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튼튼히 세워주소서!

25[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선포로 여러분을 능히 튼튼히 세워주십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비밀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26그 비밀이 지금은 예언자들의 글로 환히 공개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27오직 한 분이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로마서 16:25-27)

특별한 본문, 송영

오늘 대림절 네 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에게 주어진 ‘서신서 본문’은 로마서 16:25-27입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의 맨 마지막 문장인데, 학자들은 이를 ‘doxology’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짧은 찬송”, 즉 ‘송영(頌榮)’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이 쓴 편지 중에 송영으로 마무리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부분을 후대 첨가로 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꺾쇠괄호’로 묶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로마서의 저자인 바울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송영이 로마서의 마지막 문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대림절 넷째 주일 본문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언할까 고민하던 중에 생각난 것이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주일예배 때마다 외우는 ‘주님의 기도’는 마태복음 6:9-13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 역시 ‘송영’으로 마칩니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이 바로 송영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 송영에도 괄호가 쳐있고, “고대 사본에, 이 괄호 내 구절이 없음”이라는 내용의 각주가 붙어있습니다. 즉, 마태복음이 처음 집필될 당시에는 이 송영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당연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역시 송영 없이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의 어느 필사자가 송영을 써넣었던 것입니다.

주기도문과 로마서의 공통점

요아킴 예레미아스(Joachim Jeremias)라는 20세기의 저명한 신약성서 학자는 “예수님은 주기도에서 송영을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송영을 드리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셨음이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지막 ‘송영’이 앞의 ‘기도문’과 맥을 같이하고, 또 ‘주기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요약해서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로마서의 마지막 구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고자 한 바를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로마서는 주기도문의 확장판이며, 로마서와 주기도의 각 끝에 후대의 필사자가 앞의 내용을 집약해서 ‘송영’을 덧붙여놓은 것도 똑같습니다.

제가 지난여름에 로마서 연속설교를 할 때 로마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꿈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꿈은 주기도문에서 말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기도문의 주제도, 또 로마서의 주제도 ‘하나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위해 “내가, 또 우리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송영은 이에 대한 ‘고백’과 ‘선언’입니다.

주기도은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다”는 송영으로 끝납니다. 이는 “로마제국이라는 나라와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권세와 영광은 영원할 것이다”라는 당시의 확신과는 반대되는 고백이었습니다. 아니 이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황제를 거부하고 하나님만 따르겠다는 반역 선언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카이사르의 나라와 다르게 “힘이 정의인 나라가 아니라 정의가 힘인 나라”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힘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힘’을 추구하지만, 그래서 ‘힘이 곧 정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과 정의가 제일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과 정의가 힘이 되는 나라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실제로 그렇게 사신 분이 예수입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서 하나님의 꿈을 실현할 길을 발견한 사람들은 그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며 그의 신앙과 삶을 본받아서 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로마서’라고 하는 편지에서 바울이 크리스천들에게 말하고자 한 바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후대의 필사자가 로마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던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 즉 하나님은 정의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고 당신을 그 꿈 실현의 동역자로 부르셨다는 기쁜 소식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말과 삶을 통해 선포한 그 꿈 실현의 길을 통해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하나님 나라의 실현방법이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밝혀졌다. 이제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방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이 살아왔던 세상적인 삶의 목표와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믿고 그 실현의 길에 나서기를 순종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카이사르가 아닌)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할 것이다!

왜 송영이 대림절 넷째 주일 본문인가?

