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교회입니다!

20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을 그리스도 안에 발휘하셔서, 그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셔서 21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 위에, 그리고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 일컬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22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23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엡 1:15-23)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게 한 2020년

오늘을 포함해서 2020년이 꼭 여섯 주일 남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올 한 해는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날 것이 확실합니다. 아니 올해뿐 아니라 내년에도 그럴 것 같아서 큰 걱정입니다.

이런 시국에 저의 가장 큰 관심은 ‘교회’입니다. 우리 ‘서울제일교회의 미래’가 저에게는 가장 큰 ‘기도 제목’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부임할 때부터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에 코로나19로 한국 개신교회 전체가 위기에 직면하게 되면서, 더욱 긴급한 기도 제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코로나로 인해 이런저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미래 문제까지 다룰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이제 코로나에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겨 좀 여유가 생겼고, 또 연말이 되어 한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계획하려다 보니까 ‘우리 교회 미래 문제’가 다시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에게 ‘교회’는 무엇입니까? 특히 ‘서울제일교회’는 여러분에게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지금 한국 개신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에 1인당 국민총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섰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국민소득이 3만 불을 넘어선 국가들을 보면, 국민이 ‘신(神)’에 매달리지 않고 ‘국가’를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종교인구가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긴가민가하다가, 올해 코로나 사태 때 우리 정부의 방역 관리와 전 국민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 때 이를 분명하게 경험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가가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교회보다 정부를 더 신뢰’합니다. 더구나 신천지와 사랑제일교회 사태를 통해 전 국민 앞에 개신교의 추한 민낯이 다 드러났습니다. 한국 개신교회는 우리 국민이 보기에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인 집단입니다. 과거에는 ‘개독교’라고 욕하며 ‘악플’을 달았지만, 이제는 아무 관심이 없는 ‘무플’의 대상일 뿐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는 왜 이 세상 속에 존재해야 합니까? 특히 우리 서울제일교회는 과거에 한국 사회 속에서 꼭 필요한 존재였지만,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까요? 일반 국민이 보기에 우리 교회가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냥 사라진다면 무슨 문제가 생길까요? 우리가 다른 교회를 다니거나 교회에 안 다니면 큰 문제가 생깁니까?”

‘생존’을 넘어 ‘재건’으로

이렇듯 코로나 사태는 우리에게 ‘교회란 무엇이고, 왜 존재하는지’를 다시 묻게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서 유래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려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한 크리스천들이 이 땅 위에 작게나마 하나님 나라를 세워 교회라 칭하고, 이를 세상 속에서 확장하고 확산시켜 왔습니다. 이게 교회의 출발이고, 존재 목적입니다. 그런데 지난 2천 년 동안 분명히 교회는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커졌는데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그만큼 퍼지고 커지지 못했습니다. 왜? 우리 기독교가 언제부턴가 ‘붕어빵 기독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붕어빵 안에 붕어가 없듯이 기독교 안에 예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많은데, 그 교회는 세상 속에

현존하는 작은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그냥 또 다른 세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교회라는 형식만 남고 그 안에 담겨있어야 할 내용은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교회가 아무리 많아져도 세상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대로입니다. 본말이 전도된 교회는 ‘하나님의 꿈’이 아니라 ‘세상의 꿈’을 실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변혁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교회, 이타적이 아니라 이기적인 교회, 그래서 사회의 ‘희망’이 아니라 ‘절망’인 교회는 존재가치도 존재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저는 계속해서 ‘교회의 재건’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고쳐서 다시 쓰는 갱신(renew)이나 개혁(reform)으로는 부족하고 다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reconstruction)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 ‘중장기발전위원회’를 만들어 재건의 청사진을 함께 그려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대면 모임을 못 하게 되면서 활동이 저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연말부터는 비록 비대면 국면이 계속되겠지만 어떻게 해서든 활동을 재개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논의가 어떻게 하면 10년 후에도 우리 서울제일교회가 생존할 것인가 하는 답을 찾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를 존재가치가 있는 교회로 재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었으면 합니다.

에베소서의 교회론

제가 요즘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마침 본문이 ‘에베소서’에서 주어졌습니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직접 쓴 편지가 아니고, 바울이 죽은 후에 어떤 사람이 바울의 이름으로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바울’과는 다른 주장을 펼치기도 하고, 주요 관심사 또한 다릅니다. 학자들이 꼽은 에베소서의 특징 중 하나는 ‘교회’를 특별히 강조한다는 것인데, 마침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본문 23절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라고 증언합니다. 번역본인 한국어 성경이나 영어 성경은 본문 20~23절을 몇 개의 문장으로 나누어놓았지만, 원본인 그리스어 성경은 긴 하나의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20~22절은 설명부고,

23절이 결론부입니다. 23절은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해 놓았습니다. 압축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충만함이다”입니다. 역사적 바울은 고린도전서와 로마서에서 이미 “몸-교회론”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는 “한 몸, 여러 지체”에 강조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의 강조점은 조금 다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되,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라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세상의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이 아니라는 것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20절부터 22절까지가 바로 그것에 대한 강조입니다.

