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당기는 기다림

8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만은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습니다. 9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버리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은 드러날 것입니다. 11이렇게 모든 것이 녹아버릴 터인데,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 속에서 12하나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에 하늘은 불타서 없어지고, 원소들은 타서 녹아버릴 것입니다. 13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따라 정의가 깃들여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4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이 없이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있도록 힘쓰십시오. 15그리고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벧후 3:8-15a)

오늘은 대림절 둘째 주일이자, 2020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저물어 가는 한해를 돌아보면, 특별히 올해에는 연초에 계획했던 일정 중에 상당수가 코로나19로 인해 무산되거나 축소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빠지지 않고 이어온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했던 성경통독입니다. 이번 성경통독은 3년 전에 진행했던 성경통독과 달리 성경에 대해 학습하고 배우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신앙과 삶을 성찰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한주간 말씀을 묵상하며 성찰하거나 깨달은 것을 돌아가면서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시간을 통해서 서로에 대해서 더욱 깊이 알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묵상나눔을 진행할 때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예나 지금이나 교회에는 늘상 문제가 많고, 사람들이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의 상황에서 어떻게 목숨을 걸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할 수 있었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선택하기도 하고 또 쉽게 떠나기도 하지만, 초대교회의 당시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선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신앙을 선택함으로 박해의 대상이 되고, 자신의 전부를 걸어야만 했던 초대교회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대교회 교인들이 그 힘겨운 나날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어서 삶이나 생활에 아무런 불편함이나 거리낌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서 있는지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대림절 둘째주일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굳건히 믿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서일과가 제시하고 있는 베드로후서의 말씀은 초대교회의 특별한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많은 문제들이 제기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재림의 지연'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임박한 주의 재림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대에 다시 주께서 오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리스도인들의 세대에 주의 재림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다음 세대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주께서 곧 오신다고 했는데, 어째서 여태까지 안 오시는 거냐? 주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아니다. 주의 날은 꼭 온다. 그러나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바로 이 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저는 오늘 본문 8절의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표현을 보며 김재훈 장로님을 떠올렸습니다. 아시다시피, 지난 10월 6일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워계셨던 김재훈 장로님께서 12월 1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3일간의 장례일정에 참여하면서 장로님들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장로님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1986년 4월에 김재훈 장로님의 차남이던 고 김세진 열사가 민족의 자주와 민주평화통일을 위해 자신의 몸을 산화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사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경험하고 난 장로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아들을 먼저 보내고 맞이한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길고 또 길게 느껴지셨을까요? 하루가 천년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또 해방된 조국을 바라며 먼저 간 아들의 삶을 이어받아 35년동안 민주화 통일운동에 투신하고도 마치 어제 일처럼 아들 세진이의 일상을 떠올리던 장로님을 보면서 천년이 하루같지 느껴지지 않았을까요? 아들이 꿈꾸던 해방된 조국을 이루기 위한 기다림은 또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장로님은 정말 그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시고 실천하셨습니다. 1986년 기독교회관에서 진행되었던 “구속자를 위한 목요기도회를 계기로 서울제일교회와 인연을 맺고 이제는 자신의 꿈을 신앙실천으로 일치시켜 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사회의 모순을 깨달은 김세진 열사가 학생운동을 통해 투신한 시간은 4년이지만 그 꿈을 이어받아 장로님이 투신한 시간은 그보다 9배가 많은 35년이었습니다. 그런데 35년을 한결같이 살아가시면서도 때때로 보수정권의 암담한 현실을 경험할 때는 도무지 실현되지 않을 것 같은 꿈으로 신앙의 회의를 깊이 고민하셨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두 정권에서 민주화가 다시 되돌려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을 때, 아들의 꿈을 이어받아 사셨던 장로님의 좌절감이란 이루 말로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장로님은 결코 그 걸음을 멈추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무엇인가를 위해 헌신할 때도 종종 찾아오는 위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의 회의와 허무주의입니다. ‘정말 간절히 바라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내 삶을 걸고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아직도 현실은 변함이 없지?’,‘에잇, 뭐 내가 이렇게 한다고 달라져?’