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그 의로운 고난

13그러므로 여러분이 열심으로 선한 일을 하면, 누가 여러분을 해치겠습니까? 14그러나 정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여러분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위협을 무서워하지 말며, 흔들리지 마십시오. 15다만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거룩하게 대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십시오. 16그러나 온유함과 두려운 마음으로 답변하십시오.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그리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여러분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헐뜯는 그 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17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라면,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이,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는 것보다 낫습니다. (벧전 3:13-17)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주일

오늘은 교회력으로 ‘부활절 여섯 번째 주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단 총회가 제정한 ‘5.18 민주화운동 기념주일’이기도 합니다. 제가 2016년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5.18 기념주일’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같은 주일에 우리 교회의 ‘창립 기념주일’을 지켜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창립 기념주일’을 6월로 연기해서 ‘5.18 기념주일’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기에 그 뜻이 더 깊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뜻깊은 주일에 제가 증언을 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듭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5.18 하면 죄의식과 부채감이 물밀 듯 밀려들기에, 그런 제가 감히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이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 심정을 작년 5.18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1980년 오월, 우리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광주를 보았고, 철저히 고립된 광주를 보았고, 외롭게 죽어가는 광주를 보았습니다.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의 마지막 비명소리와 함께 광주의 오월은 우리에게 깊은 부채의식을 남겼습니다. 오월의 광주와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 학살당하는 광주를 방치했다는 사실이 같은 시대를 살던 우리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아픔을 남겼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광주를 함께 겪었습니다. 그때 우리가 어디에 있었든, 오월의 광주를 일찍 알았든 늦게 알았든 상관없이 광주의 아픔을 함께 겪었습니다.

이렇듯 5.18은 저를 비롯한 동시대인에게 외면할 수 없는 아픔이요 분노였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5.18은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닙니다. 동시대인으로서 그만큼 깊이 공감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공감이 너무 커서 부끄러움과 부채의식이 저를 짓누릅니다. 그래서 오늘 증언은 CBS와 기장 총회가 공동제작한 영상을 보는 것으로 끝냈으면 했습니다. 사실 그것으로 5.18 메시지는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증언을 생략할 수가 없어서 고민 끝에 짧은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5.18의 계속된 상흔

1980년 5월의 광주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입니다. 당시 저는 서울에서 살았고, 고3이어서 5.18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5.18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당시 고3이었던 저와 깊이 연관된 ‘7.30 교육개혁조치’를 단행했습니다. 과외 전면 금지, 대입 본고사 폐지, 졸업정원제 실시 등이 그 내용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고, 본고사를 준비할 시간에 ‘전공 선택’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이런저런 자료도 찾아보고,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을 만나서 상담한 후 오래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이 ‘물리학’이었습니다. 저의 적성과 소질을 감안한 좋은 결정이었고, 대학 입학 후 제 선택에 만족해하며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제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82년 5.18 무렵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 그 무렵에 ‘80년 민주화의 봄’ 이후 첫 데모가 있었습니다. 그 데모로 인해 저는 제가 모르는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기독청년운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도저히 이 시대에 과학자로서 살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세상은 아비규환인데, 세상과 무관하게 연구실에 들어앉아 연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할 시간을 벌고자 도망치듯 간 곳이 ‘한신대 신학대학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목사가 되어 여러분 앞에 서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우리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 가운데 저처럼 5,18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자기 인생이 바뀐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 또래의 수많은 젊음들은 5월 영령의 넋을 위로하며 자신을 던졌습니다.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촉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을 때, 마땅히 밝히고 기억해야 할 것들을 위해 자신을 바쳤습니다. 진실을 밝히려던 많은 언론인과 지식인들도 강제 해직되고 투옥 당했습니다. 제 경우 전공을 바꾼 것이 어쩌면 더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5.18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했고, 그 후 무려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 5.18 40주년을 맞이해 <한겨레신문>이 다섯 번에 걸쳐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그 특집의 큰 제목은 “5.18 40돌 다섯 개의 이야기”였고, 그 다섯 이야기의 키워드는 각각 “이별, 고통, 망각, 참회, 부활”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5.18 희생자들은 그때 돌아가신 5월 영령들뿐만이 아닙니다.

제1회 ‘이별’ 편에는 5.18 때 남편을 잃은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5월 21일 계엄군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향해 집단 발포를 자행한 날 사망했습니다. 마침 나주 영산포 시누이 집에 있던 그녀는 남편의 부고를 전해 듣고도 계엄군의 광주 봉쇄로 발이 묶여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나타나지 않자 남편의 주검은 아무런 장례 절차도 없이 망월동 묘역에 매장됐습니다. 하지만 이별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홀로된 그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두 아들과 어렵게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그러다 생활고로 잠시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겼는데, 석 달 뒤 찾아가 보니 두 아들은 프랑스로 입양된 후였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제3회 ‘망각’ 편에는 5·18 때 정신질환자가 된 아들을 둔 한 노모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5.18이라면 신물이 나요. 멀쩡한 영감 살다가 죽어부렀제. 어린것은 뚜드려 맞아 홱 돌아부렀제. 집도 다 날려불고. 2년 뒤 아들이 환갑이 돌아온단 말이요. 제일 큰 걱정은 아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을까, 그것뿐이요.”

