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3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6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7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9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고전 1:3-9)

분명한 목표를 갖고 출발하는 한 해

오늘은 교회의 전례력으로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과 달리, 교회력은 오늘부터 새해를 시작합니다. 교회력과 태양력의 차이로 인해 ‘교회의 새해’는 항상 ‘세상의 연말’이기에 우리는 매년 대림절마다 새해 분위기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19의 3차 대유행에 따라 지난 24일(화)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교회와 집으로 나뉘어 주일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좌석을 20%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 예배실과 상상뜰, 그리고 서제뜰로 나뉘어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마스크를 벗을 수 없어서 매년 하던 성찬 예식도 거행하지 못합니다. 매우 아쉽지만 이렇게라도 모여서 예배드릴 수 있

는 게 그나마 다행이고, 만약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되면 이마저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올해 대림절은 조금 우울합니다.

그런데도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대림절을 맞았습니다. 이미 오신 예수를 기념하고, 다시 오실 예수를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즉, 가깝게는 예수 ‘성탄’을, 그리고 실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교회는 대림으로 새해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새해 첫날에 종말(終末)에 주목합니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끝에 집중합니다. 그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분명한 목표’를 갖고 새해를 출발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분명한 목표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再臨), 다시 오심입니다. 그런데 ‘재림’이 뜻하는 바는 예수가 시작했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의 죽음으로 중단된 것이 아니라, 언젠가 그가 다시 와서 완성하리라는 것입니다. 즉, 재림의 초점은 ‘다시 오심’이라는 그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그 ‘내용’에 있습니다.

종말(終末), 즉 악의 종말, 불의의 종말, 분열과 차별의 종말, 억압과 착취의 종말이라는 ‘하나님은 꿈’은 절대로 포기될 수 없습니다. 신의 약속은 결단코 철회될 수 없습니다. 힘이 정의인 세상이 아니라, 정의가 힘인 세상에 대한 소망은 언제까지나 사라질 수 없습니다. 크리스천은 막연히 좋은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뚜렷하고 분명한 목표를 두고, 그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교회는 새해 첫날에 목표를 잊지 말라고, 재림과 종말에 주목하게 한 것입니다.

은총의 시기

교회의 새해 첫날에 우리에게 주어진 본문은 고린도전서 1장 3-9절 말씀입니다. 이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인사말과 감사의 말’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3절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은혜’와 ‘평화’를 빌어주고, 이런저런 ‘감사의 말’을 한 후에 7절에서 고린도 교우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이는 비단 고린도 교우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고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 종말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8절에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매우 무겁습니다.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고, 욕망에 휘둘리기 일쑤인 우리로서는 언감생심처럼 여겨지는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목표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희망의 뿌리가 우리가 아니고 우리를 끝까지 튼튼하게 세워주실 주님이라고 말합니다(8b절). 우리를 부르시고,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해주신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 희망의 뿌리입니다.

이 말을 찬찬히 곱씹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나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가능하십니다. 나는 흠이 많은 존재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를 마침내 튼튼히 세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그런 나의 허물과 부족함을 시인하고, 하나님이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실 때 나를 내어 맡기는 것뿐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이런 신앙을 체험하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이런 체험을 ‘breakthrough’, ‘돌파’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내 삶에 균열을 내고, 내 자아와 자기중심성을 깨뜨립니다. 주님을 모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가능성 앞에 서는 일입니다. 우리는 매년 대림절로 교회의 새해를 시작하지만,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 삶의 분명한 목표를 각인하지만, 살다 보면 어느새 발등에 떨어진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느라 그 목표를 잊고 맙니다. 또한,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세상 풍조로 길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표를 잃고 세상에 익숙해져서 일상적으로(routine) 살아갑니다. 그런 우리의 삶에 하나님이 뚫고 들어와 내 안일함을 뒤흔들고 깨뜨려 다시 새롭게 하는 시간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그렇기에 대림절은 은총의 시간입니다. 우리 존재를 새롭게 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 약속이 자라나는 시간