“세상은 힘을 추구해 왔다. 로마의 평화가 그 생생한 증거다. 하지만 그런 세상의 힘보다 더 큰 진짜 힘이 있다. 그 힘은 힘의 추구가 아니라, 힘의 포기에서 비롯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생생한 증거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그리스도를 일으키시고 하늘로 올려 당신 오른쪽에 앉히심으로써 모든 권력과 권세와 능력과 주권을 굴복시키셨다. 따라서 그런 세상 힘이 교회의 머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사람들처럼 우리는 힘을 추구하며 살면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어야 한다. 그를 머리로 하는 그의 몸인 교회는 그의 손발이 되어 십자가의 삶,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에베소서 저자의 몸-교회론입니다.

플레로마-교회론

그런데 이 ‘몸-교회론’은 ‘충만-교회론’으로 보충됩니다. ‘충만’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원어는 ‘플레로마’(πλήρωμα)인데, 영어로는 fullness, fulfillment, completion입니다. 충만, 성취, 완성 등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충만함이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에베소서 저자는 먼저 그리스도가 만물을 충만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충만하다는 말을 주로 양적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통에 물이 가득하다거나, 교실에 학생들이 가득하다거나, 저금통에 동전이 가득한 것을 연상합니다. 기독교인들은 성령 충만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리

스도가 세상을 충만하게 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채운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물에 생명을 준다는 뜻입니다.

도대체 “만물에게 생명을 준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그 의미를 묵상하다가 오래전에 읽었던 작곡가 이건용 선생의 글이 생각났습니다. 그 글 제목은 ‘알토들의 존재감’인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합창에서 알토 파트의 존재감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비하면 확실히 그렇다. 소프라노의 존재감은 분명하다. 우선 합창의 네 파트 중에서 제일 높은 성부를 부른다. 잘 들린다. 또 소프라노는 거의 항상 주선율을 맡는다... 소프라노는 음악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으며 그 음악의 표정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베이스는 합창에서 화음의 기초이자 기둥이다. 소프라노가 선율로서 합창을 리드한다면, 베이스는 화성으로 음악의 틀을 만들어 준다. 다른 파트와는 움직이는 원리가 다소 다르다. 그래서인지 저음이지만 잘 들린다.

소프라노와 베이스는 합창 전체의 윤곽을 만들기 때문에 이 두 성부를 외성(外聲)이라고 하고, 그 윤곽의 내부를 채우는 테너와 알토 두 성부를 내성(內聲)이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테너는 고음이기 때문에 잘 들립니다. 물론 높은 소리를 작게 불러야 하는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음이 떨어져 눈총을 받기도 합니다. 이들에 비하면 알토는 이도 저도 아닙니다.

선율을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화성 진행의 기둥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여성의 저음이어서 소리가 약하다. 다른 파트들에 묻혀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소프라노가 되고 싶어 합니다. 존재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건용 선생은 알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알토는 우선 합창에 볼륨감을 준다. 스스로의 소리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체의 합창 소리를 풍부하게 만든다. 알토는 협력자다. 소프라노와 협력하여 이중의 선율선을 만들기도 하고 테너와 협력하여 화성을 완성한다. 만일 색채감이 많은 화성을 사용하고 싶다면 내성, 특히 알토의 협력이 절실하다.

이건용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알토가 합창에 생명을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충만은 (소프라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알토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세상 풍조와 가치는, 우리더러 힘을 가져 주인공이 되라고, 주도권을 쥐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조연이 되고 밑거름 되어 세상을 살린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고 하십니다. 지배하고 군림하는 게 아니라 나누고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속한 소망’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생명을 주는 모든 것들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햇빛도, 물도, 양분도 다 그렇습니다. 생명 속에 스며들어 그 생명을 돕지, 자기가 주도권을 쥐지 않습니다. 그런 존재가 너도 살리고 나도 살리고 우리 모두를 살립니다. 누룩이나 소금처럼, 충만은 나를 죽이고 비우고 낮추고 스며드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를 드러내면,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자기가 주도하려고 하면 교회는 언제나 타락했습니다.

당신이 교회다!

어느 신학자가 교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교회는 ‘당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영어로 교회가 church인데, ch-ur-ch의 중심에 ur(=you are)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좀 엉뚱한 발상이지만 영어권에서는 꽤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이 교회입니다. 내가 교회입니다. 우리가 교회입니다. 따라서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는 달라집니다. 알토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사람들, 협력하는 사람들, 다른 이들을 복되게 하는 이들 덕분에 교회는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지역사회 속에서 알토가 되면 지역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우리도 살리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꿈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또 우리 교회가 더욱 참된 교회가 되어 각 사람의 희망으로 그리고 이 사회의 희망으로 다시 세움을 받게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