은 사랑의 승리입니다. 선행의 목적은 선의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악과 원수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폭거를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을 죽이시고”(루터), 곧 죽은 자를 부활의 주님으로 살려내셨습니다. 이것이 원수 사랑의 결실입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평화의 결실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이제 우리는 이 해방을 기념하는 주일에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고 이루어야 하는 사명을 다시 되새기려고 합니다. 오늘 주일 예배는 2013년 WCC 10차 서울 총회 때에 남과 북의 교회는 물론 전 세계의 회원교회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공동의 주일로 지키자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공동기도문”을 예배의 공동기도문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 그리스도교도 연맹>으로부터 금년엔 응답이 없어 남한교회가 북한의 교우들까지 가슴에 새기며 이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하여 “하늘에는 영광, 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는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함께 되새겨볼 것이 있습니다. 남북 간의 분단과 갈등은 그동안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불안합니다. 크게 보면 여러모로 “원수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오늘 오신다면 “원수사랑”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라고 분명히 말씀하실 것입니다. 어찌할까요?

6.25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을 몸소 체험한 우리 남북의 동포는 군사적 폭력이나 전쟁의 방식으로 통일을 획책하거나 염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북이 남을 적화 통일할 수도 없고, 남이 북을 흡수 통일할 수가 없음을 우리 모두 압니다. 너 죽고 나 살자나, 너 살고 나 죽자나, 너 죽고 나 죽자나, 어느 것 하나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뿐입니다. 싫든 좋든 이 한 길뿐입니다. “너 살고 나 살자”는 공존과 공생의 방식뿐입니다. 원수 관계임에도 남은 방식은 이 길뿐입니다.

북도 살고 남도 사는 평화

앞에서도 로마서의 말씀을 새겨보았습니다. 북이 원수라면, 북의 이념이나 체제나 선전에 놀아나지 마십시오. 좌우되지도 마십시오. 원수의 일거수일투족에 매이지 마십시오. 자유민주의 주체성을 굳건히 지키십시오. 그리고 남한에서 자유가 들풀처럼 피어나고 복지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평화의 동산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북에 비해 60배나 경제 규모가 큰 남한은 이제 전 세계가 공인하듯 첨단기술 강국이고, 의료 선진국이며, K 컬쳐라 하는 문화예술의 첨단을 달리며, 의료치료의 첨단 모범국가로 칭송받는 것이 엄연한 현실인데도, 여전히 지난날의 절대적 빈곤과 비민주적 사회 시절의 냉전논리에 빠져 수구적 태도를 견지하는 한 우리 한반도의 미래는 어둡게 됩니다. 공존이란 삶의 가치관의 공개 경쟁입니다. 무력과 폭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평화적 경쟁입니다. 악의 대결이 아닌 선의의 경쟁에서 패배하면 끝입니다. 북과 평화공존을 하자는 말은 바로 이러한 평화적 경쟁과 협력을 실체화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쟁 속에서야 비로소 평화가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적화의 승리도 흡수의 승리도 아닙니다. 평화의 승리입니다. 이런 평화 속에서만 진정으로 “북도 살고 남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평화는 강합니다. 이러한 평화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우리가 통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주변 국가들로부터의 혹시 모를 제국주의적 지배욕이나 신 식민지적 침투에 또 다른 희생물이 되지 않고 진정한 “강소국의 행복한 평화동산”의 산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원합니다.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가라. 평화통일이여 오라.

마스크로 배운 평화의 삶

요즈음 코로나 전염병 때문에 고통 많으시지요? 마스크를 쓰면서 배우는 평화의 삶이 있습니다. 마스크는 기본적으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나를 위한 마스크는 동시에 “너”를 위한 마스크입니다. 나 홀로만의 방역은 불가능합니다. 너와 함께하는 방역이 코로나를 격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스크는 공동체의 모범이고, 공존공생의 도구이고, 공동복지의 표징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누구나 자기 사랑이 첫째입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사랑하는 자만이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만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웃사랑은 그래서 또 다른 자기 사랑입니다. 나의 마스크와 너의 마스크는 같은 마스크입니다. 공존의 마스크요, 평화의 마스크입니다. 남과 북도 이제는 “너 살고 나 살기” 위해서 함께 “평화의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적대관계, 폭력, 험담, 협박, 이 모두는 정치적, 이념적, 폭력적 바이러스입니다. 그것들은 퇴치와 격리의 대상이지 수용하고 용인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평화는 공짜가 아닙니다. 자유가 공짜가 아니듯이. 정의도 공짜가 아닙니다. 통일은 평화 없이 오지 않습니다. 통일은 평화의 과정과 결실이 만드는 집입니다. 통일의 집 속에서 평화가 숨을 쉬고 맛을 내고 원기를 돋게 하고 행복을 일구어냅니다. 통일도 평화도 우연이 아닙니다. 힘쓰는 자가 빼앗듯이 얻어내는 귀중한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남이나 북이나 홀로 가질 수 없습니다. 나누어 가져야 합니다. 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주시는 하나님은 북한 백성의 하나님이고 동시에 남한 백성의 하나님이고, 남한의 백성도 북한의 백성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로 만드시고 부활의 축제로 초대하십니다. 십자가가 분단이라면 부활은 평화통일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