이제 로마서 맨 끝에 있는 ‘송영’의 의미는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송영이 왜 하필 대림절 넷째 주일 본문으로 주어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은 예수를 ‘예언자’로만 받아들이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만약 예수가 그리스도였다면 그가 온 뒤로 이 세상이 뭔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어야 했는데,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선한 사람은 고통받고, 악한 사람이 떵떵거리며 잘삽니다. 의가 아니라 악이 지배합니다. 정의는 짓밟히고 불의가 판을 칩니다. 사랑과 정의가 힘이 되지 못하고, 힘이 곧 정의로 행세합니다. 그러니 예수가 그리스도일 까닭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왜? 예수가 왔지만, 이 세상은 그 이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입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습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판단은 무엇에서 유대인들과 차이가 납니까? 그 답은 종말론 해석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진 종말론은 ‘묵시적 종말론’입니다.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세상에 불시에 개입하셔서 일거에 천지를 개벽하리라는 것이 ‘묵시적 종말론’입니다. 이 종말론에 믿으면 우리가 할 일은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오신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불의한 현실 가운데서 참고 인내하며 깨어서 기다리며 하나님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준비란 종교적 경건 생활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거의 패러다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의 실패로부터 배웠는데, 그것은 “우리만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우리를 애타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 세상에 오셔서 당신 일을 시작하셨는데, 우리는 이미 오신 하나님을 기다리기만 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돕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다리지 말고,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것을 누리면서 기뻐하고 감사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그 나라를 이 세상 속에 확대시키라”는 것이 예수님 입장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고, ‘참여적 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과 바울의 대답과 질문

이 참여적 종말론에 대해서 ‘아멘’한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세상이 바뀌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는 왜 또다시 예수님을 기다리는지에 대해서. 참여적 종말론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협력해야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와 ‘아직’의 ‘사이 시간’이 길어진 이유,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 늦어진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 있지 않고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참여와 협력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동역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기꺼이 ‘아멘’으로 응답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분명 한때는 세상 개혁의 주체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해병은 영원히 해병이듯이, 한 번 개혁의 주체였던 사람은 영원히 개혁의 주체인가요? 우리의 역사는 그것이 아님을 입증합니다. 6.3, 4.19, 10월 유신, 5.18, 6.10 때 선봉에 섰던 개혁의 주체들이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당시의 주역 중 많은 이들은 나이가 들고 기득권이 늘어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우리는 똑똑히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나라의 지연은 하나님의 변절 때문이 아닙니다. 크리스천들의 변절 때문입니다. 크리스천들이 처음의 사랑과 정열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정의로워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악인이 정의를 추수할 수는 없습니다.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열릴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처음에는 누구나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의롭지 못했더라도,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나는, 우리는 여전히 의롭거나 의를 추구하고 있습니까? 처음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유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식거나 시들해졌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의 처음 사랑과 뜨거웠던 열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다시 오십니다. 아니 다시 오셔야만 합니다. 재만 남은 우리 심령을 다시 활활 타게 하시려고 다시 오셔야만 합니다. 오늘 송영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위에 튼튼히 서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살펴보듯이, 매일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나를 비추어보아야만 처음 사랑과 뜨거운 열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 의미가 송영의 마지막 단어 ‘아멘’에 담겨 있습니다. ‘아멘’은 기도가 끝났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아멘’은 “그렇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또한, 내가 기도한 대로 행동하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맹세의 확인입니다. 여러분이 결혼 서약을 했을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주례가 “신랑 아무개는 신부 아무개를 결혼한 아내로 맞아 지금, 이 순간부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죽음이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약속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아멘’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말한 내용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맹세입니다. 주기도문도 그렇고 로마서도 그렇고, 모두 송영으로 끝나는데 두 송영은 모두 ‘아멘’으로 마칩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에 대한 재확인이고, 또 그렇게 살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키겠다는 의지의 천명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책임을 떠맡는 행동입니다.

지금 우리는 누구 편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 편에? 아니면 세상(의 권세) 편에? 하나님께 나를 도와주십사고 기도하지만 말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하나님을 부리고 조정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내 편에 서시기를 기도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때론 손해를 보고 밑져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래야 내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애플의 두 전 CEO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일화를 잘 압니다. 존 스컬리가 2등 기업 펩시콜라를 1등 기업 코카콜라와 대등하게 성공시켰을 때 스티브 잡스가 그를 찾아와 이렇게 설득했다지요? “당신은 설탕물이나 팔면서 남은 인생을 낭비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습니까?” 하나님도 우리에게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남은 인생을 세상의 권세가 주는 단맛을 보며 살래, 아니면 나와 함께 불의한 세상을 정의로운 세상으로 바꾸어 볼래?” 우리는 그 제안에 ‘아멘’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공한 삶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에 투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부디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 맹세를 이행하십시오. 세상 사람 모두가 ‘아멘’이라고 입으로 그리고 삶으로 화답하는 날 하나님의 나라가 전면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하나님께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