그렇다고 대림절은 하나님의 개입에 그저 나를 수동적으로 내맡기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덩’ 하시면, 나도 ‘더꿍’하고 박자를 맞추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역자, co-worker인 우리의 동참으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는 신앙생활의 삼덕(三德)입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 곳곳에서 이에 대해서 말했는데, 특히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을 마무리하면서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3:13)라고 한 것이 가장 유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기다림의 자세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임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기다림은 믿음입니다. 성경은 여기저기서 하나님 약속의 성취가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좋게 들리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약속을 더디게 이루어 주시고, 그동안 우리가 기다리도록 만드시는지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딘 시간은 결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닙니다. 멈춘 시간도 아닙니다. 더딘 시간은 약속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는 시간입니다.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 원리』라는 책에서, 중국산 대나무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동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중국산 대나무를 많이 심는데, 중국산 대나무는 심고 물과 거름을 주어도 4년 동안 거의 성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5년째 되는 해에 놀랍게도 5주일 동안 높이가 약 27.5m나 자란다고 합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차동엽 신부는 이렇게 묻습니다. “과연 이 대나무는 5주일 동안에 27.5m가 자란 건가요, 아니면 5년 동안에 자란 건가요?” 정답은 당연히 5년 동안 자란 것입니다. 5년 동안 씨앗은 싹을 틔우고,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다림에 대한 오해는 미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 기다림의 대상은 모두 미래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는 현재의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 고통스러운 시간, 빨리 지나갔으면 싶지만 더디게 흘러가

는 시간으로만 생각됩니다. 하지만 현재는 약속이 이루어져 가고 있는 한 부분입니다. 현재는 약속의 씨앗이 심어져서 자라나고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신비하게 일하고 계시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 기다림이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비록 하나님 약속의 성취가 더딜지라도 그 약속이 자라나고 있음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소망, 현실에서 역사하는 힘

기다림이 소망이라는 말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입니다. 소망 없는 기다림은 성립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소망 역시 단순히 미래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미래의 소망은 지금 우리 현실 가운데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소망은 미래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현재를 향해 파고들어 옵니다. 소망은 현재를 향해 파고들어 오며, 소망은 언제나 현재에서 역사하는 힘이며, 소망은 현재를 넘어서게 하는 힘입니다.

사랑, 공동체의 축복

끝으로 기다림은 사랑입니다. 기다림은 외롭고 고독한 시간입니다. 믿음으로 기다리고, 소망 가운데 기다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림 속에 경험하는 고독감과 쓸쓸함, 불안은 우리를 많이 힘들게 만듭니다. 이 기다림의 고독과 불안을 넘어서는 방법은 함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입니다.

20세기의 천재적인 신학자로 알려진 본회퍼의 책 가운데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것은 󰡔신도들의 공동생활󰡕입니다. 이 책은 본회퍼가 독일의 한 신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2년 동안의 공동생활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여기서 본회퍼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심겨진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세상 속에 뿌려 놓으신 씨앗들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각자 세상에 흩어져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운명인 우리들에게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동체가 주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이라고 본회퍼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기쁨을 경험하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세워주는 은혜를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 본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공감합니다. 우리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때로 상처입고 때로 부대껴 아프기도 하지만, 교회에서 함께 예배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면서 내가 다듬어지고, 나의 신앙이 자라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교회에서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 이유는 교회가 주님의 임재와 사랑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본회퍼의 이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내 마음의 그리스도는 때로 약하지만, 내 옆의 형제자매의 입에 계신 그리스도는 강하다.” 때로 내 마음에서 신앙이 약해지고 예수님의 임재가 점점 흐려질 때, 우리는 내 옆에서 함께 찬양하고 은혜의 말을 나누는 형제자매를 통해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공동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입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 우리는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이곳에 함께하시는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기다림이 때로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기다리며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공동체에서 함께 기다림은 모든 기다림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이런 곳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딜지라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이 현재의 삶에 심겨져서 자라고 있다는 소망 가운데에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 가운데 기다리십시오. 기다림의 힘든 시간을 격려와 축복으로 함께 하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 가운데 기다리십시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기다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