5.18 유족회의 집계를 보면, 5.18 관련 정신질환 생존자는 65명이고 사망자는 61명입니다. 계엄군에게 맞거나 성폭행을 당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들입니다. 5.18 정신질환 생존자 중 상당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한 5.18 유공자는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습니다.

제4회 ‘참회’ 편에는 5.18 가해자 편에 섰던 보통 군인이 등장합니다. 기자는 5.18 당시 학살을 지시했던 명령권자나 고위간부가 아니라면 광주에 왔던 수많은 보통의 군인들도 “역사의 피해자”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투입 군인들은 5.18 투입 사실이나 심리적 고통을 숨기는 등 이중의 고통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5.18은 40년 전에 지나간 ‘역사’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40년이 지났지만,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 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들은 사과하기는커녕 사실과 진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막말을 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립니다. 그러니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자꾸 덧납니다.

5.18 그 의로운 고난에 기초한 새 세상

성경에는 40이란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40년간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에게 십계명을 받기 전에 40일간 시내산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사탄에게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40은 새로운 시대나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의 기간, 연단과 시련과 훈련의 기간을 뜻합니다. 올해로 5.18 광주민중항쟁이 40주년을 맞이했다는 것은 이 항쟁이 우리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해야 할 시기를 맞이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행히 지난 총선에서 민주세력이 압도적으로 승리하여 새 역사를 힘차게 내디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여기서는 5.18의 교훈을 다시금 확인하여 새 시대의 푯대로 삼고자 합니다.

첫째, 5.18 그 의로운 고난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의로운 고난은 비록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결국 우리나라에서 죽어버렸던 민주주의의 부활을 가져왔습니다. 5.18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었고, 광주시민의 외침은 마침내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습니다. 6월 항쟁은 5.18의 전국적 확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월 광주는 2016년 겨울 전국을 밝힌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부활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새 세상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의로운 고난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정의는 승리합니다. 새 세상은 바로 이 확신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둘째, 5.18은 우리 국민들에게 ‘분단 모순’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의 기밀문서 해제를 통해 알게 되었듯이, 신군부는 공산화를 핑계로 12.12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정당화했습니다. 실제로 아직도 반공, 빨갱이, 종북 프레임만 씌우면 민주 세력을 음해할 수 있는 세상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 분단 문제의 해결 없이는 참다운 민주화는 없습니다. 5.18은 우리에게 이것을 분명히 알려주었습니다.

셋째, 5.18은 미국의 실체를 폭로했습니다. ‘광주의 어머니’라 불린 고(故) 조아라 장로님은 기장 광주한빛교회 출신이요, 이현우 장로님의 고모할머니입니다. 5.18 당시 수습대책위원회로 활동했던 조 장로님은 계엄군이 광주에 들이닥쳐 ‘살상’을 저지르자, 5월 20일에 미국 공보문화원을 찾아가 항의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카터 대통령 미국의 인권 민주주의, 도덕 민주주의냐?” 미국이 국군을 장악하고 있으니, 계엄군의 살상도 미국이 승인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후 우리 국민은 미국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서 일 수 있듯이, 미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기꺼이 포기하는 나라입니다. 새 세상은 이 바탕 위에서 대미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넷째, 가해자가 사과해야 피해자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18이 역사의 수면 아래 잠겼다가 다시 부상한 이유는 몇 해 전에 발간된 <전두환 회고록> 때문입니다. 그것이 촉발제가 되었습니다. 진실은 오랜 시간 은폐되고, 왜곡되고, 탄압받았습니다. 그러다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서 대중의 시각에서 사라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에서 보듯이 잠시 방심하면 숨죽이고 있던 가해자들이 다시 바이러스처럼 퍼져서 역사를 왜곡합니다. 그러니 반드시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야 합니다. 아프다고 적당히 덮어둘 일이 아닙니다. 온전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용서가 가능해지고, 상처도 치유됩니다.

다섯째, 5.18은 교회가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16절은 우리에게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합니다. 선한 양심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양심과 공감 능력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통합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공감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5.18 망언, 세월호 망언 등을 우리 국민은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심판했던 것입니다.

공감 능력은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선한 양심’은 타자의 아픔을 고스란히 자기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아픔을 해결해주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 길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선한 양심’을 가지고 기꺼이 의로운 고난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 소명을 새 시대에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은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그런 길이 아니라 가야만 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5.18 40주년을 맞아 이 길을 더 열심히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서울제일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