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너무 느려 보입니다. 그냥 속 시원히 빨리 좀 이뤄주시지,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리다가 죽을 지경입니다. 정말이지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변화가 너무도 더딘 현실을 보면서 회의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촛불혁명 이후, 다시금 우리 사회가 새롭게 바뀔 것이라 생각했는데, 답답하게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요즘 사회현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 오신다던 주님이 오시지 않자 초대교회는 지리멸렬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대도 설렘도 없는 믿음처럼 허망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만을 고대하면서 온갖 불편을 감내했던 성도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를 떠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믿음의 열정을 잃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저자는 그 영문을 알 수 없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성도들에게 일깨워주어야 했습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여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시간을 나타내는 그리스 말에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입니다. 크로노스란 기계적이고 양적 시간을 말하는 반면, 카이로스는 질적인 시간을 말합니다. 크로노스는 시계가 째깍째깍 돌아가듯이 흘러가는 시간, ‘○년 ○월 ○일 ○시’ 하는 식으로 따지는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나 카이로스는 그러한 시간과는 다른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특별한 기회, 어떤 조건이 성숙하는 때를 말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찬스’ ‘타이밍’을 말합니다. 기계적인 시간으로 몇 년 몇 월 몇 시와는 상관없이 어떤 조건이 딱 들어맞는 때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은 기계적인 시간을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몇 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오실 것이다’ 하는 예측을 부정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오신다는 이야기일까요? 오늘 본문 9절은 "주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분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고 하고 말하고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과 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란 도둑이 언제 올 것이라 예측할 수 없듯이 마찬가지로 기계적 시간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때를 말하며, 모든 사람이 멸망이 이르지 않도록 회개하는 때, 바로 그 날 그래서 정의가 깃들어 있는 그 순간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란 기계적인 시간으로 말하면, 바로 지금일 수도 있고, 지금보다는 더 먼 미래의 어느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 때가 언제 오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함께 성서일과가 제시하고 있는 복음서와 예언서의 말씀은 마가복음 1장과 이사야서 40장입니다. 이 말씀은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하는 이사야서 40장의 말씀을 인용하여 평행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서일과가 제시하고 있는 다른 두 본문과 베드로후서의 말씀과 연관지어 생각해본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길을 가는 것’으로 비유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표어가 예수의 길을 따르는 신앙공동체이듯이 신앙은 예수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길이 없은 작은 산을 오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처음 누군가가 새롭게 길을 내면서 가야하고, 또 그 뒤로 누군가가 그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한 두사람이 지났다고 길이 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풀숲사이로 지나갈 수 있는 틈이 생긴 것 뿐입니다. 그 곳으로 한 사람, 또 한 사람이 지나고, 훗날 많은 사람들이 다니며 땅도 다져지고 지나갈 여유가 생겨나야 우리는 그곳을 길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먼저 첫 길을 내고 가셨고, 우리는 다만 그 뒤를 따라 작은 틈을 내며 따라갈 뿐입니다. 내가 완성된 길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상은 언제나 더디게 느껴지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을 진정으로 향유하며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일상의 삶은 어느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변화되어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날은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느 순간 변화된 우리의 삶의 현실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기다림은 바로 그 때를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은 “앞당기는 기다림”입니다. 둥근 사각형이라는 말처럼 모순되는 말이죠. 능동적 기다림의 자세를 표현하고자 이렇게 정했습니다. 그저 언제 올지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때가 무르익도록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기다림입니다. 작은 불이지만 계속해서 불을 지피면 마침내 물이 끓어오르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기를 바라며 멈추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서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신앙을 회의와 허무주의에 내맡기지 마십시오. 그저 우리에게 맡겨진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때가 무르익어 변화되는 우리의 삶과 하나님 나라가 도둑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그 기다림으로 하루하루를 삽시다.

오늘 베드로후서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들 모두 새 하늘 새 땅을 갈망합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앞당기기 위하여, 아니 그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느 순간에 임하더라도 "티도 없고 흠도 없는 사람으로, 아무 탈없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이 시간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